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릴스를 보는데 블랙핑크 리사의 공연 영상이 떴다. 리사가 짧은 치마를 입고 바를 잡고 춤을 췄다. 몸을 돌리자 절개된 치마 사이로 스킨색 속옷이 드러났다.
블랙핑크 리사
"스트리퍼 같다" "몸매가 너무 예쁘다"
비난과 찬사의 댓글이 동시에 달렸다. 우리는 스트리퍼라는 직업을 경멸하면서도, 예쁜 몸매를 선망한다.
나중에 보니 사실은 블랙핑크 전체 무대였는데, 내가 본 건 리사만 편집된 영상이었다. 리사가 가장 파격적인 의상과 안무를 보여서인지, 회자된 건 주로 리사였다.
이십대 초반, 방송 프로덕션에서 일할 때였다. 사무실에 들락거리던 사장 친척 남자가 내게 말했다.
"넌 텐프로 못 돼."
그런데 배우나 모델도 아니고 텐프로라니, 이상하게 더 불쾌했다.
그날 사무실엔 나와 그, 선배 언니 한 명뿐이었다. 나는 조연출(이라하지만 말단 직원)이었고, 그는 정해진 포지션 없이 사무실에 나와 자막을 치거나 얼쩡거리곤 했다. 그가 텐프로 얘길 꺼냈을 때 선배 언니는 그에게 적당히 호응해주고 있었다. 그는 옆에서 작업하고 있던 내게도 말을 걸어왔다.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너 텐프로 알아?"같은 말이었던 것 같다. 귀찮아서 별 관심없다는 듯 퉁명스레 대답했더니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때 알았다. 경멸과 선망을 동시에 받는 텐프로의 이중적 지위를. 엄마한테 내가 "엄마, 나 텐프로 될래"라고 했다면 호적이 파였을 거다. 하지만 그는 텐프로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텐프로는 유흥업소에서 외모가 상위 10% 안에 드는 여자를 말한다. 외모라는 기준으로만 본다면 분명 우월했다.
그는 배우나 모델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사무실 게시판에 자기 프로필 사진을 두 장 붙여놨었다. 방송프로덕션에 들락거리며 기회를 찾고 있었을 수도 있다. 선배 언니는 그에게 잘생겼다며 장단을 맞춰줬다. 하지만 내 눈엔 느끼하고 촌스러웠다. 어쩌면 그는 내가 그의 외모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앙갚음한 걸지도 모른다.
그의 말은 나에 대한 모욕이자 그의 결핍을 드러내는 고백이었다. 텐프로처럼 우월한 외모를 갖고 싶다는.
챗GPT 생성 이미지
외모와 성적 매력은 분명 힘이다. 텐프로도, 스트리퍼도 아무나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 큰 소리로 그들을 경멸한다. 그 힘을 인정하기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