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아이의 눈웃음, 장난스런 웃음 속에 빛나는 하얀 치아, 쏙 들어간 보조개, 들숨 날숨 온몸으로 숨쉬는 아이의 몸통, 엄마 젖을 물다가 눈을 들어올려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 미소, 울다가도 엄마 손가락을 쥐여주면 꽉 쥐고 잦아드는 울음 소리, 아침 공복에 마시는 따뜻한 레몬수, 푹 자고 일어난 아침, 건강하고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 누군가가 베푸는 고마운 친절, 시원한 바람 사이로 타는 매끄러운 자전거, 수유 중인 엄마 곁을 맴돌며 필요한 거 없냐는 26개월 아기의 물음, 온열 돔 안에서 받는 따끈따끈한 마사지, 늘 내 편인 엄마 아빠의 목소리.
나를 일으켜 세우는 사랑의 순간들
감정도, 에너지도, 체력도 방전되어 방향도 갈피도 못 잡겠을 때 가만히 나열해본다.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엄마가 된 뒤 나의 존재는 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아등바등 버티며 웃는 게 당연한 엄마의 모습. 일찍 일어나 차리는 아침, 세탁기 한 번에 쏟아지는 빨래들, 대충 넘기는 나의 끼니, 지쳐도 씩씩해야 하는 엄마의 얼굴.
엄마에게 돌봄 노동, 가사 노동, 관계 노동, 감정 노동은 일상인데, 그 일상이 아직 내게는 버겁다. 다해내지 못하면 부족한 엄마가 되는 것 같아 마음도 무겁다. 애지중지 자란 딸일 때에는 많은 것이 자유로웠고 가벼웠고, 천방지축 자연스러웠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노동의 집에 갇힌 것만 같다. 이런 복잡한 마음도 감정 관리의 영역이려니 하고 공책에 마음을 털어놓는다.
친구를 만나고 싶고, 눈썹 휘날리게 일하며 인정도 받고 싶고, 느즈막히 일어나서 브런치도 먹고 싶고, 낯선 곳을 빈틈없이 여행하고 싶다는 뭐 이런, 이미 다 해본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으로는 이제 한 뼘 남짓한 일기장이 남았다. 자유롭고 가벼웠던 나는 희미해지고, 엄마, 며느리, 아내라는 역할이 선명해졌다. 주방에서 보내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 평소보다 더 긴장 상태인 명절 연휴, 비몽사몽 기저귀를 갈고 아이를 토닥이는 깊은 밤은, 내게 붙여진 호칭들처럼 밀도 높고 진하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나도 다시 밝고 여유로워질 테다. 만 3년 동안 두 번의 임신과 출산, 육아가 조금 무거웠을 뿐이라고 되뇐다. 아마도 이건 명절 증후군이겠지 한다. 꼬물거리는 아기를 곁에 두고 운동을 두 시간 가까이 했다. 달디단 도넛도 왕창 먹고,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마그네슘도 털어넣었다. 새벽 수유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잠을 조금 자고 나니 한결 낫다.
‘사랑해, 사랑해, 괜찮아’를 주문처럼 읊조리는 입춘이 지난 겨울. 곧 따뜻한 봄바람이 불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다던 주변의 조언대로 힘을 좀 덜 내 볼 생각이다. 거리의 꽃 트럭에서 봄꽃을 조금 사왔다. 노란 프리지아와 오렌지빛 튤립이 집을 밝힌다. 다시 경쾌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주문을 외운다. 사랑해, 사랑해, 괜찮아.
*<육아에 바나나>는 2/20일 발행 예정이었으나 늦어져 이제야 발행합니다.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