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결혼식 문화를 보고 있자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신랑·신부는 양복을 입는다. 양가의 아버지도 양복을 입는다. 하지만 양가의 어머니는 한복을 입는다. 여자는 한복, 남자는 양복으로 구분하든지 아니면 모두가 양복을 입든지 할 것이지, 이게 무슨 ‘혼종’인가 싶었다. 게다가 결혼식 절차에도 여러 문화가 뒤섞여있다. 서양 작곡가 멘델스존과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에 맞추어 결혼식을 치르고 난 뒤에는 한국 전통문화에 따라 폐백을 진행한다.
복식이든 절차든 한 가지로 통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번잡한 결혼 준비가 조금은 가벼워질테다. 내 생각을 전하며 양가의 어머니도 양장을 입으시기를 권해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의 결혼식에서 복식을 통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시도가 아주 새롭지만은 않다. 결혼식 후기를 검색해 보면 양가의 어머니도 양장을 맞춰 입은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추세라면 나의 또래가 혼주가 되는 시대가 오면 어쩌면 양가의 어머니도 한복보다는 양장을 입는 것이 더 일반적인 경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
|
|
|
‘끔찍한 혼종’이라는 인터넷 용어가 보여주듯이 ‘혼종’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혼종’과 유사한 의미의 ‘잡종’은 부정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 이와는 다르게 ‘순종’이라는 말은 오히려 귀하고 고결한 이미지와 연결된다. 해리포터에서도 일부 순수 마법사 혈통의 가문이 자신들을 우월하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유전자 관점에서 본다면, 서로 다른 유전자가 섞여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어야 생존에 유리하다.
모두가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집단을 상상해 보자. 어느 한 사람이 코로나 같이 심한 감기에 걸려 끙끙 앓다가 사망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다른 사람들은 같은 질병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모두가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는 사망에 이르더라도 누군가는 살아남고 종이 멸종하지는 않을 테다. 즉, 다양성이 생존에 더 유리한 셈이다. |
|
|
|
사진 1. 다양성은 유리하다. 생물학적인 생존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협업에서도 다양성은 유리하다. (출처: Unsplash) |
|
|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연구할 때도 다양성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 논문이 인용된 횟수는 해당 연구 논문의 성과를 판단하는 대표적인 지표이다. 다른 논문을 인용하는 행위는 해당 논문의 학문적인 공로를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논문의 인용 수는 네이처, 사이언스 등 학술지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IF(Impact Factor, 영향력 지수)를 비롯해 연구자의 경력을 평가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연구 성과 측정의 기본이 되는 논문의 인용 수에도 다양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공동 연구에 참여하는 연구자의 국적, 인종, 소속 기관, 성별, 학계 경력, 전공 등 여러 측면의 다양성을 다룬 연구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공동 연구팀 구성원이 다양할수록 논문의 인용 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간단하게 말해서 다양한 사람이 모여 연구할수록 더 좋은 연구를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러 다양성의 척도 중에서도 인종 다양성이 논문의 피인용 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종에 따른 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개개인의 사고방식을 다양하게 만드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양성이 가지는 긍정적인 영향은 과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뮤지컬, 비디오게임, 재즈 연주 등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에서 다양성이 좋은 성과로 이어진다는 점이 밝혀졌다. |
|
|
한국 문화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로 대표되는 K-pop은 물론, 드라마 <오징어 게임>, 영화 <기생충>,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까지 세계는 지금 한국 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이러한 한류 열풍의 배경에는 한국 문화가 지닌 혼종성, 즉 서로 다른 문화적 요소를 융합하고 재창조하는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가 공유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기반으로, 한국의 놀이 문화를 데스 게임이라는 글로벌 장르 문법과 결합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같은 아이들의 놀이가 폭력적 서바이벌로 전환될 때, 아이러니 속에서 새로운 긴장감이 만들어진다. 반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케이팝 걸그룹을 한국 전통의 무속 문화와 결합해 ‘몬스터 헌터’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이며 전통과 대중문화가 맞물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결혼식 문화 또한 한국 문화의 혼종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한국 문화와 뒤얽혀 한국만의 독특한 결혼식 문화가 자리 잡은 셈이다. 이러한 문화의 혼종성을 받아들이기로 한 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폐백은 생략하고 간편하게 신구의 조화를 이뤄낸 순서를 마련하기로 했다. |
|
|
|
사진2. 닭 인형 날리기 이벤트를 위해 구입한 닭 인형들 |
|
|
전통 혼례에서는 양가 어머니가 신랑·신부의 앞날을 축복하며 살아 있는 닭을 날려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전통을 재해석해 살아 있는 닭 대신 닭 인형을 던지고, 그 인형을 잡은 하객에게 치킨 기프티콘을 선물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하객들은 그 어느 순간보다 집중했고, 기대하고 또 환호했다. 결혼식이 결혼 당사자만의 행사가 아닌,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결혼식은 전통과 현대, 진지함과 유머가 어우러진 혼종의 축제로 마무리되었다. 문화란 언제나 섞이고 변주되며 새롭게 만들어진다. 그러니 일관성을 고집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조화 속에서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기대해 보기로 한다. |
|
|
* https://allculture.stibee.com 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즐겁게 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