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래브라도 리트리버 Aero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도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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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oday's veterinary practice webp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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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강아지나 아기 고양이를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너무 귀여워서 한번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소나 말 그리고 양을 수시로 보긴 하지만, 스스럼없이 그 동물을 만지고 또 껴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저 ‘저 사람 정말 용감하구나.’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그 시작점은 어린 시절, 명절에 시골 왕할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 마당에서 아장거리던 막내 동생이 ‘덕구’라는 개에게 물릴 뻔한 것을 두 눈으로 보고 난 뒤였던 것 같다. 그 뒤로도 한국에서 또 아일랜드에 살면서 줄을 묶지 않은 개에게 위협을 느꼈던 몇 번의 경험을 하고 난 뒤에 특히 개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점점 증폭되어 왔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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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최근에 SNA(Special Needs Assistance)라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일은 교실에서 교사 외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십 대도 포함)이 학교생활을 해 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일이다. 약 6개월 동안 이론과 실습을 통해 자격을 획득하게 되면 실제 학교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학교마다 또 교실마다 SNA가 하는 일들이 정말 다양한데, 발달 장애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이 교실에서 통합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마치 엄마처럼 옆에서 아이의 공부를 지켜보거나,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을 위해 수업 시간 중간에 일정 시간 운동장을 걷거나 간단한 운동을 한 뒤 다시 교실로 돌아가도록 하는 일도 한다. 그 외에도 아이의 장애 정도에 따라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도 있고, 또 30분 단위로 정해진 수업 계획에 따라서 아이를 데리고 학교 내 여러 교실을 부지런히 옮겨 다녀야 할 때도 있다. 언뜻 보기에 쉬운 일처럼 보이겠지만, 말을 할 수 없는 발달장애 아이와 의사소통을 해야 할 때는 아이의 성향을 빠르게 파악해야 해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기술도 있어야 하고, 또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들을 돌봐야 할 때는 부상의 위험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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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적합하지 않은 일이 맡겨졌다.
이제 막 이 일을 시작하다 보니 우선은 SNA 대체 인력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사정으로 결석한 SNA가 생길 때 일을 해 달라는 연락이 오곤 하는데 어떤 일은 전날 밤이나 당일 아침에 연락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길어봐야 하루 이틀 정도로 일을 하다 보니 수입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학교에서 3주 동안 일을 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긴 시간을 일하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일단 일을 하겠다고 먼저 대답을 했다. 대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당일에 출근하면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 학교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연락을 했던 교감에게서 내가 해야 할 일과 시간표가 적힌 작은 수첩을 건네받았다. 그때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나는 별도의 설명을 듣거나 질문을 할 겨를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첫 번째 일을 할 교실로 가야 했다. 30분 내지 1시간마다 교실을 옮겨가며 해야 할 일과 돌봐야 할 아이들이 바뀌는 꽤나 강도 높은 일이었다. 그렇게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다음 일을 하기 위해 수첩을 열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에어로를 데리고 메이슨과 걷기 운동.’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학교에 있는 발달장애 도우미견 그러니까 에어로(Aero)라는 이름을 가진 커다란 래브라도를 데리고 메이슨이라는 이름의 아이와 학교 운동장을 돌며 걷기 운동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순간 몇 초간이었지만, 정신을 잃은 것처럼 아찔함을 느끼고 말았다.
10분 정도 일찍 교실에 도착한 나는 에어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는 개의 모습이라니 정말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서서히 걸음을 옮기는 에어로가 지나갈 때면 아이들은 익숙한 듯 에어로의 등을 쓸어내린 뒤 다시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또 교실 한 바퀴를 돌고 난 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쿠션에 머리를 괴고 앉아서 두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에어로의 주인이자 유치원 2학년(senior infants : 아일랜드는 유치원 2년을 포함해서 초등과정이 8년이다.)의 담임인 데비가 나에게 다가왔다. 인사를 나눈 뒤 솔직하게 나는 개와 친하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다. 몇 분이었지만 덩치는 커도 순하고 또 훈련이 잘 된 개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어서인지 다행히 무섭거나 도망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교실 밖을 나와서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행여 있는 힘껏 달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때 데비는 두 명의 아이를 불렀고, 이 아이들은 능숙하게 에어로에게 입마개를 착용시키고, 내 앞을 서서 가야 할 교실로 나를 인도(^^) 해 줬다.
