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에 해세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에세이 <차라투스트리의 귀환>에서 이렇게 썼다. "(...) 당신이 느끼는 고통의 원천이 당신 자신 안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도 좋지 않겠는가?(...)" 어쩌면 영원회귀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가하는 고통과 타인 에게 가하는 고통을 인정하는 일일 것이다. 인정하기, 곧 기억해내고 후회하고 책임감을 느끼고 결국 용서하고 사랑하기." (<심연호텔의 철학자들>, 존 캐그 중)
삶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나의 고통이 내 책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한다. 내 삶의 고통에 대한 원인을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찾으며, 분석하고, 증오하는 걸 멈추고, 고통을 끌어안는 것이라고 한다. 원망, 증오, 원한의 감정을 내려놓고, 자기 고통의 출처를 자기 자신으로 인정하고, 고통의 뿌리가 된 나를 마주보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니체의 입장이자, 불교의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에는 누구나 당장 반발심을 가질 법하다. 내 삶의 고통이 온전히 내 탓이라고 하기엔, 이 세상은 너무 부조리하지 않나? 이 사회구조의 불평등,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는 온갖 현실과 문화, 나아가 나를 불행에 빠트린 가족이나 누군가의 존재를 어떻게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일까, 니체는 자기 삶에 대한 긍정에 이를 때도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고통을 끌어안기라고 보았다.
사실 무언가에 대한 원망으로 고통을 끝내고 삶에 대한 사랑에 이를 수만 있다면, 그런 원망도 꽤나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원수에게 복수를 하거나, 금융자본주의에 폭탄테러를 가하고, 대통령을 암살함으로써 '삶의 긍정'이 열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이 고통을 마주하고 끌어안기가 '더 나은' 진정한 삶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시도해볼만한 일일 수도 있다.
물론, 니체는 그 과정에서 죄책감의 노예가 되어 자기 비하나 자기 저주에 이르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니체가 가장 경계한 것이 '죄책감'이다. 고통의 원인을 나로 돌린다는 것은 내가 모든 일의 '잘못'이라고 믿으며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스스로 그 고통을 수정하고 나아갈 수 있는 '교정하는 힘'을 추구하는 쪽에 가깝다. 더 이상 고통에 굴복하여 원망과 죄책감의 구렁텅이에서 살지 않겠다, 오히려 고통 다음으로, 오늘의 긍정으로,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결심을 지니는 일이다.
인간은 결코 백지일 수 없다. 우리는 항상 얼룩져 있다.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온갖 상처들,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정기복, 마음의 번뇌, 걱정, 고민, 오락가락이 오늘 하루에 가득하여 그 모든 걸 떨쳐내고 백지처럼 깨끗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니체는 우리가 살아야할 태도가 있다면, 일종의 '백지 되기'라고 본다. 지나간 과거는 잊어라. 만약에 우리가 영원히 무한하게 환생해서 오늘을 되풀이하여 살아야 한다면, 과거의 늪에만 빠져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오늘 나에게 가장 좋은 삶을 살 것인가. 니체는 오늘부터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투명하고 명징하게 살아내라고 말한다.
니체의 이야기는 삶의 궁극적 해답을 될 수 없을지언정, 항상 삶을 돌아보고 일깨우게는 만든다. 과연 나는 오늘 백지처럼 삶을 대하고 있는가.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면, 만약 이 오늘을 내일도 모레도 무한히 반복해야 한다면, 기꺼이 이 오늘을 또 살아낼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하루를 살아내고 있나. 사실, 그에 답하려면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는 알고 있다. 오늘도 오늘치의 사랑을 하고, 오늘치의 글을 쓰는 것이다. 그 두 가지를 해내는 한, 내가 이 하루를 후회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온전히 사랑하고 좋은 글을 쓰려면 남탓을 멈추고 자기 비하에서 빠져 나와야한다는 것도 알 것 같다. 그러면 비로소 진실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ai, 글쓰기, 저작권>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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