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잃어버렸다. 여름 내도록 즐겨 쓰던 건데 가을이 오고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름 물건을 제자리에 잘 두는 편이라고 믿었는데 어쩌면 한 계절을 보내고 어디다 둔 건지 까먹은 모양이다. 황마 소재로 된 것인데 시원하고, 챙 부분이 각이 잡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떨어져서, 툭 하고 어디든 편안하게 쓰고 다니기 좋았다. 모자를 정말 좋아하는 반면에 어울리는 것 찾기가 무척 어려운 내게도 제법 잘 어울렸던 것이라, 없어졌다 생각하자 속이 많이 상했다. 모자 하나 잃어버렸다고 눈물까지 날 일인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옆지기가 다시 똑같은 걸 사면 안될까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아렸다. 새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새것이 결코 내가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서걱거리게 했다.
할 수 없이 다른 모자를 쓰고 논으로 향했다. 시월, 드디어 벼 추수를 하는 날이 찾아왔다. 올해 초부터 마을 사람 여섯이 모여 900평 정도 되는 논에 토종볍씨로 벼농사를 시작했었다. 지난 유월, 모내기에 이어 이번에도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대안학교 친구들과 선생님, 마을 사람들 몇몇이 함께 힘을 모았다. 아침부터 일기 예보에 없던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걱정이 들었다. 아이들이 논으로 도착하자 하늘이 서서히 개이더니 구름 사이로 해가 보였다. 덥지도 춥지도 않는 상쾌한 공기 속에서 일하고 놀기 딱 좋은 날이 되었다. 풍년 노래를 부르고, 축문을 읽고, 파전도 굽고, 도시락도 먹고, 케이크도, 홍시도 나누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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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벼 베는 소리 때문일까, 이상하게 낫질 하는 건 참 즐겁다. 낫으로 벼를 베고, 볏짚을 묶어서, 볏덕에 말리는 작업을 했다. 보통은 볏덕에서 2주 정도 햇볕과 바람에 고루 말리는 작업 이후 탈곡을 한다. 이번에는 일정 관계상 거둔 벼 일부는 아이들과 탈곡 작업까지 한꺼번에 해보기로 했다. 발로 돌리는 탈곡기, 돌판, 나무 통을 이용한 다양한 방법의 털기를 시도했다. 탈곡할 때도 혼자서 하기는 어렵다. 3~4명이 한 조가 된다. 한 사람은 볏단을 옮겨 풀어 주고, 한 사람은 탈곡기를 돌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턴 볏짚을 정리한다. 풀벌레 소리, 벼 터는 소리, 발로 탈곡기 돌리는 소리, 북 장단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논을 가득 메웠다.
한차례 논을 휘젓고 다니던 아이들이 돌아가고 뒷손질 시간이 되었다. 알곡과 덜 털린 벼들을 고르고, 마저 벼를 터는 작업과 볏짚을 정리하고, 탈곡해서 나온 벼들을 자루에 담는 일이 남았다. 논지기들과 조용한 논에 앉아서 벼들을 고르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숨을 돌렸다. 큰 모자가 자꾸 머리 뒤로 넘어갔다. 언젠가 논지기 한 분이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말했던 것이 이건가 하고 귀 기울였다. 사락사락 벼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들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우릴 향해 내리쬐어 주었다. 알곡을 고르는 동안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이렇게 손으로 알곡을 하나하나 매만지고 있자니 잃어버린 모자 생각은 그만 까먹고 말았다. 그보다 생각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의 풍경이 갑자기 떠올랐다. 할머니와 살던 안방에 대들보가 서 있던 기와집, 오래된 나무로 된 커다란 쌀통, 부엌에 엄마를 찾으러 뛰어 가다가 쌀통에 슬켜 눈가를 다치기도 했었지... 그러고도 너무 아프거나 싫지가 않았다. 따스한 햇살 가득한 앞마당에 쏟아져 내리는 파아란 하늘이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았다. 무화과나무, 감나무도 있었고 마당엔 늘 뭔가 먹을거리로 풍성했던 것 같고 사람 손길로 정돈되어 있었다. 알 수 없는 온화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마음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손에 만져질 것처럼 넉넉한 시간이 천천히 흐르던 그 시절이 말이다.
이제 도정을 해서 다 함께 밥을 나누는 일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어떤 맛이 나려나. 쌀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이토록 많은 공정 과정이 있다니. 손으로 작업하게 되면 벼가 버텨온 자연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려나.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아는 데 있다‘는 해월 최시형의 말의 깊이를 헤아리게 되려나. 이 시대에 비현실 같은 자급자족의 세계로 한 걸음 다가가게 되려나. 어림도 없다. 알 수가 없다. 그런 거창한 이유로 벼농사를 시작한 건 결코 아니었다.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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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인간의 마음까지 위로해주고, 이 세상에게 뭐든 좋은 것을 줄 것 처럼 기술 과학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세상에 손으로 짓는 벼농사라니! 자급도 안되고, 돈도 안되고, 몸도 고단하고, 오히려 개인적인 돈과 시간을 써가며 이게 뭐하는 짓이람! 좋아서 하는 취미 활동이라 하기에도 비효율적이고, 생산성 떨어지며, 미련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논에서 어쩌면 나도 모르게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진짜 잃어버린 건 그 모자 만이 아니었다. 내가 애타게 찾고 싶었던 것은 나만의 기억, 주름 속에 숨죽이고 있는 추억, 보드라운 홑겹처럼 아스라한 풍경들에 싸 안겨 '나를 만들어온 시간' 아닐까.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고 시간을 누리며 천천히 나만의 고유한 무늬를 그려내던 그 어린 날의 시간들 말이다.
금요일이 평일이라 참여가 어려운 마을 사람들이 많았다. 반차를 내고 한걸음에 달려와 도와주러 온 마을 사람도 있었고, 월차를 내고 와서 추수 날을 책임져 준 논지기도 있었다. 세상의 물결과는 다르게 느린 속도로, 정말이지 쌀 한톨이 내 밥그릇에 들어오기까지의 느리고 느린 시간들이 흐르는 동안 우리가 놓쳤던 마음은 무엇일까. 무얼 얻었는지는 명확한데, 무엇을 잃었는지는 아득하기만 하다. 알 수 없는 이끌림인지, 그게 온당하다는 믿음 때문인지,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은 무엇 때문인지, 이렇게 땅을 놓치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논에서 사람들과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마음 한 톨 감출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일할 때, 상대를 대하는 일이 수단이 되지 않는 이 관계가 무척 감사했다. 가슴으로 이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이 사람들 덕분에 빠르게 지나가는 현세의 시간이 아닌 내 마음 안에서 흐르는 시간을 만질 수 있었다. 시간의 주인이 되어 잃어버릴 뻔했던 어린 시절의 안온함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면 존재를 회복하는 중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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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경
논과 밭, 산과 바다를 어슬렁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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