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루르드에서의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들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도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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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guide-collective.com_'Le Petit Parisien_by Willy Ron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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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가을 방학을 맞아 우리 가족은 1주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대부분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한국을 길게 다녀오는 정도로 가족여행을 갈음하곤 했는데, 올해는 한국을 방문하지 않아 가족 여행으로 평소에 가고 싶었던 프랑스의 작은 마을 '루르드'를 방문하기로 했다.
비행기 표를 포함한 교통편과 작은 주방이 있는 숙소를 예약한 다음, 챗지피티와 블로그 등의 도움으로 1주일간의 일정을 정리했다. 그런데 최근에 챗지피티를 이용하면서 느낀 점은 정보를 정말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반면에 그 정보를 실제 활용했을 때의 만족감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여행과 관련된 책을 읽어보고, 웹서핑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찾아 나가다가 그 과정 안에서 또 다른 새로운 정보를 획득하게 되고, 그렇게 계획이 진전되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왠지 나 자신 역시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일종의 효능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쳇지피티는 처음 내가 던진 질문과 정보에 기반으로 해서 '결과물'을 별다른 노력 없이 손쉽게 얻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전의 핸드메이드 계획만큼 나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는 인상은 조금 덜 한 것 같다.
아일랜드에서 런던으로 한 시간가량 또 환승을 하고 약 2시간을 더 비행해서 저녁 시간이 가까워서 루르드에 도착했다. 숙소를 예약하면서 숙박 객들의 리뷰가 그다지 좋지 않아 사실 전날 밤까지 내가 예약한 숙소가 우리 가족이 5일간 잘 지낼 수 있는 공간일지 확신을 할 수가 없어서 그 걱정에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침실과 주방도 분리되어 있고, 주방용품도 잘 구비가 되어 있었고, 침구도 깨끗해 보였다. 와이파이 연결이 시원치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필요할 때는 숙소에 구비된 텔레비전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정도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지내는 동안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아이는 몇 개의 어린이 채널에서 이런저런 만화영화를 보곤 했는데, 여행 후반부에는 만화영화를 통해 약간의 프랑스어를 배울 정도로 흥미를 가지며 텔레비전을 보면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유럽은 늦은 가을에서 겨울이 되면 5시부터 해가 지기 시작한다. 우리 가족은 숙소에 짐을 풀고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작은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저녁 7시가 가까워진 마을의 작은 도심은 창문 너머로 와인을 곁들이며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치는 몇 개의 레스토랑에서 새어 나는 낮은 조도의 불빛을 제외하고는 앞서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어른거릴 만큼 거리는 어두웠다. 프랑스에 왔으니 바게트로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는 아이의 말에 동의하면서 기다란 바게트 한 개와 다른 음식들을 간단하게 샀다.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면서 문이 닫힌 베이커리를 발견하고 내일 아침 갓 구운 크루아상을 사러 나오자는 이야기도 나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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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heinfatuation.com_croissa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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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걸어가면서 바게트를 뜯어먹어도 돼?”
평소 같으면 안 된다고 말했겠지만, 휴가를 오기도 했고 아이가 뭔가 생각이 있겠지 싶어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이는 ‘타닥타닥’ 발소리를 내며 어두운 거리를 걸으면서 ‘부스럭, 사자작’ 소리를 내며 손으로 바게트를 뜯어먹었다. 얼마쯤 지나 나와 남편도 바게트를 먹으며 함께 걷기 시작했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바게트의 맛에 살짝 감탄하며 마음 한쪽으로 따뜻한 라테와 함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허기진 우리 가족은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게트를 반이나 먹어치웠고, 내일 아침에 먹을 바게트가 없겠는 걸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아이는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한 번에 2개의 바게트를 사서 하나는 걸으며 먹고, 나머지는 집에 두고 먹는 거야.’라고 했다. 지난번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지내는 동안 사촌동생의 책장에 있던 ‘오무라이스 잼잼’이라는 책을 내내 읽더니 이런저런 음식에 대해 알게 된 지식들이 제법 쌓인 모양이었다.