다음 교실에 도착했을 때 두 아이는 교실로 돌아갔고, 나는 메이슨이라는 아이는 매일 걷기를 했으니 에어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메이슨은 워낙 내성적이고 활발하지 않은 편이라서 메이슨의 줄을 잡고 걷기보다 혼자서 땅을 보며 걷고 싶어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메이슨 옆에서 에어로의 줄을 잡고 조용히 또 천천히 학교 둘레를 함께 걸었다.
이후에는 에어로를 데리고 5학년 교실에 가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 교실에서 다음 1시간을 머물며 전쟁으로 피난을 온 우크라이나 아이 2명을 돌보는 일을 했다. 내가 지내는 1시간 동안 에어로는 교실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자기 자리에 앉거나 누워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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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금요일이 되었다.
지난밤부터 스톰이 다가오고 있다는 일기예보의 영향으로 등교시간부터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에어로를 데리고 운동장을 걸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아이들과 함께 에어로를 데리고 학교 안을 걷기로 했다. 1층 복도를 다 지나고,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평소와 다르게 메이슨이 나를 쳐다보며 에어로가 침을 많이 흘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보니 뚝뚝 물방울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가지고 있던 휴지로 닦아 가며 또다시 2층 복도를 한 바퀴 다 돌았다. 그런데 에어로가 더 이상 걷기를 거부하고 자꾸만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해서, 나는 운동을 더 하지 않기로 하고 메이슨을 교실로 보내기 위해 1층으로 갔다. 메이슨이 옆 건물로 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자 에어로가 평소와 다르게 있는 힘껏 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줄을 당기며 “안돼, 밖에 비가 내려서 나갈 수 없어.”라고 말하며 힘으로 저지했다.
그런 뒤 진정이 된 것 같은 에어로를 데리고 2층 교실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계단을 오르다 멈춰 서는 것이었다. 에어로 옆에 서서 계단을 오르던 나는 그 순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에어로가 그 자리에 서서 참았던 쉬야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계단에서 커다란 덩치의 래브라도는 계단을 넘치게 할 만큼 많은 용변을 보았고, 나는 그 옆에 서 있었다. 만약 내가 개를 키워본 경험이 있었다면 밖으로 나가서 용변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나는 그런 것을 잘 아는 애견인도 아니었고, 또 에어로에 관한 어떠한 인수인계를 받은 적이 없기에 결국 에어로가 학교 안에서 실수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살짝 뜨뜻함이 느껴지는 나의 신발을 확인하면서 화가 나지 않고 오히려 에어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습긴 하지만, 계단을 넘치게 한 에어로의 냄새나는 용변을 청소하면서 더럽다는 생각보다 아이들이 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넘어지지 않게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몇 번을 더 닦고 닦았다. 그리고 엄마로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이런 일이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일까, 청소를 다하고 교실로 들어가서 한쪽에 누워있는 에어로를 보니 왠지 아기같이 느껴졌고,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내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 날 이후 나는 에어로의 입마개도 직접 착용시키고, 가랑비가 와도 마다하지 않고 에어로를 데리고 산책을 하며 밖에서 용변을 보게 한다. 이 학교는 전체가 풀밭으로 되어 있어, 에어로가 그러는 것쯤은 그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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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로를 돌봤던 3주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쩐지 동물에 대한 ‘두려움’이 살짝 걷히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자연이 펼쳐진 아일랜드에서 소나 양과 같은 가축들뿐만 아니라 여우, 노루, 오소리, 고슴도치, 해달, 매, 부엉이 같은 동물들을 만날 때 무섭다는 생각보다 반갑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의 변화가 생기면서 늘 내 머리 한 곳에 자리 잡았던 ‘나는 개를 무서워해.’ 라는 생각이 어쩌면 ‘고정관념’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단정 지은 고정관념들 앞에서 겁을 먹고 옴짝달싹 하지 못했던 인생의 순간들이 나에게는 생각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굳어버린 내 몸을 풀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결국 에어로를 만났을 때처럼 전에 없던 인생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나 자신과 세상의 다른 면을 발견해 나갈 때 가능하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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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브런치: http://brunch.co.kr/@regina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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