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에 이 제안을 받고,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맞는지 망설임과 의심이 계속 들었다. 거절을 하기도 어려웠지만, 막상 거절해야 되는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려웠었다. 우선, 나는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르친다는 표현을 그닥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내 주제에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지 자격지심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방적 의미보다, 배움을 나누는 일이라고 바꾸어 질문해 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일을 좋아하는가? 하고 질문해 보자, 그건 분명 내가 좋아하는 일이잖아? 싶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몇 안 되는 아이들에게라도,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라는 언어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낯선 세계를 향한 두려운 마음을 열게 만들 수만 있어도 다행이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외국에서의 경험을 나누며,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또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세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는 일이라는 것을 함께 배워나가면 좋을 것 같다.
거창한 말을 해놓고도, 실은 나야말로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 겪어보는 영어 선생님이라는 낯선 문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나 자신이 작아질 때마다 도대체 나는 무슨 힘을 내어야 하나. 언젠가 정용준 작가의 <밑줄과 생각>이라는 책에서 평범하지만 진한 용기를 얻은 문장이 있었다. “때론 나 자신에게 나를 맡겨야 할 때도 있어요. 내가 갖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것들로 이겨내고 회복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언제나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들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힘을 쓰라는 것. 힘들 때,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새로운 기발한 특별한 비법을 찾아 바깥으로 헤매기보단,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그동안 내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는 과거의 시간을 꺼내어 쓴다. 나는 기억해 낸다. 내가 거쳐온 좋은 선생님들의 느낌과 온도, 닮고 싶은 말투와 눈빛, 머물고 싶은 따뜻한 품...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영어 수준을 탓하며 나를 다그치기보단 내가 이미 가진 힘을 긍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 부족한 부분은 지금 아이들과 함께 서로 배우며 채워가면 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오로빌 : 남인도에 위치한 세계적인 생태영성 공동체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