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암센터라고 했다. 방구석에서 한 달도 안 된 아기를 트림시키다가 아빤 거긴 왜 가 있냐고 되물었다. 아빠는 “병원에서 소견서를 써줬어. 암이니까 보냈겠지” 했다. 나는 뜬금없는 소식에 웃으면서 “아빠가 무슨 암이야!”하고 웃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아빠가 괜히 암센터에 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빠는 얼마 전부터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백내장 수술을 하고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운전이 어렵다고 했다. 최근 안부 전화에 아빠는 “아휴, 살이 쏙 빠졌어”라고 해서 나는 그때도 웃었다. 퉁실퉁실한 아빠가 또 엄살을 부리나 보다 했다.
아빠와 통화를 마치고 곧장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누가 그래? 아빠가 그래? 너한테는 비밀이었는데”했다. 아빠는 간암이고, 몸 안에 얼마나 암세포가 퍼져있는지 진행 상황을 보기 위해 암센터에서 정밀 검진을 받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어차피 알게 된 거, 소식 계속 전할 테니까 너는 애나 잘 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리둥절했다. 눈물이 났다. 우는 나를 본 산후 관리사님은 “원래 엄마랑 통화하고 나면 산모들 다 울어. 괜찮아” 하셨다. 별말 없이 눈물을 닦았다.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 새벽, 수유를 마치고 깜빡 졸았다. 아빠가 꿈에 나왔다. 적당한 덩치에 건강해 보이는, 젊은 시절 아빠의 모습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거봐! 아빠가 무슨 살이 빠져! 에이!” 하면서 웃었다. 안심했다. 꿈에서 깬 뒤, 정말로 아빠가 많이 아프다면, 이제 못 볼 아빠의 모습인 걸까 하고 마음이 붕 떴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못해 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아빠는 괜찮을까. 간암으로 살까지 빠졌다면 대체 얼마나 안 좋아진 걸까. 밤새 AI에게 병원에 물어야 할 질문들을 무색하게 던졌다. 날이 밝고,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 무서웠다.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엄마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기쁜 소식이 있었다면 문자라도 남겨줬을 텐데.
힘이 빠진 채로 깜깜해진 저녁에 전화를 걸었다.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담담해야지 하고 다짐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도 나와 같이 담담함을 다짐을 한 듯했다. “간에서 시작한 암이 담도암으로, 허파로, 혈액으로 전이되었어. 입맛이 없대. 밥을 몇 숟갈도 못 떠. 네가 해줄 역할은 아빠가 항암 주사를 계속 맞을 수 있게 다 낫고 같이 여행 가자, 맛있는 거 먹자, 뭐 하자 이렇게 기쁘게 미래를 말해주는 일이야. 아빠가 치료를 멈추겠다고 하면 손 쓸 수 있는 게 없대. 아빠가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밥도 드실 거야.”
아빠의 암 선고를 들은 후부터 나는 매일 같이 아빠에게 전화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은 막내딸의 목소리로 밥 좀 먹으라고, 아빠 목소리 조그매서 하나도 안 들린다고, 첫째가 곧 두 살 생일이니 파티하러 집에 찾아갈 거라고 선포했다. 아빠는 완치가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아직 모른다. 폐까지 암세포가 달라붙었다는 소식도 모른다. 먼 길 오지 말라고, 24개월과 신생아인 아기들이 너무 어리니 세돌 지나고 나서 오라고 나를 말린다. 모든 통화 끝엔 역시나 “너는 애나 잘 봐”가 붙었다. 누가 부부 아니랄까 봐, 아니 부모 아니랄까 봐. 본인이 암에 걸려도, 남편이 암에 걸려도, 출산한 막내 딸에게는 그저 투박한 “애나 잘 봐”를 주문처럼 외우는 엄마와 아빠.
엄마 아빠의 말대로 나는 아이들만 잘 보고 있으면 되는 걸까. 모르겠다. 의사의 말대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일 년 반이라면 아빠는 둘째 돌잔치를 볼 수는 있는 걸까. 아이들을 데리고 한 달에 한 번 친정에 간다고 하면, 아빠를 만날 수 있는 건 고작 열 번 남짓이 되는 걸까. 다섯 번이 되어 버리면 어쩌지. 엄마의 말대로, 아빠의 바람대로 내가 이렇게 애나 보고 있으면 되는 걸까. 내년 크리스마스엔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웃고 있을 수 있는 걸까?
* 글쓴이 - 보배 <우리의 심장이 함께 춤을 출 때>를 쓰고, 공저 프로젝트로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세상의 모든 청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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