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결혼식의 유일한 외국인 아기 하객
육아와 자아 사이_노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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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마. 나 결혼해!”
“뭐???”
“놀랍지? 그래서 너희가 와줬으면 좋겠는데, 문제가 있어. 바로 다음 달이야.”
얼마 전 한국 여행을 다녀간 인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돌아간 지 겨우 한 달 남짓 되었고, 그때만 해도 분명 만나는 사람이 없었는데, 대뜸 결혼이라니. 인도는 아직 맞선 결혼이 흔하다던데, 30대 후반인 딸을 가족들이 더 이상 기다려주지 못한 건가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곧 상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두 인도 자매와 함께 여행을 와서 우리 집에서도 같이 묵고 갔던, 그들의 10년도 더 된 남자 사람 친구가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였다. 내 친구는 우리 집에서 지내던 2박3일 동안 갑자기 이 남자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물론 지난 세월 동안 자신들도 알게 모르게 쌓인 감정이 영근 것이겠지만, 아무튼 한국에 있는 동안 그 타이밍이 찾아온 것이다. 인도에도 결혼하기 좋다는 소위 ‘길일’ 같은 개념이 있어서, 그에 맞춰 서둘러 날을 잡게 되었다고 했다. 친구는 우리가 꼭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아직 돌도 안 된 아기가 있으니 혹시 못 오더라도 이해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해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아무것도 한 건 없지만 마치 사랑의 증인이라도 된 듯, 나는 이미 괜히 뿌듯한 기분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는 꼭 그 결혼식에 가야만 했다.
폭풍 검색에 돌입했다. 인도는 배낭여행과 출장으로 다녀온 적이 있지만, 아기와의 여행지로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곳이었다. 긴 비행시간도 고민이고, 계절 특성상 심해졌다는 대기 오염도 걱정거리였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고 상의에 상의를 거친 끝에 우리는 결국 항공권을 결제했다. 예매 후에도 매일 같이 ‘아기 장거리 비행 팁’ ‘아기와 인도 여행’ 같은 내용을 찾아보면서, 이 결정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우리의 욕심은 아닐지 걱정했다. 하지만 부모도 부모의 삶이 있고, 부모가 중심을 잘 잡는 삶에 아이가 함께하면서 다 같이 성장해 나가는 거라는 우리의 믿음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아기 유자의 첫 해외 여행지는 인도로 정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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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날 며칠씩 이어지기로 유명한 인도 결혼식은 아니나 다를까 2박 3일간 진행되었다. 그것도 간소한 편이라고 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춤 공연을 바탕으로 축제처럼 즐기는 전야제, 신성하게 기도하고 꽃잎을 뿌리며 신부의 행복을 기원하는 종교의식, 화려하지만 차분하게 두 사람의 축복을 빌어주는 본식, 끝으로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며 즐기는 파티가 이어졌다. 행사마다 바뀌는 화려한 의상과 공간 장식, 그리고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인도 음식이 인상적이었다. 일가친척이 모두 즐겁게 참여하며 만들어가는 분위기는 참 따뜻했다. 걱정과 달리 각 이벤트가 띄엄띄엄 진행된 덕에 쉬엄쉬엄 아기 컨디션을 조절할 시간도 충분했다. 우리에게는 비록 아기 잠 시간이 정해준 통금이 있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출산 후 처음으로 한껏 차려입고 셋이서 참여하는 이 작은 축제가 참 즐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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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긴 비행과 바쁜 결혼식 일정 다음으로 걱정했던 건, 익숙하지 않은 생김새와 복장의 사람들을 유자가 낯설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거였다. 하지만 아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지냈다. 북적대는 분위기에 압도되는 듯한 순간은 종종 있었지만, 이내 한국에서처럼 아무에게나 잘 다가가서 방긋 웃고 안겼다. 아기를 무척 좋아하고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인도 할머니들의 공이 컸다. 한국 할머니들처럼 아기 춥겠다는 소리를 연신 하시면서, 아기를 안아주고 돌봐주며 우리가 최대한 매 순간을 즐길 수 있게 신경 써주셨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유자는 유일한 외국인 아기 하객으로서 이쁨받는 상황을 나름대로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기가 종종 우리 품을 떠나있어서 편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낯선 모습의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안도감이 컸다. 유자가 태어나기 전 우리 부부는 일 때문에 아프리카 가나에 잠시 살았는데, 한국으로 휴가를 오면서 친구 딸아이에게 흑인 여자아이 인형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짙은 초콜릿색 얼굴에 곱슬머리를 한 귀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모습이어서 그랬는지, 아이는 무섭다며 끝내 그 인형을 만지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나에서 만났던, 거리낌없이 현지인 친구들과 어울리던 한국 아이들의 모습이 순간 교차가 되며 떠올랐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아이가 어려서부터 다양성에 노출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찍부터 다른 모습, 다른 생각을 자연스럽게 접하다 보면 무의식중에 생기는 편견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로 달라서 더 아름다운 것이라는 믿음, 나와 다른 이에게 베푸는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거라는 믿음을 가진 아이로 성장했으면 한다. 그래서 비록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기에게 더 넓은 세상, 다른 모습의 사람들, 다양한 삶의 풍경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다른 승객들에 폐 끼칠까 조마조마하며 기내에서 아기를 안고 서성이던 시간, 며칠 안 되는 소중한 짝꿍의 휴가 일수, 아기에게 무리가 될까 봐 결혼식 외에는 어떤 관광 계획도 잡지 않은 우리의 일정을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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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옆자리에는 우리 엄마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분이 앉으셨다. 밤 비행기라 곧 잠들 테지만 그때까지는 아기가 활동이 좀 많을 거라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오히려 엄마 아빠 좀 쉬라며 계속 아기를 안고 돌봐주셨다. 인도 할머니들에 이은 한국 할머니의 배려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다행히 아기는 금방 잠들었고, 착륙 직전까지 푹 잤다.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데 옆자리 할머니가 갑자기 50달러 지폐를 건네셨다. 깜짝 놀라 한사코 거절했지만, 당신 손주 같아서 꼭 주고 싶다고, 아기의 다음 여행에 써달라며 끝까지 찔러주셨다. 아기에게 넓은 세상을 많이 보여 주는 멋진 부모가 되라는 격려의 말씀과 함께.
봉투에 고이 넣어 둔 50달러는 유자가 자랄 때까지 잘 보관했다가 이날의 이야기와 함께 전해주고 싶다. 아이와의 첫 해외여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초보 엄마 아빠가, 다정하게 마음을 열고 품을 내어준 사람들 덕분에, 아기와의 다음 여행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대하게 되었던 시절 말이다. 이 50달러가 과연 이 세상 어디에서 쓰일지, 그 돈을 쓸 즈음에는 우리 유자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또 우리는 어떤 부모이자 가족일지 참 많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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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와 자아 사이 일 중심의 삶에 임신-출산-육아의 세계가 찾아오면서, 그 사이 어디쯤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날들을 이야기합니다.
* 글쓴이 - 노현정 (noh.hyounjung@gmail.com) 교육 x 국제개발협력 언저리에서 일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다정한 우리를 꿈꾸며 글을 씁니다. brunch.co.kr/@no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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