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상처받았어.”라고, 친구는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서로 간의 이해 부족으로 생긴 깊은 말다툼이었다. 나의 일방적 감정 표출로 친구는 상처를 받았다. 그날 이후, 그는 나에게 등을 돌리고 침묵을 선언했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어서 빨리 그 징그러운 상처를 봉합해 버리고 싶었다. 말할 수 없이 불편한 시간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하루 종일 생각했다. ‘어서 빨리 예전처럼 정상이 되고 싶어.!’
차라리, 상처를 모르는 척하면 오히려 티가 덜날까 싶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다른 대화를 시도해 봤다. 역부족이었다. 친구는 겨우 단답만 뱉을 뿐이었는데도, 나는 그걸 알면서도 애써 끌어내고 있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내 태도 때문이었을까, 상처는 건드리니 염증이 더 나기 시작했다.
혹시, 진지하게 사과를 하면 되돌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나는 진심으로 사과를 건넸다. 그 당시 내가 했던 말들이 너를 힘들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고,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 정도면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더 짧은 대답뿐이었고, 더 확실하게 나를 피하고 있는 것을 깨달을 뿐이었다.
나는 더 안달이 났다. 이렇게 나는 버림받고, 영원히 갈라서는 건가 두려웠다. 매듭을 풀고 싶어서, 건드리고 싶은 내 안의 말들이 산더미인데, 상대는 철창문이 닫혀 있으니 답답했다. 메시지도, 밝은 미소도 통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이 조금 더 가닿을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고, 또 지우 고를 반복했다. 답답하고 힘들다 보니 원망까지 생겼다. 그 기저에는 ‘내가 맞는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라는 반발심도 존재했다. 염증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감정만 스스로 키워갔다. 우리가 영원히 단절되면 어떡할까? 잠도 오지 않고, 한숨만 늘어갔다.
상처를 어떻게 아물게 할지 생각하다 보니, 아주 오래전, 10년도 더 전에 말 동물병원에서 만난 한 동물이 문득 떠올랐다. 그 말(horse)의 상처는 너무 심했고, 치유 여정이 길어서 지금도 생생하다. 그 말은 목덜미가 불룩하게 부어 있었다. 처음에는 불룩한 부분이 그리 크지 않아서, 보호자가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크게 목이 붓고, 만지면 뜨겁고, 건드리면 아파하니, 보호자는 그제야 눈치를 챘다. 동물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목 근육 안쪽 깊은 곳에 고름이 가득 차 있었다. 살짝 상처부를 절개해서 고름을 다 빼내고, 소독을 해줬다.
처음 몇 주간은 아무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두어 달 후 고름은 다시 차올랐다. 이번에는, 고름 주위의 괴사된 조직을 모조리 다 걷어내는 큰 수술을 했다. 수술 후엔 손바닥보다 큰 크기의 벌겋고 움푹 들어간 속살이 그대로 남았다. 움푹한 곳에 속살이 차고 가장 바깥쪽 피부가 덮으려면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만큼 상처는 컸다. 결손된 부분 중 주변 부위는 어느 정도 봉합을 시도했으나, 가운데의 큰 구멍은 메울 피부가 없었다.
게다가 상처의 크기만큼 엄청나게 많은 양의 진물이 나오는 탓에, 하루에 두 번 이상씩 드레싱을 하고 붕대를 갈았다. 아무리 자주, 두툼한 패드를 갈아도 항상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런 하루가 한주가 되고, 두 주가 되고, 한 달이 되었다. 매일매일 패드를 갈다 보니, 뻥 뚫려버린 그곳에 새살이 차고는 있는지, 피부가 이 속살을 덮을 수는 있는 건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이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막막했다.
답답한 마음에, 여러 문헌을 찾다 보니, 범위가 큰 외상 치유를 위한 치료 중 하나로 설명된 피부이식을 알게 되었다. 건강한 다른 피부를 피부 생검 기구를 통해 콩알만큼 떼서 가져온 다음, 그것을 상처부에 여러 개를 심어서 그중 일부가, 정착이 되면 그 씨드가 커지며 피부가 점점 자라서 상처부를 빨리 덮어준다는 것이었다. 이론은 멋지지만, 응용은 어려울 것 같았다. 이 환자는 염증액도 너무 많고, 상처부를 닦아내는 드레싱을 수도 없이 많이 하는데, 과연 그 작은 피부조직을 상처부위 위에 덮으면, 이물로 뱉어지지 않고 잘 심어질지 미지수였다.
그 당시에는 말에게 생소한 치료법이다 보니, 다른 동물 수의사 중 경험자들, 책과 논문 케이스를 팠다. 요즘에야 ai가 수초만에 그럴듯한 답을 해주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야말로 검색하고 검증하는 데 품이 들었다.
결국, 10여 개의 작은 콩알만 한 피부를 떼내었고, 배운 대로 이식을 해보았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수차례의 실패 끝에 결국 두 개의 이식조직이 상처부에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기어코 살아남은 그 작은 섬은, 일정 시점을 넘기니 정말 빠른 속도로 자라나며 거대한 속살 위를 조금씩 메워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개월 후 반흔은 남았지만, 깔끔하게 상처가 ‘아물었다.’
피부 이식이 진짜 도움이 된 것일까? 나는 사실, 그것보다는, 때가 돼서 아문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이식피부가 신선해도, 손상된 상처조직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 피부조직을 이물로 생각하며 밀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식이 모조리 실패했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 지루한 소독과 투약과정, 포대 교체와 드레싱 -동안 속살은 결국 서서히 아물면서 피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지막 이식에서 드디어 이식피부가 정착된 것이었다.
친구와의 망쳐버린 관계를 어서 빨리 극복하고 싶어서 아등바등했던 내 조급함과 이기심이 그제야 보였다. 내가 말에게 진료를 할 때는, 조급하지 말고 원칙대로 해야 한다며 그렇게 이성적이면서, 왜 나는 가까운 이의 상처가 아무는 시간을 기다려주지를 못하고 내 감정만 챙겼을까?
실제로, 벌어진 상처를 봉합했을 때, 다시 터지는 경우는 다 이유가 있다. 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는 형태의 상처일 때에는, 아무리 겉으로 그럴듯하게 봉합을 하더라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결국 실밥은 벌어지고, 그 안에서 염증은 터져 나온다. 상처가 아물려면, 일단 염증이 멈춰야 한다. 상처가 깊은 건 상관이 없다. 아무리 깊더라도, 순서에 맞춰서 층층이 봉합을 하면, 결국 벌어진 이격은 붙는다. 왜냐하면 원래가 연결되어 있었던 조직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여전히 나를 밀어내고 있다. 우리 사이에는 터질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그건 냉정히 인정하되, 서로의 탓이 무엇인지 파고들고 어서 해결하려는, 나의 본능을 멈춰야 한다. 어차피 그 이유를 찾느라 더 헤집고 상대를 힘들게 할 바엔, 지금은 아물도록 기다려야 하는 인내가 더 필요한 것 같다. 우리가 같은 종류의 조직이고, 같은 살성(성질)이라면, 그 믿음만 강건하다면, 때가 되면 결국 싹 아무는 날이 올 것이다. 적어도 동물을 치료하면서 접했던 피부의 상처는 그랬다. 부디, 관계에서 부닥친 상처도 그랬으면 참 좋겠다.
코너소개 : 수상한 말수의사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다가가는 게 망설여지는 한 인간의 고군분투기
글쓴이: 김아람 말 많은 제주도에서 사는 20년 차 말 수의사입니다.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를 공저했습니다. https://linktr.ee/ara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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