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찍은 사진: 2013년
십분 즈음 흘렀을까, 보라색 노을이 남색으로 물들다 곧 어둠이 내려왔다. 이상한 나라에서 돌아온 기분이 들자 ‘열다섯 시간을 날아왔으니 멋진 하늘을 만났겠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비싼 티켓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고, 그렇게 믿었다.
그땐 평균 14시간 정도 일하는 회사에 다녔다. 한 번에 세네 개의 프로젝트를 맡고, 때로는 저글링 하듯 쉼없이 움직여 하루는 길어도 분주했다. 마감 기한이 닥치면 회사 앞 식당도 멀게 느껴져 책상에서 김밥을 물었다. 한달에 절반은 밤 열한 시 넘어 택시를 탔고, 100미터 달리기 하듯 앞만 보며 나아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사치 같이 느껴졌다.
그러다 며칠 여유라도 생기면, 쫓기듯 살아온 내게 보상하듯 비행기 표를 끊었다. 어디로 떠난 게 아니라 외국으로 도망 쳤다. 그때는 해외에서 인터넷을 쓰기 쉽지 않아,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다. 서울만 벗어나면 마음껏 하늘을 볼 수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몇 년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생이 되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공부하느라 집 근처 회사에 취직했다. 월급은 전보다 훨씬 줄어든 대신, 여섯 시 칼퇴근이 따라왔다. 얇아진 지갑 때문에 택시를 끊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걸어서 퇴근했다. 비행기도 자연스레 멀어져 솔 광장의 하늘을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하지만, 2019년 10월의 어느 날, 그때의 하늘을 다시 만났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이기에 이어폰을 꽂고 바람 따라 퇴근하던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는데, 눈앞에 하늘 빛을 머금은 보라색이 쏟아졌다. 길 건너엔 교회가 있었는데, 꼭대기 십자가를 바라보니 이곳이 서울인지 마드리드인지 헷갈렸다. ‘여유가 없어 어디든 존재하던 이 하늘을 바라볼 수 없었던 걸까?’라는 생각과 뭐가 문제였는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