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예상 날씨는 영하 7도'. 마라톤 대회를 하루 앞두고 잠자기 전에 대회 당일의 날씨를 확인해 봤다. 몇 주 전만 해도 날씨가 풀려서 안심하고 뛰게 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한파여서 걱정됐다. 이 날씨에 내일 하프 코스(21.0975km)를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떨려서 잠이 안 왔다. 대회 복장과 신발, 필요 용품 등을 다 챙겼는데도 확신이 안 가서 작년 이맘쯤에 나갔던 마라톤은 어떤 복장으로 나갔는지도 재차 확인을 해봤다. 그러다가 슬슬 눈이 감겨서 갑자기 잠들었다. 지금까지 조금씩 꾸준히 달려온 나를 믿으며 응원하는 수밖에 없지만, 이렇듯 마라톤을 앞둔 하루는 늘 설렘과 긴장이 공존한다.
그렇게 대회 당일이 되었다. 아침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 준비하고 계란 하나를 먹으며 날씨를 확인했다. 여전히 날씨는 영하로 나왔지만, 당일이 되어 피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비몽사몽 정신이 없는 채로 집을 나와, 아빠 차를 타고 출발지인 여의도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한강이 바로 앞에 있어서 그런지 그곳은 경기도보다 더 추웠다. 추위에 깜짝 놀라며 대회장을 둘러봤는데 러닝 크루가 모여 있는 단체 부스와 스포츠 테이핑과 마사지를 해주는 부스 등이 보였다. 달리기 전에 스포츠 테이핑은 하고 싶었지만, 짐 맡기고 줄을 기다릴 생각을 하니 막막해서 가던 길을 갔다.
짐을 정리하기 위해 탈의실에 들어갔는데, 바람이 들어오지 않고 비교적 따뜻해서 살 거 같았다. 정신이 슬슬 돌아온 뒤, 가방에서 대회에 필요한 러닝 선글라스, 면장갑과 나이키 장갑, 에어팟 등을 꺼냈다. 대회 중에 들을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었다. 플레이리스트에는 내게 힘을 준 경험이 있는 노래들 위주로 기승전결 있게 채워 넣었다. 초반에는 꿈과 사랑에 대한 노래, 중반부에는 열정에 대한 노래, 후반부에는 활력이 넘치는 노래로 배치했다. 그리고 예상 완주 시간대인 2시간 30분에 맞는지 확인했다. 플레이리스트 제작을 완성한 후에 보니, 총 37곡으로 구성된 2시간 28분의 콘서트가 만들어져 있었다.
필요 용품도 다 꺼내고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었겠다. 이제 짐을 맡기러 가야 하는데 몸이 더 쉬었다 가라고 신호라도 보내는 것처럼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고관절에 기름칠하듯이 다리를 돌리고, 허리와 발도 풀어줬다. 전체적으로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몸이 움직였다. 그 제야 나는 짐을 맡기러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재빨리 탈의실로 다시 돌아와 몸을 풀어주다가 5분 전에 출발지로 달려갔다. 수많은 인파 속에 파묻혀서 출발을 기다렸다.
‘5! 4! 3! 2! 1!’ 시작! 드디어 2025년 나의 도전, 챌린지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나이키 런 클럽 앱 운동 시작을 눌렀다. 역시 마라톤의 활기를 느끼며 새해 첫 마라톤을 시작하니 기분이 좋았다. 또한 완주에 의미를 두고 참여하는 마라톤이라 마음이 편안했다. 오직 내 숨이 나침반이라고 생각하며,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주의했다. 계속 달리면서 열이 오르니 추위가 덜 느껴졌고 몸이 가벼워져서 신기할 따름이었다. 최근에 회사에 적응하느라 운동에 대한 비중을 줄여서 몸이 잠기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는데 달리기에 대한 감각이 아직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반환점을 지나 13~14km 무렵부터는 지루함이 몰려왔다. 그럴 땐 ‘조금만 더 참아, 내가 추가한 곡들이 나를 응원해 줄 거야’라고 정신을 다잡았다. 옆에서 함께 뛰는 사람들도 유심히 관찰했다. 싱글렛, 반팔, 긴팔 등 달리기 복장이 다양했지만 모두 지금 이 레이스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은 동일했다. 조금 더 달리니 급수대가 나왔다. 초코파이와 게토레이를 맛있게 먹고, 결승점을 향해 달려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라톤 중에 먹는 간식은 정말 맛있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달렸다.
결승 지점에 다다랐을 무렵, 페퍼톤스의 <Ready, Get Set, Go!>를 들으며 질주하고 싸이의 <뜨거운 안녕(feat. 성시경)>으로 2시간 29분을 보내주며 나의 새해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 완주하니 뿌듯함이 차올랐고, 두렵게만 느껴졌던 겨울 마라톤을 앞으로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춥다는 이유로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이 감정이 뜻깊었다. 레이스 하루 전날의 내가 작년의 나를 보며 마음을 추슬렀듯이, 내년의 나도 오늘의 나를 떠올리고 겨울 마라톤을 도전하길 바라게 됐다. 따라서 달리기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매일이 달라질 스스로를 꿈꾸며 함께 달려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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