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괴로운 일이나 상황이 무엇인가? 우리는 아마도 몇 가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가장 괴로운 일이나 상황이 무엇인가? 우리는 아마도 몇 가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내일까지 끝내야 하는 업무, 아픈 아이, 혹은 오늘 상사에게 들은 핀잔까지. 그런데 여기에 질문을 하나 더 얹는다면 대답이 금세 막힐지도 모른다. 바로 “왜 그 일이 그토록 괴로운가?”라는 질문이다.
A는 최근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불만스러운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괴로운 상황이다. A의 아들은 평소에는 착실한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에 틀어박혀 시험 공부도 하지 않고 게임만 한다. 잔소리를 하자니 통할 것 같지도 않고, 괜히 관계만 나빠질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A에게 “왜 아이의 모습이 그렇게 괴로운가?”라고 묻는다면, “시험이 코앞인데 아이가 시간을 허비하니 당연히 괴롭지 않겠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고통의 이유와 정도는 모두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통의 이유는 뻔해 보인다. 우리는 흔히 괴로움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외적인 요인을 먼저 떠올린다. 일이 너무 많아서, 아이가 아파서, 상사가 심한 말을 해서와 같이 말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찾는 방향을 바꿔 마음속을 들여다본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A는 “아이가 이러다 잘못될까 봐”, “아이와의 관계가 멀어질까 봐”라는 두려움을 찾아냈고, 결국에는 “내가 아이를 잘 키워내는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는 자책감에까지 닿았다. 대부분의 고통스러운 생각의 끝은 자기비난으로 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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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해야 하는 중요한 질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결국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눈 앞에 보이는 문제점과 불만에서 시선을 돌려 ‘내가 원하는 모습’을 물어봐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아이가 어떻게 되길 바라나?”, “나는 아이와 어떤 관계가 되길 바라나?”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볼 수 있다.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고 괴로워하는 A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길 바라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 있다면 가장 좋다.
처음에는 다소 뜬금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내가 바라는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때가 있다. 문제에만 집중할수록 불안은 커지고 시야는 좁아진다. 마음은 더 나쁜 상황을 상상하며 문제의 심각도를 부풀려 버린다. 하지만 갈등 너머의 ‘바라는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문제와 조금 거리가 생기고 긴장이 가라앉는다.
A는 “아이를 이해하고, 서로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답변만으로는 그리 개운해지지 않는다. 지금 현실은 그리 아이와 화목해 보이지도 않고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간극 때문에 더욱 침울해질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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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필요한 마지막 질문이 있다. 이미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고 가정하고 묻는 것이다. “만일 내가 좋은 부모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즉, ‘구체적인 행동’을 묻는 질문이다.
내가 이미 ‘아이와 관계도 좋고 이해를 잘 해주는 좋은 엄마’라면, 지금 어떤 행동을 할까? A는 “그런 엄마라면 재촉하고 걱정하기보다는 아이가 어떤 상황인지 물어주고, 아이가 스스로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줄 것”이라고 답했다.
A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는 ‘아이의 시간을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엄마였다. 비록 지금의 A가 그런 엄마가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엄마인 척 해볼 수 있다. 그런 엄마라면 했을 법한 행동을 실제로 해보는 것이다. 아이에게 고민을 물어봐주고, 신뢰가 담긴 시선을 보내줄 수 있다.
물론 어떤 사람에서는 적극적인 가이드와 구체적 행동을 이끌어주는 양육이 더 도움이 된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나의 가치와 맞지 않는다면, 나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A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양육자의 모습대로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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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이 언제나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도 없고, 언제나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금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의 내가 했을 법한 행동 하나쯤을 해볼 수 있다. 그런 행동을 하나씩 흉내내볼 때, 언제가 내가 바라는 모습과 조금 더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 또한 조금은 가볍게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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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Istock
*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공부가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감정 글쓰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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