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뉴(별명)를 만나던 날이야.
엄마가 아야 아야 하니까 아빠가 손도 잡아주고, 안아주지?
이분은 조산사 선생님이야.
뉴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뉴뉴 머리를 만져주신 분인데 기억나?
그때 뉴뉴가 많이 움찔했어!
이분은 둘라님!
엄마가 아야 아야하면 엄마가 덜 아플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이야.
지난번에 병원 가서 만났었지? 뉴뉴에게 땅콩 모양 짐볼 태워서 놀아주신 분~!
2년 전 어느 겨울날, 뉴뉴가 태어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우리 모자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21개월인 아이는 엄마가 진통으로 아픈 부분을 보면 눈썹이 내려간 얼굴로 얼른 엄마를 안아준다. 동생이 어디 있냐고 물으면 내 배를 가리키며 반짝 웃기도 하고, 뱃속에 있을 때 조산사 선생님이 네 머리를 만졌다는 이야기를 하면 “아니야!”라며 장난스레 고개를 젓는다.
요즘 우리 세 가족은 곧 태어날 뉴뉴의 동생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 중이다. 첫째 뉴뉴를 돌보면서 각자 하고 있는 일도 바쁘다 보니, 다른 준비보다 마음의 준비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동생이 태어난 첫째가 ‘폐위된 왕’에 비유되는 건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인지라 우리 부부는 무엇보다 첫째 뉴뉴가 마음이 덜 다쳤으면 하고 이 부분을 가장 신경 쓰고 있다. 뉴뉴는 낯선 것에 조심스러운 편이기도 하고, 거부감도 보이는 편이라 ‘동생’이라는 존재에 가능한 만큼 친숙해지게 하려고 한다. 그래도 동화책으로 먼저 접한 존재들에게는 꽤 관대하고 호의적인 아이니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책과 엄마가 말해주는 출산 당일의 이야기를 자주 접하다 보니 뉴뉴는 이제 뱃속의 동생을 기다리는 눈치다. 동생이 태어나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택시와 빠방을 알려주겠다며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내 무릎 사이에 자동차를 잔뜩 가져다 놓는다. 그러면 나는 뱃속에 있는 동생도 뉴뉴처럼 엄마 아빠의 사랑이 맺어낸 사랑의 열매라고 틈틈이 일러주며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지난 출산 사진의 절반 이상은 진통을 겪는 모습이지만, 마침내 첫째가 세상에 나와 나의 몸 위로 처음 올라 맨살을 비비며 모두 함께 웃는 장면으로 넘어가면 어느새 뉴뉴도 활짝 웃기 시작한다. 태어나자마자 아빠가 불러준 곰 세 마리 동요 영상을 보여줄 때면 멋쩍은 듯 헤헤 소리를 내며 웃는 꼬마 뉴뉴.
“이것 봐. 엄마가 아야 아야 하다가도 뉴뉴가 태어나고 만난 뒤에 기쁘게 웃지? 아빠도 엄청 행복해 보여. 뉴뉴가 엄마 아빠에게 무사히 와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동생도 이렇게 우리하고 만나게 될 거야!”라고까지 말하면 어느새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다. 매번 해주는 첫째의 탄생 이야기는 언제나 “엄마가 아야 할 때 뉴뉴가 잘 도와줄 수 있어요?”라는 질문과 아이의 힘찬 대답 “네!!!”로 마무리된다.
진통이 오면 우리 부부는 뉴뉴와 함께 손잡고 아기를 낳으러 가기로 했다. 첫째에게는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어 고민하기는 했지만, 동생이 태어나는 인생의 단 한 번의 순간을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동생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 그래서 첫째는 예정일 한 달 전, 좋아하는 퍼즐과 자동차를 야무지게 챙겨 함께 병원에 가 출산 리허설을 받았다. 아기 인형이 엄마 다리 사이에서 나오자 뉴뉴는 아기 인형의 발가락을 살짝 만지고는 쑥스러운 듯 아빠 뒤로 숨었다.
이제 출산 예정일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뉴뉴처럼 열흘 늦게 나오고 싶을 수도 있을 테니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찾아올 새 생명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고요하게 기다릴 뿐이다. 다가올 일 년간 둘째 새싹이도 세상의 온습도에 적응하고, 이앓이를 겪으면서 다양한 음식을 접하고, 두 발로 서고 걷는 과정들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남편과 나, 첫째 뉴뉴도 세 가족에서 네 가족이 되는 적응기를 보낼 것이다. 나는 그 여정이 우리 네 명 모두에게 자연스럽고 소중한 순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힘든 만큼 보석처럼 빛나는 찰나를 찾으며 말이다.
처음 세상에 나온 새싹이를 세 가족이 따뜻하게 안아주고, 반기며 사랑을 틔워나가는 모습, 서로의 품과 온기를 기꺼이 나누며 가까워지는 모습. 아마도 이게 내가 그리고 있는 가족의 장면이 아닐까 싶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둘의 모습이 마법처럼 섞인 ‘아이’라는 존재를 만들고 단단해지는 일이 누구에게나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모성애나 부성애의 세계가 열리고, 단숨에 노련한 부모가 되지는 않는 것처럼 아마도 세 가족에서 네 가족이 되는 것 역시 또 한 번의 새로운 노력이 필요할 테다. 아마도 인생 중 가장 빼곡한 시간들로 채워질 것이고, 그 시간들이 우리 가족 모두를 성장하게 하고 내밀하면서도 견고하게 만들어줄 것임을 안다. 다시 한 번 숨을 고르고 용기를 낸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일도 충분히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려는 이 순간도 아무래도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