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땅끝마을, 해남으로 이사를 왔다. 오기 전까지 살던 양산의 마을 사람들과 생이별을 했어야 했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의 품 속에서 아이들과 우리가 얼마나 따뜻하게 잘 살아왔는지 모른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게 좋았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그들은 말없이 안아주었다. 특히나 1년 동안 같이 논농사를 하던 이들과 헤어질 때는 마지막까지 참았던 눈물이 새어 나와서 힘들었다.
이사하던 날 작고 하얀 눈송이가 흩날렸다. 차를 몰고 해남으로 향하던 길은 여태껏 해남까지 몇 차례 왔다 갔다 했던 길들 중에서 제일 길게 느껴졌다. 오후 3시에 출발해서 해가 지고 저녁 8시가 넘어서야 해남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보였다. 강진쯤 왔을까. 빗물이 앞을 가려서 와이퍼가 세차게 왔다 갔다 했다. 어느덧 도로에 차들은 점점 사라지고 새카만 도로 위에 무중력 상태로 자석에 끌리듯 차가 앞으로 붕붕 떠가는 것 같았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좋게 헤어졌든, 안 좋게 헤어졌든 이별은 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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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마을 살이를 하다가 다른 마을로 이사 가는 건, 서로 붙어 있던 몸이 뜯겨 나가는 것이겠지? 그래도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재빠르게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를 따라 1년이라는 시간들이 마음 속에서 영화 필름이 감기듯이 마구 돌아갔다. 번쩍하고 새하얀 불빛을 달고 옆으로 차들이 휙 지나갈 때마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낸 장면들이 섬광처럼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삶을 축복하고 응원해주던 이들의 얼굴이 지나갔다.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 타인의 삶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이 될 수 있었던 걸까.
늦은 밤, 두 무릎을 꿇게 만드는 캄캄한 하늘에 별들이 총총 떠 있는 시골 마을로 들어섰다. 솔직히 우리는 이렇게 빨리 게다가 이렇게나 멀리 땅끝에 있는 해남까지 이사를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이지 계획에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저 삶이 우리를 이끄는 대로 다음 행보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아쉬운 마음이 크면 쉽사리 응원하는 마음이 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번 이사를 통해서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받았다. 가족, 친구들, 지인들에게서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삶을 위해 축복하는 마음을 전해 들었다. 그냥 하는 인사나, 전형적인 덕담이 아닌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우리를 위하는 마음을 보내어주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타인의 삶을 향해서 진실 어린 응원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있어서 나는 무척 힘이 나고 고마웠다. 어째서일까. 그런 큰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향해 얼마나 많은 마음을 내어 주었나 돌아본다. 마을이 달라져도 우리는 계속해서 마음으로 연결된 관계를 꿈꾼다. 나 또한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도 누군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 마음속에 늘 살아 숨 쉬는 넉넉한 내가 되고 싶다. 당신이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내가 되고 싶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새삼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믿으며,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이사 온 이곳에서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열어갈 때, 내가 전해 받았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