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나의 산책_샌디 씨 이야기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도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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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요즘 샌디가 잘 안 오는데?”
귀가 밝은 샌디는 주방의 후드를 켜고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하면, 언제나 찾아와서 문을 두드린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거나, 숙제나 일을 하고 있는 가족들이 지루함을 느낄 때쯤 샌디의 방문은 집안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오~샌디!”
샌디 씨의 방문에 가족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빠른 걸음으로 문 앞으로 다가간다. 샌디 씨는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결코 먼저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매너를 장착하고 있다. 아이가 서운할까 봐 드러내어 말하지 않지만, 샌디 씨는 나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샌디 씨의 머리를 매만지며 귀찮게 하지도 않고, 곧장 주방으로 가서 손가락만 한 소세지 몇 개를 따뜻하게 데워서 매번 샌디 씨 앞에 차려 놓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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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 찾아온 이를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샌디를 처음 만난 것은 12년 전 아일랜드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러 그의 가족 집을 방문했을 때이다. 샌디 씨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옆집에서 남편의 가족인 콜린스 가족을 만나러 왔는데, 열린 문으로 유유히 들어오거나 울창한 풀숲 사이에 자신만이 아는 문으로 또 힘차게 달려오기도 했다.
미시즈 콜린스는 ‘아이리시 블랙퍼스트’를 먹고 남은 소세지나 베이컨을 그리고 디너(dinner)로 로스트비프(roast beef)를 만들고 먹은 뒤 남은 고기 부스러기 등을 언제나 따로 모아두었다가 샌디 씨가 방문하면 마치 귀한 손님 대하듯 음식을 내어주곤 하셨다.
나는 한 달간 머물면서 7명의 자식들의 잦은 방문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친척들(특히 조카들)과 특히 영국이나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찾아온, 말하자면 사돈의 팔촌쯤 되는 사람들의 방문을 매일 경험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골집을 방문하는 온갖 새들과 동물들 그러니까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이 댁을 방문하면 진심을 다한 환대가 펼쳐진다는 것을 매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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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다른 배경을 가진 한 남자를 깊이 사랑하게 된 후 그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5000km 떨어진 곳에 사는 그를 또 그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났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에게 받았던 진심 어린 환대와 친절함을 직접 경험한 후에 나는 남자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진실성과 다정함의 근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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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나의 산책
남편의 본가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아일랜드 생활을 시작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하게 되었고, 후반기에 들어섰을 때 지내던 집의 계약이 끝나서 당분간 시댁에 들어가서 지내기로 했다. 동네에 작은 펍(pub)이 하나 있을 뿐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보이는 것은 녹색 풀과 나무뿐인 깊은 시골에서 출근한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일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겨울 감기에 된통 걸려 2주 가까이 엄청 고생을 한 뒤, 겨우 몸을 추슬러 몸을 움직이며 운동 삼아 동네 산책이라도 매일 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인도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좁은 차도가 구불구불 이어진 시골길을 혼자 걷고 있으면, 음지의 드리워진 나무가 왠지 사람의 뒷모습 같아 깜짝 놀라기도 했다. 또 드물게 마주치는 자동차가 내는 속도에 한쪽 길에 몸을 붙이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아기도 놀라지 않았을까 가만히 배를 만지고 있으면 ‘아무래도 산책은 틀린 것 같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무엇보다 말벗 하나 없는 이 고독한 산책이 또 그 적막함이 가까스로 외면하고 있었던 ‘외로움’과 ‘그리움’을 오히려 증폭시키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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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시 한번 힘을 내서
그렇지만 다시 새로운 하루가 되고, 아기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어제의 고독한 산책길을 잊게 하고 다시 운동화 끈을 동여매게 했다.
