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사한 회사는 기계공구 상가 사이에 섬처럼 박혀 있다. 이곳에서 가장 신기했던 건 순식간에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길가 간판은 빛이 바랬고, ‘비니루(비닐), 부라쉬(브러쉬),‘콤푸레샤(에어 컴프레셔)’ 같은 글자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트로트 소리까지 더해지면 TV에서 보던 70년대 풍경이 한순간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몇 발자국만 옮기면 스타벅스와 빌딩이 빼곡한 도심이 나타났다. 가만히 서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회사 앞 작은 공원을 걷던 때였다. 치지직 용접 소리가 들리고 쇠 타는 냄새가 가득 채워졌다. 50년 가까이 되어 보이는 오래된 간판 아래 누군가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몇 걸음 더 옮기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안쪽에서 힙합 음악이 흘러나오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이 쉭쉭 소리 내며 권투 연습을 하고 있었다.
문득, 나는 그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용접하는 이는 한참동안 여기를 지켰을까. 비 오듯 땀흘리며 운동하는 이는 새로운 대회를 향해 달려갈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들 사이 어디쯤 있을까.
지금 나는 40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39살과 40살은 딱 하루 차이일 뿐인데, 숫자가 주는 간극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10년 넘게 달려 왔지만, 어디에도 뚜렷이 자리 잡지 못한 채 중간쯤 걸쳐진 기분이다. 30대를 들어설 땐 '아직 여유가 있다'라 싶었는데, 40대 앞에서는 무언가 덜 채워진 것만 같다. 어정쩡한 기분이 낯설기만 하다.
아마도, 눈앞의 이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다른 이들은 단단 혹은 생생하게 하루를 살아 가는데, 나는 그 사이 어딘가를 둥둥 떠 있는 기분만 들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 전혀 다른 두 시야 사이를 어정쩡하게 가끔 서 있었다.
몇 주가 흘렀을까, 회사 앞 길을 걷다 낯선 풍경이 들어왔다. ‘콤푸레샤’ 간판 옆 새로운 세차장이었다. 이상하게 50년 된 용접소의 느낌도 20대의 날렵한 느낌도 나지 않았다. 어딘가 그 사이의 시간이 흘러 튀어야 할 법한데, 묘하게 어울렸다. 어느 쪽도 아니지만 그 자리에 처음부터 있는 것 마냥 어색하지 않았다.
어딘가 사이에 있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귓가엔 내게 익숙한 리듬의 십여 년 전 발라드가 흘렀다. 붕 떠 있던 기분이 조금은 내려온 것 같았다. 그렇게 미묘하게 변하는 거리 위에서, 나는 떨어진 간극을 조금씩 메워 가며 스며드는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어정쩡한 지금은, 숫자의 변화 앞에서 당연한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나날들에 애매한 순간은 더 자주 찾아 올 수도 있겠지만 괜찮은 척 담담하면 좋겠다. 그렇게 사이 어딘가를 그냥 지나가면 잔잔한 때가 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오늘도, 용접 소리와 힙합이 흐르는 거리를 그냥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