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이해를 위한 참고 사진. 보르네오섬 헤드헌터 부족인 이반족. 출처: Audley Travel
몇 년 전 코타키나발루 여행에서 숙소 근처에 있던 악어 농장에 간 적이 있다. 오래되어 녹슨 다리 아래 물속에는 수십 마리의 악어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여기서 실수로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지면 악어들이 달려들 거라는 생각에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쭈뼛쭈뼛 다리를 통과했다. 조련사들이 생닭을 악어들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수십 마리의 악어들이 생닭을 향해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악어를 보고 나오는 길에는 생뚱맞게도 '헤드헌터' 전시실이 있었다. 코타키나발루가 속한 보르네오섬에는 헤드헌터들이 19세기 말까지도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의 용맹함을 증명하고 부족의 번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부족 남자의 머리를 벴다. 전시실에는 강한 타악기 리듬의 전통 음악이 깔려 있었다. 그 소리는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헤드헌터 부족에서 태어난 남자아이는 성인이 되면 다른 부족 남자의 머리를 베어와야 남자로 인정받았다. 성공하지 못하면 결혼도 어렵고, 사실상 공동체의 경계 밖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헤드헌팅은 머리를 베어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배웠다. 어떤 사회에서는 당연한 미션이, 다른 사회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한마디로 나는 헤드헌터들과는 너무도 다른 반대쪽 사람이었던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내 기억에 오래 머문 건, 생닭에 달려들던 악어들보다 헤드헌터들이었다. 나는 상상해보았다. 내가 그 시대 헤드헌터 부족의 남자아이로 태어났다고. 나는 스무 살이 되어 다른 부족 남자의 머리를 가져와야 했다. 나는 이 의무를 평생의 숙제로 생각해왔다. 결혼도 하고 싶었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구성원이 되고 싶었다.
풀숲에 숨어 있는데, 다른 부족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내가 숨어 있다는 걸 모른다. 나는 칼을 한 번 더 단단히 움켜쥐고, 칼로 그를 내리치려 한다. 그런데 갑자기 내적 갈등이 생긴다. 저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이 치밀어 오른 것이다. 그가 살짝 몸을 틀었을 때 그의 옆얼굴이 너무 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패하면 나는 낙오자가 된다. 결국 나는 가장 좋은 타이밍을 놓치고 하고 싶지 않은 동작을 실행하고 만다. 나는 그의 목이 아닌 어깨를 내리쳤다. 그는 피를 흘리며 도망갔고 나는 그가 도망가는 걸 바라보면서 주저앉는다.
어쩌면 나는 이런 방식으로 실패하는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칼을 쥔 채 그 자리에 오랫동안 주저앉아 있는 인간. 사회가 요구한 것도, 내 본능도 지켜내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