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쯤 왔어?” “한 10분쯤 남았는데 왜, 무슨 일 있어?” “또 벌이 나타났어.”
요즘 우리 집은 벌을 잡느라 정신이 없다. |
|
|
‘위잉’ 하는 소리가 들리면 전기 파리채를 손에 들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을 돌려 벌의 행방을 찾는다. 창문이든 벽이든 한곳에 앉기만을 기다렸다가 파리채를 갖다 댄다. 타닥, 탁. 기절한 벌을 곱게 휴지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
|
|
시작은 몇 주 전이었다. 서재에서 자고 일어난 남편의 얼굴에는 평소보다 짙은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벌에 쏘였어.”
자다가 발에 무언가 와닿는 게 모기인 줄 알고 발을 휘젓다가 쏘였다고 했다. 퉁퉁 부은 새끼발가락에 무얼 발라야 하나, 한참을 검색했다. 피부 발진에 바르려고 처방받아 둔 항히스타민 연고를 바르고, 진통제를 며칠 먹고서야 겨우 가라앉았다. |
|
|
대체 벌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참을 찾다가 벌집 입구를 발견했다. 우리 집은 2층짜리 단독주택이다. 부엌 옆 계단으로 이어진 1층과 2층, 그 작은 틈 사이로 벌이 집을 짓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119에 신고했겠지만, 검색해 보니 911에서는 벌집 제거 신고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다수의 사람이 벌에 쏘여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라면 출동하지만, 벌집 제거는 해충 방제 업체에 맡겨야 한다는 검색 결과를 보고 ‘아, 역시 미국이지’라고 생각했다. |
|
|
당일 출동 가능한 업체를 찾는 불가능한 미션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우선이겠다 싶어 퇴근길에 집수리 용품을 파는 홈디포(Home Depot)에 들렀다. 살충제 코너가 한쪽 벽면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온갖 종류의 곤충과 벌레 사진이 붙은 스프레이 통들 사이에서 우리 집에 나타난 벌을 찾아봤다. 배 부분에 노란 줄무늬가 있는, 언뜻 보면 꿀벌처럼 생긴 Yellow Jacket — 한국어로는 땅벌. 그나마 Wasp나 Hornet 같은 말벌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
|
|
스프레이 두 통을 사 들고 집에 돌아왔다. 벌집 입구에 약을 뿌리니 몇 시간 만에 수백 마리의 벌이 쌓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긴팔과 긴바지, 장화로 중무장한 남편이 비장한 얼굴로 부엌 덧문을 열고 나섰다. 나는 유리문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덜덜 떨며 벌집 입구를 청소했다. |
|
|
갈 곳을 잃은 벌들은 집 안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빨래바구니를 들고 세탁실에 갔다가 ‘위잉’ 하는 소리에 놀라기를 여러 번, 재택근무 중 웨비나를 진행하다가 벌이 나타나서 헤드폰을 낀 채 한 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 애쓴 적도 있다. |
|
|
벌이 주로 발견되는 곳은 세탁실이었다. “대체 어디서 벌이 들어오는 거지?” 하며 구석구석을 살피다가 환기구와 연결된 커다란 구멍을 발견했다. 급한 대로 헝겊으로 막아두고 다시 홈디포로 향했다. 틈새를 막는 발포 폼 스프레이를 잔뜩 사와 벌집 입구와 환기구 구멍을 꼼꼼히 막았다. |
|
|
미국 집은 한국과 달리 대부분 나무로 되어 있다. ‘드라이월(drywall)’이라 불리는 나무 합판에 페인트칠을 하면 벽이 되고, 천장이 된다.
주택살이 4년 차, 이제 집수리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
태권도 연습을 하던 아들의 뒷차기에 구멍 난 벽을 막기 위해 드라이월 합판을 사왔다. 구멍 난 부분을 반듯하게 잘라내고 새로 재단한 드라이월을 끼워 맞춘 뒤 페인트칠을 했다.
아래층 욕실 천장에서 물이 샌 적도 있었다. 대체 어디서 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욕조일까, 변기일까. 하나씩 뜯어봐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샤워부스의 배수관 틈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이 김에 샤워실을 고쳐볼까?” 하고 견적을 받아봤다가 석 달치 월급만큼 적힌 견적서를 보고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물이 새는 곳을 찾아 방수 처리를 하고, 더 이상 새지 않는 걸 확인한 뒤 천장의 드라이월을 새로 끼워 마무리했다.
식탁 위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등이 설치된 천장이 점점 부풀어올랐다. 더운 날씨에 단열재가 팽창한 것이었다. 1층과 2층 사이 마감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무를 덧대고 촘촘히 못을 박았다. |
|
|
문제가 생길 때마다 누구를 불러야 할지, 불러도 일이 해결될지, 얼마나 돈이 들지 막막하다. 수소문해 업체를 찾고, 겨우 시간을 맞춰 견적을 보면 작업 기간이 몇 달이라는 말도, 최소 몇 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듣는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튜브의 DIY 달인들을 선생님 삼아, 남편은 우리 집의 맥가이버처럼 살고 있다. 우리 집 차고에는 이전 집주인이 남기고 간 공구와 거실·부엌·침실 등등의 이름이 적힌 페인트 통들이 캐비닛 가득 쌓여 있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으면 텃밭을 갈아엎고, 잔디와 흡사한 잡초를 어떻게 제거할지 논문까지 찾아본다. 매년 봄이 되면 이번엔 어떤 걸 심어볼까, 고민한다. 잔디가 가득한 앞 뒷마당이 있는 집에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수고가 들어간다. |
|
|
DIY. 손재주 좋은 사람들의 취미활동인 줄만 알았는데, 어쩌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존 기술일지도 모르겠다. 하나하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해결해 나가며 매일 레벨업하는 기분이다.
아직도 집 안 곳곳에서 벌이 출몰한다. 하루하루 비명 소리는 줄고, 벌을 잡는 스킬은 늘어간다. 조금 전, 벌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도구, 잠자리채와 비슷한 뜰채가 도착했다. |
|
|
“Home is a work in progress.” 집을 손보는 일을 할 때마다 동료들이 하던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완벽한 집을 찾아 이사 가는 대신, 지금 우리에게 맞는 집을 만들어 가며 그렇게 하루하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DIY. Do it yourself.
우리가 사는 집이니, 우리가 손보며 사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
|
|
[사이에 서서] 황진영
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퇴사하면 큰일 날 줄 알았지> 를 썼습니다.
양 극단으로 보이는 개념들은 어쩌면 서로 맞닿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이에 서서] 뉴스레터는 작가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