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언제 더웠냐는 듯이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기온이 떨어지면 겨울을 대비해야 한다. 시원한 여름 이불은 넣어두고 포근하고 보드라운 촉감의 이불로 바꾸고, 겨울에 먹을 핫초코는 충분한지 찬장을 뒤적거린다. 그리고 괜히 뜨개질이 하고 싶다. 원래라면 세이브더칠드런의 신생아 살리기 캠페인에 보낼 모자를 떴겠지만, 이제 해당 캠페인은 종료되었다. 덕분에 올해는 나를 위한 뜨개질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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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에서 바늘구멍 하나를 1 코라고 부른다. 바늘이 두꺼우면 한 코의 크기도 커지고, 가느다란 바늘을 쓰면 코의 크기가 작아진다. 하지만 꼭 이렇게 일률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 사람마다 얼마나 여유를 주며 뜨개질하는지에 따라 코의 크기는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이를 두고 사람마다 손땀이 다르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뜨개 도안에서는 보통 코의 개수와 함께 직물의 길이를 알려준다.
목도리나 컵 받침처럼 작은 직물을 뜰 때는 나의 손땀이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담요는 가로 길이가 무려 100 cm에 달했고, 코 수는 200 개가 넘었다. 코 수가 많은 만큼, 작은 차이가 누적되어 큰 편차를 만들어내었다. 구멍 개수를 열심히 세서 코 수를 맞췄더니, 길이가 무려 150 cm나 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실을 모두 풀어서 처음부터 다시 뜨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실을 바짝 당겼더니, 길이가 90 cm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50 cm보다는 차이가 줄어 10 cm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 이대로 만족하고 뜨기로 했다.
눈치 차렸겠지만, 나는 중간이 없는 편이다. 손 땀이 여유로워서 구멍을 크게 만들거나, 아니면 바짝 쪼여 길이를 반토막 낸다. 운동은 하지 않거나, 한 번 하면 끝까지 몰아붙여 며칠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닌다. 사람을 대할 때도 중간이 없다. 좋아하는 사람은 무슨 행동을 해도 다 좋아 보이고, 싫은 사람은 작은 행동도 괜히 거슬린다. 늘 그렇듯이 적당한 것이 가장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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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가 불연속적으로 변하듯이 물의 상태도 불연속적으로 변한다. 물은 온도에 따라 상태가 달라진다. 실온에서 물은 보통 액체 상태이다.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고, 담겨있는 그릇에 맞추어 모양이 달라진다. 그렇지만 온도가 낮아져 0℃보다 낮아지면, 물은 딱딱한 고체로 변한다. 물이 얼음으로 변하면 모양이 고정된다. 마치 좋은 사람에게는 이래도 저래도 좋다고 하지만, 싫은 사람 앞에서는 무엇을 해도 딱딱한 마음으로 틈을 내어주지 않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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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담긴 그릇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물과는 다르게 얼음은 모양이 딱딱하게 고정된다.(출처: KidsDis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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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물은 얼음같이 차갑기는 하지만 아직 얼음은 아니다. 물은 어는점인 0℃를 지나야만 고체로 변한다. 물이 기체 상태로 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99℃의 물은 아주 뜨겁기는 하지만, 여전히 액체 상태이다. 끓는점인 100℃에 도달해야 물은 비로소 기체로 변한다. 액체 상태의 물은 컵에 담아둘 수 있지만, 기체 상태의 물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게 공기 중으로 퍼진다. 온도 관점에서는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차이지만, 물의 성질은 고체와 액체, 기체 상태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물의 상태에도 중간은 없는 셈이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상태변화가 언제나 이렇게 불연속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석은 온도가 아주 높아지면 자성을 잃는다. 이렇게 자석이 자성을 잃거나 얻는 임계점을 퀴리온도라고 부른다. 퀴리 부인의 남편인 피에르 퀴리가 발견했다. 철로 만들어진 자석은 770℃가 넘으면 자석으로서 성질을 잃어버리고 일반적인 금속과 같아진다. 옆에 자석이 있으면 달라붙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금속을 끌어당기지는 못한다.
이러한 자석의 상태변화는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온도가 높아지면 자석은 서서히 자성을 잃는다. 실온에서는 자석이 금속을 단단하게 붙잡아서, 금속을 떼어내려면 힘을 좀 써야 한다. 하지만 온도가 높아질수록 자석이 금속을 붙잡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금속을 떼어낼 수 있다. 그러다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금속이 더 이상 붙지 않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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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흐름을 상태 변화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물이 흐르지 않는 상태에서 물이 흐르는 상태로 변화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연속적으로 상태가 변한다. 수도꼭지가 꽉 잠겨있을 때는 물이 나오지 않지만, 수도꼭지를 조금씩 돌리면 물이 졸졸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수도꼭지를 많이 돌리면 물이 콸콸 쏟아져나온다. 수도꼭지를 돌린 만큼만 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의 물을 사용할 수 있다.
반면에 댐이 무너져 물이 갑자기 쏟아진다면 이는 불연속 상태변화로 볼 수 있다. 물이 고여있는 댐에 작은 균열이라도 생기면 물은 엄청난 압력으로 작은 틈을 비집고 터져나온다. 일단 댐이 무너지면 물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다. 감정 표현이 수도꼭지로 조절된다면 알맞은 수준으로 내 감정을 말할 수 있다. 또 불편한 마음이 들면 바로바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참고 억누르다 보면 댐에 물이 고이듯이 부정적인 감정이 쌓인다. 그러다 결국 댐이 터지면, 상대방을 싫어하는 것은 물론 별것 아닌 일들에도 기분이 상한다.
그러니 인생은 이왕이면 연속 상태변화처럼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뜨개질할 때도 손땀이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게, 적당한 수준으로 조절할 수 있다. 운동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몰아서 하기보다는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서 근육이 무리하지 않는 수준으로 말이다. 사람을 대할 때도 이왕이면 상대방이 너무 싫어지기 전에 불편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래도 조금은 더 둥글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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