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 노력을 이기는 줄 알았습니다!
능력이 노력을 앞선다고 생각했던 때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시험 보는 날에 가장 많이 주고받는 말은, ‘나 공부 안 했어, 어떡하지.’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진짜로 믿었다. 그런데 공부를 안 했다는 아이들이 시험을 보면 다 맞곤 했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 질투가 나면서 ‘저 아이들은 머리가 정말 좋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매일 잠만 자는 내 짝이 있었는데, 거의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수업 시간에는 내내 엎드려 있던 학생이 나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매우 속상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나 공부 안 했어’라는 말이 일종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누군가를 속이려고 하는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밤새 열심히 공부한 자신을 속이기 위한, 그래서 시험 결과가 예상보다 못해도 실망하지 않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더없이 불공평한 세계
웹소설의 세계는 공부보다도 더 불공평하다. 이곳에는 정말로 노력을 넘어서는 능력이 존재한다. 천재성을 가진 작가들은 첫작부터 세상을 놀라게 하고 줄줄이 걸출한 작품들을 써낸다. 반면 어떤 작가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데도 늘 결과물이 좋지 못하고 끝까지 빛을 보지 못한다. 예술의 영역이라는 것이 그렇다. 작가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능력과 노력에 대한 푸념이 종종 도마 위에 오른다.
나 역시 그런 푸념하는 작가 중의 하나였다. 약 8년 전에 첫 출간을 하고 난 후 쉬임 없이 썼는데, 여전히 성적은 제자리인 것을 보면서 그 사이 나를 치고 나간 다른 작가들이 질투가 났다. 나보다 훨씬 적게 출간하는데, 어떻게 내는 작품마다 그렇게 잘 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저들은 그냥 몸에 ‘웹소설의 피’가 흐를 뿐이라고, 그래서 놀다가 뚝딱뚝딱 써내고 나서 저런 결과를 얻는 거라고. 그렇게 푸념하고 나면 기분이 잠시 괜찮아졌다가 다시 땅밑으로 꺼졌다. 그러면 나는 영영 안 되는 걸까 싶어서.
하지만 정말 그러했을까
최근에 여러 웹소설을 읽고 분석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마음이 맞는 작가들과 함께 시작을 한 일인데, 하면서 점차 깨달음을 얻고 있다. 이전에는 웹소설을 읽어도 분석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읽어도 금세 머리에서 휘발되었고 내가 그 소설을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분석을 하면서 읽으니 머릿 속에 남는 것이 생겼다. 게다가 웹소설을 관통하는 어떤 구조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웹소설에 대한 큰 그림을 가지고 나서 내 작품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러니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부끄러워졌다. 그제야 내 작품이 왜 인기가 없었는지가 깨달아졌기 때문이었다. 일단 잘된 작품은 도입부부터 독자들을 몰입시키기 위한 장치가 있고, 캐릭터가 매력적이면서 대사들 역시 긴장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많은 작품을 썼지만 작품에 공을 들이며 다듬지는 않았다. 심지어 시놉시스도 제대로 구상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작품을 이어서 쓴 경우도 많았다. 쓰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했지만 제대로 된 작품을 내기 위한 노력을 하지는 않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노력을 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것이 내 능력 없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였다. 나는 능력이 출중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써도 대박을 내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잘 고치려고 하지 않았고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나 스토리에 대한 고민, 연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은 능력이 없는 작가들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물이 이것이었다. 8년이나 쓰고도, 이런 형편 없는 결과물이 나온 것은 바로 능력의 신화에 빠진 나머지 노력을 등한시한 결과였다.
그리고 나는 두려웠었다. 제대로 노력했을 때 만약에 그 결과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정말로 내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니까. 차라리 노력하지 않고 ‘막 썼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핑곗거리라도 있다. 다음에 노력하면 되겠지, 이번 것은 내가 열심히 연구하지 않고 되는 대로 써서 결과가 이런 거야, 라고. 나는 끊임없이 피해갈 구실을 만든 비겁한 작가였다. 그것을 알게 되자, 더는 도망갈 구석이 없다는 것도 깨달아졌다.
세상에는 물론 노력하지 않고 성공을 거두는 이들도 많다. 능력이 처음부터 출중한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다. 나는 그만한 능력이 없고, 노력을 해도 성공을 할까 말까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새 작품을 구상하면서 캐릭터부터 다시 잡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저 ‘모든 로맨스 소설에 등장하는 흔한’ 캐릭터가 아니라 나만의, 아주 작은 특징조차 살아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캐릭터로부터 독특한 대사들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들의 배경 역시 생생하게 잡아야 겠다. 일어나는 사건들도 많이 고민해서 넣고 빼야 겠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몇 년이 걸리든 하다 보면 그것은 세상의 성공은 불러오지 못할 지라도 적어도 내게는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 될 것이다.
*글쓴이 - 김지영
한때 교직에 몸을 담았다가 그만 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웹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때로 인기 있는 글들을 보며 질투도 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를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늘 습작생의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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