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미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한 번 해보니, 출산도 인생 최고의 고통이었는데, 신생아 육아는 더 엄청났다. 24시간 진통 후 출산은 몸 구석구석을 휘청이게 했고, 그 상태로 두 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하며 돌보는 신생아는 먹여도 먹여도 배가 고픈 것 같았다. 갓 출산을 마친 내 몸은 수유를 하면서 더 빠르게 소진되는 것 같았다. 한 달에 2주 이상은 입이 헐어있던 날들. 그래도 눈 깜짝할 사이에 육아는 서서히 편해지고, 아이는 점점 더 반짝거렸다. 그리고 가족이 주는 행복감은 다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다는 걸 그 짧고 굵직한 시간에 알아버려서 덜컥 둘째를 계획했다. 두 살 터울의 둘째 출산이 목전에 있던 어느 맑은 날이었다.
첫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자연주의 출산을 계획했고, 아기가 나오고 싶은 날에 나올 수 있도록 분만일을 사전에 잡아두지는 않았다. 진통이 오면 남편과 첫째를 데리고 첫째의 장난감을 잔뜩 챙겨 병원으로 출발할 생각이었다. 첫째가 동생을 만날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해서 출산 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결정했다. 그래서인지 산모 짐보다 첫째 레고, 퍼즐, 간식이 더 많았던 둘째 출산 가방.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떠오르는 2년 전 그날의 고통. 첫째처럼 열흘만 늦게 나와도 좋겠다고 내심 바랐다. 사실 근 몇 주간 쉴 수 있는 날이 없었고 화룡점정으로 추석 연휴는 바쁜 일정이 최고조에 달했다. 뒤늦은 만삭 사진 촬영, 가족 모임, 회사 동료 모임, 이케아 쇼핑, 둘째가 태어날 때 첫째에게 줄 선물 사기, 신생아 방 정리, 매일같이 야근하는 기분으로 둘째를 맞이할 준비했다.
긴 연휴 내내 비가 내렸고, 흐린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로서는 도통 기분이 맑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 예정일 사흘 전, 드디어 해님이 반갑게 얼굴을 비췄다. 아침 요가를 좋아하는 나지만, 이날만큼은 요가는 접어두고 산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오랜만에 자연광 샤워를 하며 실컷 걷자고 옷을 가볍게 입고 책 읽을 아이패드를 챙겨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걷는 탄천은 여전히 늦은 여름의 색깔로 푸른빛을 띠고, 잉어 떼는 옹기종기 모여 있고, 바위 위에는 백로가 호젓하게 앉아 있었다. 초가을의 윤기가 흐르는 그대로였다. 이따금 묵직한 배에 골반이 저리거나 내 배에 잠깐씩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지 않았다면 임신 막달을 보내는 중이라는 걸 깜빡했을 수도 있겠다. 모처럼 걸음이 가벼웠다. 따끈한 편백찜을 배불리 먹고, 테라스가 있는 카페로 옮겨 달콤한 티라미수 케이크에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생리통처럼 배가 살살 아프긴 했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닌 통증이었는데, 저녁에 첫째와 함께 먹을 양꼬치를 시즈닝 하고 구울 때부터 왠지 곧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지금 내가 엄살 부리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첫째 때는 진통 초반부터 강력한 통증이 지속됐었는데 둘째는 정말 배가 사알 사알 아팠던 것이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남편에게 언제 오냐고 전화를 해두고, 아기를 받아주실 조산사 선생님에게도 연락했다. 아주 소량의 피가 나오는 상황이라 조산사님은 ‘진통이 시작되는 것 같긴 하지만 수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수축이 뭐였죠. 느낌이 안 오는데 이게 수축일까요…?” 같은 바보 같은 질문만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첫째도 자연 진통으로 낳았지만 수축이 뭔지는 까먹어버렸던 것이다. 배가 조이는 느낌이라는데, 나는 배가 조이기보다 그냥 아랫배가 얼얼하게 아팠다.
남편이 집에 도착해 첫째랑 셋이 도란도란 양꼬치를 먹으며 “진통이 와도 12시 넘어서 가자. 12시 넘어야 병실비 하루 줄어들지” 하면서 웃었다. 그런데 배가 점점 더 아파져서 이번에는 연휴 때 어머님이 주신 애호박새우전을 먹으면서 “첫째 재우고 출산 가방 좀 마저 싸자 으윽..“하고 깊은 숨을 쉬었다. 진통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배가 아픈 게 잦아들면 꼬치전도 하나 더 먹었다. 남편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설거지를 후다닥하고 첫째를 재우러 들어갔고, 나는 엉거주춤 짐을 챙겼다. 마음은 급해지고 몸은 굼떠졌다.
어느 순간 허리가 안 펴지고 걷기가 어려워졌다. 마침 조산사님에게 전화가 왔기에 ”아 저 걷기가 어려운데요. 근데 수축은 없는 것 같고, 그냥 배가 아파서 못 걷겠어요(?)“라고 하자 조산사님은 ”음.. 그게 수축이지. 출발해요~“라고 평소와 같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샤워를 하면 통증이 덜할까 해서 출발 전에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한 번 더 하고, 깊게 잠들어있던 첫째를 남편이 둘러업고 차로 향했다. 수면 조끼 그대로 입고 나온 첫째는 자정의 외출에 어느새 눈이 똘망똘망해졌다.
