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bird, 겨울을 건너는 법
영어 단어를 외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만히 눈으로만 보는 사람도 있고,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종이가 까매질 때까지 무작정 쓰는 사람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어를 귀로 들으며, 눈으로 보고, 동시에 입으로 말하는 것이다. 사전에서 알려주는 발음을 따라하며 입으로 소리를 내뱉으면, 내가 낸 소리가 다시 귀에 들어와 머리에 새겨진다. 말 그대로 ‘일석삼조’ 아닌가! 그런 다음에 기억한 단어를 직접 노트에 적어보기까지 하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단어를 빨리 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맥락이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외우면, 어느 순간 뜻이 비틀린다. 그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문장과 문단 속에서 함께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school은 ‘학교’이기도 하지만, 학교가 아닐 수도 있다. ‘David and I went to the same school.’에서 school은 학교가 틀림없다. 그러나, ‘They were the scholars from the school of Plato.’에서 school은 학교가 아닌 ‘학파’다.
영어 단어 pride도 마찬가지다. 상당수의 문장에서 pride는 자존심으로 해석되지만 ‘Look at the pride of lions!’라는 문장에서 pride는 ‘사자 무리’를 뜻한다.
이처럼 단어는 사전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오늘 살펴볼 단어 snowbird도 마찬가지다.
snowbird
이 단어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동아 사전>에 따르면, snowbird의 뜻은 총 네 가지다.
1. 흰머리멧새
2. 피한객
3. 코카인 상용자
4. 눈을 좋아하는 사람, 스키 애호가
크게 위와 같은 네 가지 뜻으로 사용되는 snowbird의 정의를 가만히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분명히 같은 단어인데 두 번째 정의와 네 번째 정의는 정반대에 가깝다. ‘추위를 피해서 따뜻한 곳으로 가는 사람’과 ‘눈을 좋아하는 사람’을 설명하는 말이 똑같다니 어쩐지 사람 사는 일은 어디에서나 다 비슷한가 싶어 영어가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말에도 비슷한 단어가 있다. 신문 기사에 ‘연패’라는 단어가 나오면, 앞뒤 맥락 없이는 절대로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맞힐 수 없다. 똑같은 연패라도 맥락에 따라 연달아 우승한 것일 수도 있고, 계속 패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캐나다의 snowbird
캐나다는 국기에 단풍 나뭇잎이 그려져 있을 정도로 단풍이 유명한 나라다. 매년 가을이면 ‘단풍국’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캐나다 전역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단풍잎으로 물든다.
그러나 다채로운 빛깔로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가을이 지나면 캐나다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캐나다 국기 속 붉은 단풍잎의 배경이 하얀 것은 캐나다의 겨울, 눈, 그리고 북국의 숨결 때문이다. 단풍잎의 계절이 지나고 나서 찾아오는 캐나다의 길고 긴 겨울이 그 하얀 빛 속에 담겨 있다. 광활한 대지를 뒤덮은 흰 눈과 얼음.
11월부터 시작되는 그 길고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방법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먼저, 아이들은 즐긴다. 겨울을 맞이하는 아이들의 자세는 한마디로, ‘덤벼라! 눈아! 아무리 내려봐라! 나는 끝까지 즐길 거야!’에 가깝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옷차림부터 달라진다. 방한용 스키 바지와 영하 30도에서도 발의 온기를 지켜주는 두툼한 부츠는 필수다. 귀마개와 털장갑, 목도리까지 모두 두르고 나면 집을 나설 준비가 된 거다.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가기 전에는 쉬는 시간에 모두 밖으로 나가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게 학교 규칙이다. 그러니 눈과 추위를 피할 도리가 없다. 어쩌면 아무리 추워도 신나게 뛰어놀겠다고 다짐하는 아이들이 현명한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은 온몸을 두툼하게 감싸는 옷을 갑옷처럼 껴입고도 잘만 뛰어논다. 얼음 위에 미끄러져도 순식간에 일어나고 눈밭에서도 신이 나서 축구를 한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난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갈 때 아이들보다 더 신나게 즐기는 쪽을 택했다. 즐기겠다고 마음을 먹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예 눈썰매를 꺼내 들고 집을 나서곤 했다. 내 손끝에 매달린 눈썰매를 알아챈 아이들은 신이 나서 달려왔다. 질퍽질퍽하고 미끄러운 도로를 어기적어기적 걷다가, 또 기분이 내킬 때면 눈썰매에 앉았다가,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다 보면 지루한 하굣길도 금세 재미있어졌다. 중간중간 갓 내린 깨끗한 눈을 한 움큼씩 주워 먹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눈을 사랑하는 건 아니다. Snowbird의 두 번째 정의에 설명된 대로,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힘든 사람들은 겨울마다 자동차나 비행기에 몸을 싣고 플로리다나 애리조나같이 끝없이 햇살이 쏟아지는 곳으로 떠난다. 그들에게 겨울은 피하고 싶은 계절일 뿐이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달랐다. 관세나 정치 문제로 국경을 넘는 발길이 줄었고, 대신 캐나다 안에서 겨울을 즐기는 사람이 늘었다. 매년 남쪽으로 떠나던 snowbird들이 이제 북국의 눈에서 즐겁게 뒹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전에는 추위를 피해 날아갔고, 이제는 눈을 즐기는 사람들. 이들이 겨울을 즐기는 방식은 180도 달라졌지만, 이래도 snowbird, 저래도 snowbird라는 게 흥미롭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어의 뜻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그 단어에 깃든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일이다.
Snowbird, 눈을 피해 떠나는 사람, 그리고 눈을 사랑하는 사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속도로 이 계절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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