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 묻은 책을 사는 사람들
교환독서를 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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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운영하다 보면, 가끔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마주한다. 크레타에는 내가 읽었던 책에 ‘열람용 책입니다’ 스티커를 붙인 샘플북이 많다. 조심스럽게 새책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편하게 발견한 책을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굳이 새 책이 옆에 있는데도, 일부 손님들은 굳이 열람용 책을 찾아 구매하는 것이다. 헌책방도 아닌 곳에서 굳이 책등이 틀어져있고, 밑줄이 여기저기 그어져있고, 군데군데 모서리도 접혀져있고, 낙서까지 되어있는 헌책을 사는 이유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최근 확산되는 교환독서(Reading Exchange) 흐름과 맞닿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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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독서라는 방식
교환독서는 한 권의 책을 여러 사람이 읽으며 밑줄·메모·포스트잇 등 개인의 독서 흔적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각각 남겨진 독서의 흔적이다. 누가 어떤 부분에 밑줄을 쳤는지, 어떤 문장에서 잠시 멈춰 생각에 잠겼는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궁금해하는지가 다음 독자를 위한 일종의 독서 지표처럼 작동한다. 독서는 오랫동안 개인의 고독한 영역에 가까웠지만, 교환독서는 이 고독을 ‘기록된 연결’ 형태로 변환한다.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독서를 참고한다는 점에서 지연된 방식의 소통에 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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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일기처럼 주고받는 독서
최근 손님들과 나눈 대화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사장님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해요.”라는 질문은 단순 추천 요청이 아니다. 이는 마치 친구에게 교환일기를 건네며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방식과 유사하다. 독자들은 이제 책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교환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한 페이지의 밑줄은 상대의 짧은 생각 메모처럼 기능하고, 다음 독자는 그 흔적에 가볍게 응답한다. 이런 상호작용은 진지한 토론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대화에 가깝다. 결국 교환독서의 본질은 ‘책을 매개로 한 1:1 대화의 확장판’이라는 사실을 서점에서 자연스럽게 확인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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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독서가 젊은 세대에게 가볍게 스며드는 이유
10·20대에게 교환독서는 특별한 의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놀이에 가깝다. 예전 세대가 교환일기에서 서로의 하루를 적고 답장을 기다렸던 것처럼, 지금의 교환독서는 ‘책 속의 한 문장을 빌려 감정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디지털 메시지는 빠르지만 금세 사라지고, 책 속 흔적은 느리지만 오래 남는다. 이 느린 소통 방식은 오히려 집중도가 높고, 상대의 생각을 더 깊게 음미하게 한다. 밑줄 하나가 긴 설명을 대신하고, 작은 메모 하나가 관계의 온도를 짐작하게 한다. 교환독서는 거창한 독서 운동이라기보다는, 느슨한 관계 속에서 이어지는 소규모 대화 방식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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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흐름 속에서 교환독서가 만들어내는 가벼운 연결의 의미
요즘 사람들은 큰 관계보다 작은 신호를 더 선호한다. 교환독서는 깊은 관계를 요구하지 않지만, 완전히 단절된 관계도 아니다. 이 방식은 ‘나를 크게 내놓지 않아도 되는 연결의 방식’을 제공한다. 책 속의 밑줄은 나를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 생각을 조금 공유하는 수단이다. 이런 소소한 흔적들이 쌓이면, 서로의 경계를 억지로 넘지 않는 건강한 거리감이 유지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요즘의 분위기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결국 교환독서는 부담 없이 유지 가능한 관계의 형태가, 독서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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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 - 무겁지 않은 연결의 장
서점은 이 변화 속에서 굳이 무엇을 거창하게 시도할 필요는 없다. 가벼운 소통이 가능한 환경만 만들어주면, 독자들은 스스로 자연스러운 교환을 시작한다. 열람용 책이나 손글씨 추천지는 이런 교환을 유도하는 작은 장치로 충분히 기능한다. 독자들은 서점이 마련한 공간에서 서로의 흔적을 발견하고, 또 다음 흔적을 남긴다. 서점은 이 과정을 기록하거나 통제하기보다,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자율성을 지켜주는 편이 더 적합하다. 이를 통해 서점은 ‘무겁게 얽히지 않아도 되는 독서 기반의 교류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앞으로 동네서점은 거대한 커뮤니티가 아니라, 가벼운 연결이 가능한 작은 플랫폼이 되어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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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와 자유의 시간
골목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과 사람이 만나 펼쳐지는 소소하지만 진솔하고,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글쓴이 - 강동훈
부산 전포동에서 '크레타'라는 작지만 단단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책을 잘 파는 서점인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bookspace.c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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