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원래 후회하는 존재인 줄만 알았다. 다른 이유는 없다. 내가 늘 후회했기 때문이다. 학생 때의 나도, 이십 대 때의 나도 연말에 한 해의 나를 돌아보면서 게으르고 무능했던 스스로에게 실망하곤 했다. 한 살 더 먹는 것이 어찌나 끔찍했는지. 목표는 늘 단순했고, 실패했을 때는 처참한 기분이었다. 학생 때는 공부하기, 직장에 다닐 때는 돈 모으기나 운동하기 정도였다.
누구나 연말에는 후회 한 가마니쯤 얹고 산다지 않았는가. 그러나 올 겨울에는 왠지 다르다. ‘연말 후회’가 아니라 ‘연말 뿌듯’이라는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연말에 느껴지는 묘한 쓸쓸함,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아래 류시화 시인의 시처럼, 나에게도 어쩔 수 없는 슬픔이 들이닥쳤다. 남편의 사업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울려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류시화,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전문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던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슬픔'을 '새로움'이나 '가능성'으로 승화시키려면 체력이 필요했다. 정신을 차려야 했고, 내가 일어서야 했다. 그래서 운동을 했다. 미뤄 왔던 순례길을 떠나는 마음으로 월, 수, 금 수영에 갔다. 고비도 있었다. 7월 정도에 몸이 아파서 몇 달 가지 못하면서 다시 살이 찐 것이다. 지금도 3kg 정도 불어난 상태지만, 몸매가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는다. 이제 검은색이 아니라 분홍색이나 하늘색 수영복을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초급반을 벗어난 중급1반이다.
글쓰기 클래스를 열었다. 가장 놀라운 일이다. 내가 단독저서를 낸 작가도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아서 글쓰기로 돈을 버는 일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마흔 살 즈음에는 가능하려나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내가 생활비라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온라인으로 글쓰기 수강생을 모집했다. 한여름쯤, 여섯 명 앞에서 zoom을 켜놓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한 ppt를 켰다. “이게 내 흑역사라 할지라도 녹화하겠습니다” 하며, 내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한 번 올렸더니 뻔뻔해져서 이제 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저장해둔 녹화본을 올린다. 일부 공개 영상이지만, 졸지에 유튜버까지 되다니!
공저를 두 권이나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결혼에 관한, 다른 하나는 공부에 관한.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다. 나처럼 직장생활 안 하는 사람에게, '동료'의 존재는 멸종위기동물처럼 귀하다는 걸 알았다. 내 글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타인의 글을 읽는 일을 기꺼이 해냈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라 늘 사람을 무서워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을 대하는 게 편해진다. 남편의 사업 실패 '덕분이다'. 지난 주에 수영장에서는 "젊은 사람이 참 잘 웃고 싹싹하다"는 말도 들었다. "말 걸면 귀싸대기 때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던 10대 때에 비하면, 세상이 뒤집힌 셈이다.
태어날 때, 내 몸은 ‘세모’이지 않았을까. 이제는 조금 깎여서 원에 아주 조금 가까운 모양이 되었다. 모서리에 찔려서 다치지는 않을 정도로.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전문
사람은 변한다. 시는 절박한 삶에 불쏘시개가 되어주었다. 수영장으로 다시 가기 망설여질 때마다 <담쟁이>를 읊조렸다. 물에 들어가고 나면, 녹는 마음이 있었다. 엄청 대단한 건 아니다. 알약을 먹듯, 마음을 꿀꺽 먹고 해낸 일이다. 글쓰기 클래스도, 그냥 도전했다. 쉽지는 않았다. 수업을 하면서 내 지식의 한계도, 열정의 밑바닥도 마주해야 했다. 1기가 끝나고는 그런 우울감에 두 달쯤 수업을 쉬었다. 그리고 가을에 다시 클래스를 열었다. 12월인 지금은 5060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기사 쓰기 수업 2기를 하고 있다. 우울한 건 우울한 거고, 수업은 수업이었다. 하다 보니 괜찮아졌다. 심지어 1:1로 글쓰기 과외를 받는 분도 생겼다.
지난주에 읽은 이슬아의 인터뷰집<창작과 농담>의 한 대목이다. 황소윤과의 인터뷰 중 이슬아가 한 말.
“남들이 작가라고 불러주지 않더라도 일단 내가 내 깃발을 세워야 하더라고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지면을 맡겨주시면 잘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어필하며 다니던 이십 대 초반이 생각나요."
서른 훌쩍 넘어 깃발을 꽂을 자신감이 생긴 것이 다행이다. 늦었다는 말이 어디 필요하던가. 오히려 나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글쓰기에 도전하는 수강생분들을 보면 의욕이 타오른다. 그런 덕인지 수강생의 기사가 채택되는 일은 매번 일어나고 있다. 기쁨을 넘어서, 감동이나 환희로운 느낌이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것이라 정의하기 어려웠는데, '타인의 성공에 하얗게 기뻐하는 마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일명 '타성하기'('타인의 성공에 하얗게 기뻐하는 마음'의 줄임말)마음을 가지게 된 건, 내가 해낸 일 중에 제일 대단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려운 시기에 이 뉴스레터를 연재한 것도, 나에게 페이지를 내어주신 것도 든든한 응원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나를 무대 위에 세워준 정지우 작가 이하 세모문 멤버들에게 감사드린다. 내년에도 연재를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작가보다 독자가 더 귀한 세상. 살기 팍팍한 만큼, 선한 마음이 복이 되는 세상. 여러분은 귀한 존재이고, 내게 올해의 기쁨이 되었다. 여러분의 세상이 첫눈 오는 봄처럼 신비로웠으면 좋겠다. 첫눈 내릴 때 봄을 그리워하지 말기를, 봄에 공연히 겨울을 기다리지 말기를. 기다리는 것은 좋은 것이니, 한껏 슬퍼하기를.
이른 새해 인사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가명 - 서나연
*코너 제목 - 하루 한시 ㅣ 에세이 쓰다, 시를 배우다
*코너 소개 - 에세이를 쓰다 시를 배우게 된, 엄마이자 작가의 기록. 시 한 편을 중심으로, 일상의 감정과 나름의 결론을 햄버거처럼 차곡차곡 쌓아 전합니다. 가끔은 뜨겁고, 가끔은 물컹한 한입을 함께 나눠요.
*작가 소개 - 문예창작과를 나와 유독 ‘시’감성이 충만한 글러버입니다. 매일 쓰고, 다듬으며 살아갑니다. 공저 에세이집 <전지적 언니 시점> 등을 펴냈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무엇이 될까요?” 그 질문이 저를 살게 합니다. 언젠가, 저는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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