다음 날 아침, 피곤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건조한 가을바람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어딘가 한국에서 느꼈던 가을 공기의 건조함을 연상시키는 바람의 질감이 온 방을 감싸는 느낌이 들자 나는 프랑스 어딘가가 아니라 한국의 어느 곳인가에 와 있는 것 같은 상상이 들어서 약간 마음이 들뜨는 것 같기도 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면서 버터도 우유도 아일랜드의 그것과 다른 맛이 나서 재미있으면서도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먹는 버터의 맛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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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가을 피레네 산맥 아래 작은 마을에서
우리 가족은 천천히 길을 걸으며 작은 성당에서 미사도 드리고, 졸졸 흐르는 강 위의 다리에서 한참을 강 위의 오리들이며 떠다니는 나뭇잎 같은 것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일랜드에 살면서 나는 한국의 가을이 늘 그리웠다. 단풍잎으로 물든 나무와 그 산들을 바라보는 일이 내게 늘 행복감을 주곤 했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지평선이 보일 만큼 평지로 이루어진 아일랜드의 지형에서 단풍으로 물든 산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가을이면 떨어진 나뭇잎들이 건조한 가을 날씨에 ‘바사삭’ 소리를 내며 내 걸음에 효과음을 내던 한국의 가을에서의 그 순간이 언제나 좋았고 또 그리웠다. 아일랜드에서도 가을이면 낙엽이 더미를 이루며 길가에 쌓이기도 하지만, 축축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늦가을 날씨에 그 위를 걸으며 ‘바사삭’ 소리가 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피레네 산맥 아래 골짜기에 자리 잡은 이 작은 마을의 낙엽들은 더미를 이루며 이곳저곳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일부러 아이의 손을 잡고 나뭇잎 위를 걸으며 ‘소리 좀 들어봐.’라고 신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평소 같으면 젖은 나뭇잎 위를 걷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가 일부러 나뭇잎 위를 걸으라는 것도 신기한데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이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신기했는지 아이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내내 일부러 나무 더미 위로 걸어 다녔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우리의 발걸음이 냈던 ‘사각, 바삭, 아삭’ 하는 소리가 귓가에 남아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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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후 2시 정도에는 벤치를 찾아내 그곳에 앉아서 가방에서 여러 가지 과자와 초콜릿이 들어있는 봉지를 꺼내 소풍을 온 초등학생 마냥 간식으로 배를 채웠다. 저기 어딘가에 기름 냄새를 풍기며 케첩과 설탕이 가득 발린 핫도그나 떡볶이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이는 아삭아삭 감자과자를 먹었다. 정작 한국에 가면 그런 가게들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사 먹는 일이 별로 없는데, 왜냐하면 집에서 엄마가 해 주시는 밥이며 간식들에 언제나 배가 가득 불러있기 때문이었다.
아일랜드에 살아도, 또 이렇게 프랑스에 여행을 와도 먹고 마시고 무언 가를 해도 늘 나는 또 우리 가족은 한국을 떠 올린다. 아일랜드의 스산한 늦가을 날씨에 어딘가 무력해지는 내가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으면, 아이는 또 남편은 슬쩍 내 옆에 누워서 일부러 한국을 방문해서 먹었던 호빵이야기며, 찬바람 맞으며 서서 호호 불며 먹었던 호떡이나 어묵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잠시 잠깐 우리가 서 있었던 한국에서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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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행을 기억하게 해 주는 것은
일주일간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런던에서 하루를 지내며 관광을 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꽤 돈을 들여 배를 타기도 하고, 또 피레네 산맥의 어느 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예약을 해 두기도 했었다. 2만 원이 훌쩍 넘는 아이스크림을 아이에게 사주면서도 돈이 아깝다기보다 새로운 맛의 아이스크림을 아이에게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우리의 여행을 기억하게 해 주는 것은 오히려 침대에 누워 깔깔거리며 만화를 보는 아이의 편안한 모습, 또 바삭거리는 바게트를 씹으며 남편과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걸었던 까만 밤, 또 나무 벤치에 앉아서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에 대고 찍었던 한 장의 사진 같은 작지만 평화로운 순간들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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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작지만 평화로운 순간들이 촘촘히 모자이크처럼 우리의 삶에 박혀져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고 또 불현 듯 찾아오는 스산한 마음을 데워 그 시간이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인내하게 하고 또 잘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소소한 행복이라는 것, 어쩌면 나처럼 한국을 그리워하며 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감기를 이겨내는 말하자면 마음의 비타민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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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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