첫째는 난생처음 늦은 밤의 외출에 빨간 신호등, 초록 신호등 보면서 좋아하는 자동차에 타 있으니 뒷좌석에서 신이 났다. 자정의 강남에는 첫째가 좋아하는 유조차도 있었고, 도로 공사 자동차도 있었다. 차에 누워 진통을 하다가도 첫째가 종알거리면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주차장에 마중 나온 조산사님에게 나는 첫째 빠방 이불을 구겨 안고는 “어.. 잠깐만요. 또 못 걷겠어요.” 했다. 아픈데도 이상하게 계속 웃으면서 말했던 것 같다. 아마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몇 시간 뒤에 아기가 태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 같다. 주차장 도착 시간 12:10분. 출산 방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이미 자궁은 4~5cm 열렸고(10cm가 열리면 아기가 태어난다), 첫째는 출산을 도와주실 둘라님(자연주의 출산은 무통 주사를 사용하지 않기에 ‘인간 진통제’라는 별명을 지닌 둘라님과 함께 출산을 하는 경우가 많다)과 퍼즐 마흔 개를 맞추기 시작, 사진 찍는 게 취미인 남편은 삼각대를 꺼내 촬영을 준비했다. 어쩐지 나만 아픈 분위기가 서럽긴 했지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노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했다.
첫째 때는 수중 감통이 좋았어서 이번에도 욕조에 들어가서 진통을 줄일 수 있냐고 조산사님에게 물으니 수중 분만할 게 아니면 둘째는 진행이 빨라서 간단히 샤워만 하는 게 좋겠다 했다. 나의 경우에는 수중 분만을 원하지 않는 산모였어서 잠자코 천천히 샤워만 한 번 더 했다. 그리고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태어났다. 새벽 2시 56분. 차에서 내린 지 3시간도 안 되었을 때였다.
첫째는 진통하는 엄마 머리도 만져 주고, 손도 잡아주다가 동생 머리가 보이자 엄마 다리 옆으로 가서 동생이 태어나는 걸 그대로 봤다. 무서워 할까 걱정이었는데,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두 주먹 꼭 쥐고 보조개가 쏙 들어가게 웃으며 동생을 맞이했다. 곁에서 기다리며 응원하는 첫째가 있어서 그랬는지 나도 있는 힘껏 출산에 임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첫째 때보다 출산 과정이 몸으로 잘 느껴지기도 하고, 불편한 부분도 민감하게 느껴져서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자세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옆에서 응원하는 첫째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었는가, 첫째 때에 비하면 파이팅이 넘치는 출산이었다. 다행히 출혈도 심하지 않았고, 회음부 상처도 없었다. 갓 태어난 둘째를 맨 피부로 안아주는 남편의 캥거루 케어 시간에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다. 옆에 계신 조산사님과 둘라님이 ”어머나….”를 읊조렸을 때 그제야 아차 싶었다. 다행히 나도 아기도 건강했다.
그렇게 넷이 되어 맞이한 첫 밤, 남편과 첫째는 병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새벽 다섯 시 즈음에 잠이 들었고, 나는 발갛고 뜨끈한 신생아를 품에 안고 첫 모유수유를 했다. 미뤄두고만 싶었던 출산이 다행히 무사히 짧게 끝났다. 짧은 만큼 강력했던 진통이 끝나자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평온하고 고요했다.
둘째가 태어난 지 13일째
조리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조리를 하는 중이다. 산후 관리사님이 해주시는 맛있는 밥 먹으면서 아기 모유수유와 내 잠만 잘 챙겨서 자면 되는 이 날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들어 가장 한가한 듯하다.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저녁 밥까지 먹고 오는 데에다가 산후 관리사님이 밥, 빨래, 청소 모두 도맡아 해주시니 남이 해주는 밥 좋아하는 아기 엄마는 그저 행복할 뿐이다.
언제 또 갑자기 잠을 충분히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으면서 전투 육아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미래가 걱정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큰 사건 없이 무탈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남편과 크게 아프지 않고 어린이집에서 밥 잘 먹고 오는 첫째, 그리고 나보다도 더 애틋하게 아기를 안아주시는 산후관리사님을 만난 덕분에 많은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다. 전생에 큰 복을 지었는지 운도 참 좋다 싶다. 둘째도 조리원을 가지 않은 게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봐야 알겠다. 하지만 네 식구 모두 함께 서로에게 적응하고 각자 생활에 충실하게 지내는 이 시간이 참 감사하다고 창밖의 맑은 하늘을 보며 웃는다. 부디 이번에는 힘든 시간들이 조금은 더 수월하게 흘러가 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 글쓴이 - 보배
'세상의 모든 문화'에서 <탱고에 바나나>를 연재하다가 23년 12월 출산 후부터 <육아에 바나나>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의 심장이 함께 춤을 출 때>가 출간되었습니다. 공저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세상의 모든 청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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