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www.pixabay.com(특정 대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
웹소설 강의를 하다
내가 강의를 하다니!
“웹소설 강의 한번 해 줄래요?”
지인에게 부탁을 받은 것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는 창작을 하면서 동시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이였는데, 한 대학의 소설 창작 클라스에서 특강을 열고 싶다고 했다. 아는 웹소설 작가가 나뿐이냐고 물을까 고민했다. 내가 아는 더 잘 나가는 작가를 소개해주면 어떠냐고도 물을까 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 것도 묻지 않았다. 실은, 나는 오래전부터 웹소설 강의 한번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아주 예전에 웹소설은 아니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었고, 지금은 웹소설 작가니 웹소설도 한 번 가르쳐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잘 나가는 웹소설 작가도 아닌데 그런 날이 내가 죽는 날까지 올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내게 정말 그런 기회가 온 것이었다.
후회를 하기 시작한 것은 수락 후에 본격적으로 강의 준비를 하면서였다. 생각해보니 방대한 웹소설에 대한 내용 중에 무엇을 빼고 넣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 시간 좀 넘게 강의를 하면 된다는데, 어느 정도를 준비해야 그 시간에 맞을지도 알 수 없었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어느 정도 관심이 있고 웹소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게 강의를 부탁한 지인에게 물어봐서 아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갖가지 환상과 공상들도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1시간 만에 강의가 끝나버리는 상상, 강의가 있는 아침에 잠들어 버려서 강의 시간에 집에서 전화를 받는 상상, 지하철을 잘못 타거나 길을 헤매서 강의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상상, 학생들이 강의를 듣다가 ‘대체 이게 말이냐 똥이냐’ 하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상상 등 나를 불안하게 하는 상상은 끝이 없었다.
웹소설 강의에 관련된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웹소설 전반에 대한 소개서였다. 그 책을 읽으니 어떻게 강의를 해야 할지 대강 얼개가 세워졌다. 프리젠테이션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너무나 고맙게도 요즘에는 AI가 다 만들어 주었다. 준비는 오래지 않아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아쉬운 것이 있었다. 이대로 끝내면 어느 도서관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웹소설에 대한 소개서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시간 내어서 학생들을 만나는데, 나에게는 귀한 이 시간이 그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웹소설 소개와 더불어 웹소설 작가인 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덧붙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지 인기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현직 작가의 말이라면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긴장으로 전날에 몇 시간 자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정신은 맑았다. 강의 시간이 딱 점심 시간이었으므로 점심은 먹지 못할 것 같아 아침을 어제 먹다 남은 부대찌개로 든든히 먹었다.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대학에 도착했다. 아담하고 예쁜, 가을 단풍이 가득한 캠퍼스를 보니 마음이 정화되기는커녕 더 떨려왔다. 내게 강의를 부탁한 지인은 학내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샌드위치를 먹을 거냐는 물음에 나는 따뜻한 차 한 잔만 부탁했다. 내게 서린 긴장의 기운을 그도 읽은 듯이 웃으며 내가 원하는 차를 주문해 주었다. 시간이 되었고, 드디어 나는 그와 함께 대학 강의실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몇몇 학생들이 보였다. ‘어떡하지. 나 무슨 말하지.’ 어제까지 연습했던 것이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졌다. 준비한 프리젠테이션 화면이 띄워졌다. 나는 죽기를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하얗게 얼어붙었다.
오들오들 떨면서 내 소개를 했다. 필명은 말하지 않고 그냥 작품 갯수만 이야기했다. 내게 내세울 것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인기가 있든 없든 꾸준히 쓴 것. 다행히 그 갯수에 놀랐는지 학생들의 집중력이 높아졌다. 학생들은 대개 흥미 있게 내 강의를 들었다. 긴 시간 동안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나중에는 강의를 하는 내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목이 타서 생수를 계속 마시다 보니 나중에는 거의 한 통을 다 마셨다. 그래도 잘 들어주니 강의하는 것이 점점 재미가 있었다. 강의 말미에 드디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돈을 많이 벌었을 때도, 인기를 얻었을 때도 아닌 내 이야기가 다른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을 때였다고. 내 삶에서 웹소설이 갖는 의미를 아는 것이, 돈 잘 버는 웹소설 작가가 되는 것보다는 내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학생들의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강의를 마치고 난 후
꿈같은 경험을 하고 나서 시간이 흘렀다. 강의 당일에는 정말 머릿 속이 하얘져서 강의를 잘 마쳤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지만 지나고 나니 여러가지 후회가 밀려들었다. 강의를 괜히 했다는 후회보다도 강의 내용에 대한 아쉬움이다. 이런 내용은 좀 더 다루었어도 됐었는데, 이런 질문에는 이런 답변을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 지금이라도 그 학생에게 돌아가 다시 대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즉석에서 질문을 듣고 답하는 연예인이나 종교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강의 말미에 했던,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내가 왜 웹소설을 쓰는지, 웹소설 작가로서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이며 웹소설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꼭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기 전에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웹소설 강의나 책 제목 등을 보아도 ‘대박 작가 되기’ ‘억대 수익 웹소설 작가’ ‘직장 때려치고 웹소설 작가’ 등의 수익부터 내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작가 지망생이 웹소설 작가 하면 어떤 작품을 쓰고 또 어떤 장점을 가지고 싶은지보다 얼마나 버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니 거기에 대고 ‘나는 웹소설을 쓰면서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질까 싶었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하는 질문에도 수익보다는 웹소설 내용에 대한 질문이 더 많았다. 질문에 답을 하면서, 어쩌면 내가 작가 지망생들에게 가지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꼭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내가 대박 작가라고 말하지 않아도 내가 내 작품을 꾸준히 내고 있는 작가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고 공감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내 삶에 대한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억대 연봉 작가가 아니라도, 작품을 내는 족족 세간의 주목을 받는 그런 작가가 아니라도 그저 변두리의 이름 없는 작가라도 충분히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나는 강의를 하고 그 강의를 들어주는 존재들을 통해 절절하게 느꼈다.
최근에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으면서 글을 놓아야 하나 고민했었다. 웹소설이 생각만큼 큰 벌이가 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나를 믿고 함께 작업해준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였다. 그러나 돌아보니 나에게는 웹소설이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닌, 내 이야기를 하면서 타인의 공감을 유도하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그렇게 글을 써 왔었다. 비록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인기가 생각만큼 많지 않아도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은 있었고 내가 내 마음에 진실한 이야기를 쓸수록 독자들은 그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공감을 표했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러면 나는 글을 놓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글쓴이 - 김지영
한때 교직에 몸을 담았다가 그만 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웹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때로 인기 있는 글들을 보며 질투도 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를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늘 습작생의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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