결혼식을 앞두고 여러모로 걱정이 앞섰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공론화되었듯이 한국의 웨딩 업계는 속된 말로 호구 잡히는 일이 빈번한 시장이다. 같은 업체라도 플래너에 따라 금액이 고무줄인 데다가,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서비스에도 추가금을 붙여 소비자들의 불만을 자아낸다. 나는 결혼식에 꼭 필요한 만큼만 비용을 지급하고 싶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추가금을 결제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추가금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알맞게, 더 좋은 옵션이나 부가적인 옵션을 선택할 때 추가되는 경우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이름만 추가금일 뿐 기본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항목이 더 많았다. 말뿐인 추가금으로 인해 우리의 결혼식 비용은 계속해서 올라갔고, 업체 팜플렛에 안내된 금액과 차이가 벌어졌다.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화룡점정은, 결혼식 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는 날 발생한 추가금이었다고 생각한다.
결혼식 앨범은 30장 구성으로 이미 100만 원을 지급한 상태였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고르러 가자, 직원은 기본적으로 50장은 추가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해서 들어보니 다른 곳과 가격경쟁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30장을 기본 구성으로 내었다는 이상한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안 그래도 웨딩 시장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가득했던 터라, 내 뜻대로 할 수 있었다면 결혼식을 생략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국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결혼식을 진행하게 된 상황이니만큼 결혼식에 불필요한 비용은 최소화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말뿐인 추가금으로 인해 결혼식 비용이 이미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200만 원에 육박하는 추가금을 당연하게 지급하게 만드는 상황에 몹시 화가 났다.
내가 완강히 거부하자 직원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기본적인 보정이나 인쇄 전 확인 절차 등에도 원래는 추가금이 붙는데, 사진을 추가해서 얼마만큼의 금액을 결제하면 그런 옵션에 추가금을 붙이지 않겠다는 식이었다. 남편은 적당히 주고 끝내자는 식이었지만, 나는 그날의 추가금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정당한 가격을 지급했다기보다는, 우리의 결혼식 사진을 볼모 잡혀 억지로 돈을 뜯긴 기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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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物理)라는 정말이지 이름대로 만물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거래도 물리학의 주제가 된다. 통계물리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물질세계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에 관심을 가졌다. 물이 온도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로 상태가 변하는 이유는, 온도에 따라 물 분자들이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체 상태의 물 분자는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다. 온도가 내려가면 조금씩 서로를 얽매다가, 결국 영하의 온도에서는 손에 손을 잡고 육각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액체 상태에서는 담는 용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던 물이, 모양이 변하지 않는 단단한 고체 상태로 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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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물은 온도에 따라 상태가 변한다. 물의 상태 변화는 온도에 따라 물 분자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나타난다. (출처: 금성출판사 티칭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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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세계에서만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거래도 사람들의 상호작용으로 볼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공급자가 비싼 가격에 물건을 내놓으면 소비는 줄어들고, 반대로 가격이 내려가면 소비가 늘어난다. 공급자는 최대한 많은 이익을 남기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안하거나, 소비자를 속이면서까지 이익을 추구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공급자도 손해를 본다. 과일 가게 사장이 좋지 않은 과일을 좋은 과일인 것처럼 속여서 팔면 처음 잠깐은 이득을 보겠지만, 곧 손님이 끊기고 머지않아 가게를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은 현지인보다 몇 배는 비싸게 값을 지급했더라도, 덤터기를 썼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는 일이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시골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트럭에서 파는 과일은, 설사 품질에 이상이 있더라도 해서 다시 돌아가서 항의하거나 제대로 된 상품으로 교환하기 어렵다. 트럭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지조차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다시 볼 일이 없다면 판매자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를 속여도 큰 타격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웨딩 업체들이 배짱 장사를 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웨딩 업계에서 예비 신혼부부는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람이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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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 보면 거래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거짓말로 손님을 잃는 것보다는 계속해서 거래가 이어지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반대로 거래가 단발성에 그친다면, 정직하게 장사하는 일이 오히려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 만나는 사이라고 해서 모든 공급자가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평판이라는 장치가 작용한다.
우리는 이미 평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새로운 식당에 가거나 배달앱에서 주문할 때도, 책을 살 때에도, 휴대폰이나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를 살 때에도 후기를 반드시 살핀다. 비록 나는 경험해 보지 않았더라도, 해당 메뉴나 제품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 글이나 유튜브에 이미 리뷰를 남겨놓았다. 이제 리뷰를 찾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아무 제품이나 소비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소비에 들어가는 나의 돈과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기 때문에, 또 불쾌한 경험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소비인 데다가, 가격이 비싸다면 후기를 더 열심히 찾아보고 어떤 게 나에게 맞을지 고심해서 고른다. 컴퓨터나 태블릿 기기는 한 번 사면 몇 년은 쓸 뿐만 아니라 가격도 비싸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른 여러 기종과 비교하며 리뷰를 엄청나게 찾아보고, 고심 끝에 큰돈을 지급한다. 그런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비용도 상당히 많이 지출하는 데다 두고두고 회자할 결혼식을 위한 소비에서, 공급자가 소비자를 기만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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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SBS 뉴스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 ‘“결혼식은 안 해도 되죠?” … ‘스드메 생략’ 노웨딩 번진다’의 썸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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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결혼식을 생략하는 신혼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결혼식에 들어갈 비용을 신혼여행이나 집을 구하고 꾸미는 데에 보태는 식이다. 소비자의 불만은 계속 있었다. 그럼에도 결혼식이 지니는 사회적인 의미로 인해, 신혼부부가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 결혼식은 행해졌다. 관습의 영향으로 인해 웨딩 업계에서는 평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동안 누적된 소비자들의 불쾌한 경험이 비로소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발성 거래에서는 잠깐의 꼼수로 한동안 이득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전략이 누적되면, 결국 소비자는 떠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노웨딩’의 확산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온 불신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기뻐야 하는 날’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소비자를 기만해 온 구조가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방식으로 응답받는 셈이다. 지금까지는 추가금으로 고통받는 것은 소비자만의 일인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제 웨딩 업계가 제 꾀에 발이 걸려 늪에 빠진 듯하다. 이제 웨딩 업계가 선택할 차례이다. 소비자의 이탈로 소멸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라도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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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웨딩 업계는 이제 선택을 내려야 한다. 신뢰를 회복할지, 아니면 소비자의 외면으로 소멸할지 갈림길에 서있다. (출처: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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