오늘은 좋아하는 스카프를 일부러 목에 둘렀다. 핑크빛의 실크 스카프는 누구라도 예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는데, 나는 겨우 거울 앞의 서서 나에게 ‘예쁘다.’라고 싱긋 웃어주며 다시 토닥토닥 길을 나섰다. 걸으면서 아이에게 이야기를 나누고 일부러 소리 내서 ‘어머 꽃이 예쁘네.’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일부러 기분 좋은 척을 하며 걸었다.
그런데 조금 걷다 보니 누군가 나의 뒤를 따라오는 듯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타닥’
아주 잠깐 마당에서 개를 길러본 경험을 제외해도 나는 개나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 행여 개가 나를 따라오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기도 전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아일랜드에서 10년 넘게 산 지금은 나를 따라오는 것이 산토끼, 여우, 꿩, 노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개’나 ‘고양이’ 정도로만 나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의 ‘샌디’가 나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늘 ‘샌디 씨’라고 이름을 불렀는데 그렇게 부르면 왠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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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 씨!’
순간 반가운 마음에 나는 꽤나 큰소리로 샌디 씨의 이름을 불렀는데 그 소리에 샌디 씨가 흠칫 놀라며 살짝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지만, 다행히 샌디 씨는 도망가는 대신 내 주위를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내 앞으로 왔다. 나는 혼자서 샌디 씨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샌디 씨는 내가 걷기 시작하자 함께 걷기 시작했는데, 웬일인지 속도를 내어 먼저 달려가지 않고 천천히 내 발걸음에 맞추어 타닥타닥 걸어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보다 조금 더 앞서서 마치 ‘이 동네에서 꽤나 괜찮은 산책길은 이 쪽이에요.’라고 나에게 소개해 주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샌디 씨가 걸어가는 쪽으로 함께 걸음을 옮겼다. 항상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산책하던 나는 샌디 씨의 안내로 오른쪽 길로 들어섰는데,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걸음의 속도가 조금 느려지기 시작하면서 샌디 씨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만 돌아갈까? 집으로?!’라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거의 멈추어 서려던 순간, 저 멀리 앞서가던 샌디 씨가 망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다시 나에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앞서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뭔가 늘름한 대장을 따르는 탐험대원이 된 것처럼 샌디 씨를 믿고 걷기 시작했다. 샌디 씨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가면서도 자주 멈춰 서서 내가 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눈치였다. 임신 후반부를 보내면서 몸이 무거워진 나는 샌디 씨의 빠른 걸음을 쫓아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번에는 멈춰 서지 않고 느리지만 꾸준하게 샌디 씨를 따라 산책을 즐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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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식
처음으로 맞이하는 고독감 없는 산책의 끝이었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터져 나오던 자리에 행복감을 채울 수 있어서 그 마음이 아기에게도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아서 시어머니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샌디 씨와 함께 한 산책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나의 이야기를 받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카타리나(샌디 씨의 주인)가 얼마 전에 샌디가 임신을 했다고 이야기해 주던데, 오늘 산책하면서 알아차렸니?”
“아니요. 저는 전혀 몰랐는데요!”
“응.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럼 오늘 레지나와 샌디가 함께 ‘임산부 산책모임’을 했던 거네.”
“그러게요. 하하하하.”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난 뒤 샌디가 나와 속도를 맞춰주고, 앞서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돌아보며 나를 보던 눈빛이 생각났다. 낯선 곳에서 외톨이로 지내는 아이를 가진 엄마의 마음을 샌디 씨가 알아차렸던 것일까? 아니면 그런 나에게 신이 보낸 친구였던 것일까?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샌디 씨와 함께 했던 산책을 오랫동안 곱씹어 보았다.
올해 15살이 된 샌디 씨는 요즘도 매일같이 우리 집으로 마실을 와서 먹을 것을 내어 놓으라고 큰소리로 짖는다. 작은 베이컨 조각을 풀밭에 던져주면 바로 앞에 떨어져도 가끔은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릴 만큼 눈이 나빠지고 소리도 잘 듣지 못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순하고 귀여운 눈빛은 변함없이 나를 향해 반짝인다.
‘샌디 씨~반가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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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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