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돌봄, 그 사이 어디쯤에서
육아와 자아 사이_노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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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부터 괜히 마음이 분주했다. 출산 후 약 7개월, 대망의 출근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프리랜서로 단기 연수프로그램에 투입되는 것이어서 출근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어쨌거나 출산 후 처음 하는 일이었다. 한 달에 걸쳐 며칠간 서울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짝꿍은 휴가를 쓸 수 없는 상황이고, 결국 옆 동네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시기로 했다. 유자의 요즘 생활패턴과 주의 사항 등을 빠짐없이 작성해 두고, 이유식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최대한 완벽하게 준비해 뒀다. 이동 시간이 최소화되는 동선을 계산해 차편을 예약해 두고, 마침내 아기와 떨어진 첫 하루를 보냈다.
오랜만의 일은 즐거웠다. 오랜만에 차려입은 내 모습은 어색하지만 나쁘지 않았고, 오랜만의 서울 지하철은 숨 막히게 복잡하지만 반가웠다. 오랜만에 쓰는 업무 영어는 잠시 버벅거리다 조금씩 돌아왔고, 오랜만에 만난 외국인 연수생들은 잠시 잊고 있던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다. 틈틈이 아기와 어머니는 어떤지 확인 전화를 했고, 그때마다 아기는 종종 나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안도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고마웠다. 여러 사람의 시간을 빌려 쓰고 있는 듯한 지금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생겼다.
그렇게 무사히 다녀온 다음 날은 온전히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 이튿날 다시 유자를 맡겨두고 당일치기로 서울을 다녀왔다. 며칠 후, 시어머니께서 전화하셨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안 그래도 몸이 약하신 편인데, 체력 넘치는 손주 육아로 병이 나신 거였다. 어머니는 아주 조심스레, 혹시 다음 주로 예정된 나의 업무 기간에는 친정엄마가 유자를 봐주실 수 있을지 물어보셨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몸져누우신 시어머니께도, 멀리서 갑자기 소환당하게 생긴 엄마에게도 너무 죄송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일을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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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번째 출장 주간이 되었다. 결국 친정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편도 세 시간 반 거리를 운전해서 달려왔다. 그런데 유자가 심상치 않았다. 아침부터 열이 계속 났다. 아픈 아기를 놓고 가는 것이 맞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프로그램 당일에 누군가가 나를 대체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기는 잘 먹고 잘 놀고 아직 다른 증상은 없으니, 일단 찝찝한 마음으로 2박 3일 짐을 싸서 서울로 출발했다.
일을 하다 쉬는 시간만 되면 엄마에게 메시지를 하고 전화를 했다. 열은 계속 떨어지지 않고, 유자는 점점 더 칭얼거리고, 갑자기 팔다리에 울긋불긋한 점이 보인다고 했다. 결국 아기는 병원에서 수족구병 진단을 받았다. 그냥 다 나을 때까지 앓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첫 병치레였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엄마도 보이지 않아서 더 불안할 아기가 안쓰럽고, 그걸 다 받아주고 있을 나의 엄마에게 미안했다. 네가 여기 있다 한들 뭐 크게 다를 게 있겠냐는 엄마의 말이 그나마 위로 아닌 위로가 되었다.
일하는 동안 불안하고 착잡한 마음을 감추느라 애썼다. 점심시간에는 나를 이번 일에 고용해 준 선배 여성들과 밥을 먹었는데, 일하는 엄마로서 자녀들에 대해 늘 갖고 있는 미안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마음 때문에 자녀들의 사춘기 시절에 과도하게 수용적이었던 것을 후회한다는 이야기였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나 역시 아기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왜 엄마만 일하는 걸 미안해해야 하는 걸까 싶은 억울함이 차오르기도 했지만, 끝끝내 나는 지금 아기가 아프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일터에서는 최대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과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다음 프로젝트에 또 나를 고용해 줄 수 있는 이들 앞이어서 더 그랬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2박 3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기의 수족구병 물집이 하나둘 터지고 있었다. 작디작은 몸에 수십 개의 물집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행여나 수포를 건드릴까 조심스럽게 꼭 안고 또 안아주었다. 다음날 또 당일치기로 서울을 다녀와야 한다는 사실에 씁쓸했지만, 그래도 나를 보며 방긋 웃어주는 아기는 컨디션이 괜찮아 보여서 그나마 안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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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차례의 서울 출장을 마치면서 드는 생각은 딱 두 가지였다. 첫째, 일하니 재미있다. 둘째,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절대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일이 고정적이지 않은 프리랜서이다 보니 한 달에 며칠씩만 이렇게 육아 도움을 받으면서 일이 끊기지 않게 이어만 나가도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사실 시어머니가 먼저 그렇게 제안해 주시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여러 사람의 시간과 노동에 기대어 미안하고 빚진 마음으로 바깥일을 하는 것이 맞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능한 일과 육아의 방식은 무엇인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생겼다.
쿨하게 일을 잠시 내려놓고 육아에 전념하는 것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과감하게 아이를 기관에 보내놓고 일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결정도 못 내린다. 우유부단한 내 성격은 엄마가 되어도 여전하다. 다들 하는 말도 다르다. 누군가는 조급해할 것 없다고 말해줬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계속 움직이라고 이야기해 줬다. 이렇게 온전히 아기와 함께할 수 있는 것도 지금 잠시뿐일 테니 두 돌까지는 가정 보육을 하겠다던 원래의 계획과, 기관에 일찍 가는 것이 아이의 발달과 내 성장에도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때는 이게 맞는 것 같고 지금은 저게 맞는 것 같은 날들의 반복이다.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휴일 아침, 짝꿍이 아이를 돌보는 동안 새벽같이 노트북을 챙겨 나와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생각을 활자로 옮겨 써봐도 딱히 정리가 되지 않는 느낌이다. 앞으로 펼쳐질 육아의 과정에 더 많은 이런 혼란과 결정의 순간이 닥쳐올 거로 생각하니 아득해진다.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일과 돌봄의 공존은 어떤 모습으로 가능할까. 여전히 답은 없지만, 그래서 이 글의 결론도 딱히 없지만, 그저 치열하게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오늘도 한 생명을 보듬고 있는 세상 모든 양육자에게 진심 어린 존경과 응원을 전하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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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와 자아 사이 일 중심의 삶에 임신-출산-육아의 세계가 찾아오면서, 그 사이 어디쯤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이야기합니다.
* 글쓴이 - 노현정 (noh.hyounjung@gmail.com) 교육 x 국제개발협력 언저리에서 일하고 여행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다정한 우리를 꿈꾸며 글을 씁니다.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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