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4명이면 좋겠어.” 아이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초등 졸업을 앞둔 아이가 자주 어울리는 친구들은 톰보이 D와 흥이 많은 O, 아이, 이렇게 세 명이다. 조별 과제를 할 때도, 수학여행에서도, 밤샘 파티를 할 때도 이 셋은 함께였다.
아이는 최근 D와 O가 부쩍 멀게 느껴진다며 속상해했다. “둘이서 내가 한 말에 자꾸 반대하면서 서로 맞장구를 치는 거야. 작년에는 Y까지 넷이라서 둘이 친하면 나머지 둘이 놀 수 있어서 좋았는데.” 아이는 작년에 전학 간 Y까지 들먹였다. 한 명이 더 있으면 넷이라서 누구도 심심하지 않을 텐데, 아이는 못내 아쉬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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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은 둘이랑 같이 안 있을 거야. 같이 있으면 속상하기만 해.”라고 말하는 아이의 표정은 더 울적해 보였다.
“엄마도 셋이 친하면 꼭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더라. 근데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 D랑 O와 같이 안 지내는 게.”
아이가 느끼는 소외감은 분명 고통스럽다. 부모로서 가급적 아이가 그 고통을 느끼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친구를 한 명 더 끌어와 짝이 맞는 그룹이 되는 것보다, 그래서 어떻게든 아이가 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고통의 순간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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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크게 고통을 느낄 때는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 아이가 오래 앓았을 때, 전학 시기를 놓쳤을 때, 내 의견 때문에 아이가 잘못된 결정을 했을 때, 종일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한숨이 푹푹 나왔다. 아이에게 무언가 잘못한 것 같을 때 자책감에 몹시 침울해져 버렸다. 그럴 때 내가 원한 것은 ‘지혜로운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엄마로서의 효능감, 아이에게 최선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크고 작은 고통스러운 순간을 돌아보면, 분명 나는 무언가 바라고 있었다. 한국에서 돌아와 한동안 향수에 시달릴 때 나는 연결감을 바라고 있었고, 모임에서 말실수를 하고 괴로울 때 나는 이해받고 받아들여지길 바라고 있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아 무기력할 때 나는 조직에 기여하고 인정받길 바랐다. 아이에게 지혜로운 엄마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큰 만큼, 그렇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괴로움은 더욱 깊어졌다.
고통스러운 시절이야말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과 절실히 만날 수 있는 순간이 된다. 슬프거나 그리울 때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이나 기억을, 화가 날 때 공평이나 안전, 원칙과 같은 지키고 싶은 가치를, 좌절할 때는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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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원했던 것은 세 명의 그룹에 안전하게 소속되는 것이었다. 서운하고 화가 난다고 친구들로부터 거리를 둔다면 그건 아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아이가 바라는 친밀감과 더 멀어질 뿐이다.
당장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에 바로 뛰어들 때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원하는 것과 멀어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과제 마감을 앞두고 유튜브를 열기 시작한다든가, 연인과 다툰 후 연락을 받지 않는다든가, 상사에게 지적을 받은 후 일을 미루는 것 모두 우리가 원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 연인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 인정받는 것에서 멀어져 버린다.
“너에게 그 친구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외로운 게 아닐까.” 아이에게 말했다. 소외감과 외로움을 기꺼이 끌어안고 친구들에게 다가가 보라고. 화가 난 표정으로 혼자 앉아 있기보다 친구에게 다가가 그가 좋아할 만한 주제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 보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권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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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언가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고통은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다. 괴롭지 않으려면 아무것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된다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고통이 깊다면 그만큼 우리가 삶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관계가, 성취가, 인정받는 것이 소중할수록 우리는 더 깊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를 취약하게 만들고 만다.
지금 고통스럽다면,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기보다 그 고통을 천천히 살펴보길 바란다. 고통이 주는 메시지, 즉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원하는 삶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고통은 그저 피하거나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힘들지만 가치 있는 무엇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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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Istock
*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공부가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감정 글쓰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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