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아일랜드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세요?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도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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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서울에서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까지의 직선거리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지구의 둘레가 40,000km 정도니까 한국에서 아일랜드까지 이동하려면 지구의 4분의 1을 돌아야 도착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당장 집을 나서서 한국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더라도 꼬박 하루 반나절이 걸리는 거리이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을 들여다봐야 할 소식들이 전해지면, 마음의 거리는 쉽게 400만 km가 되어 버린다.
반면 이렇게 먼 거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때가 있는데, 영상통화나 클라우드 공유 같은 서비스 덕분에 가족과 소식을 전하고 일상을 나누는 일이 실시간으로 쉽게 이루어질 때면 아일랜드와 한국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가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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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통계청(CSO)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국토의 약 60%가 목초지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 농업의 80%가 목축업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도 도시에서 30분 정도만 달려가면 드넓게 펼쳐진 목초지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젖소나 양떼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아일랜드는 대서양의 영향으로 연중 비가 많이 내리지만, 겨울은 평균 4~7도, 여름도 평균 14~16도 정도로 연중 기온 변화가 심하지 않은 기후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일랜드도 예외 없이 지구의 기후 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 사실 아일랜드는 자연을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이기에 기후 변화에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특히 농업 및 목축업을 하는 농민들에게 매년 예측할 수 없는 기후의 변화는 재정적인 부담을 갖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가뭄으로 땅이 노랗게 타들어 가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가축을 먹이기 위한 사료 구입에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재정적인 부담이 농부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또한 축들이 신선한 풀이 아닌 사료를 먹으며 축사에 오래 머물면서 생산해 내는 우유의 맛과 품질의 저하가 문제가 되면서 낙농품 제조 회사에서 농가에서 생산된 우유를 수급하면서 까다로운 조건으로 구입하고 있는 것도 농민들에게는 큰 어려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불확실한 생산성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민을 하던 농민들에게 달콤하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태양광 개발 기업들이었다. 기업들은 농민들에게 25년에서 30년 동안 땅을 임대하여 장기적으로 안정된 소득을 보장해 주었고, 정부에서는 일정한 조건을 유지하면 농지세 감면도 계속해서 유지해 주는 조건으로 암묵적으로 농지에 태양광판을 설치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으로, 농민의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가축을 팔고 그곳에 태양광판을 설치하는 것을 대안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제는 푸른 목초지 위를 이 ‘태양광판’이 덮고 반짝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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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만 꽂아도 나무로 자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옥한 아일랜드의 토지를 태양광판으로 뒤덮게 되면서 지역사회의 갈등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목축업 외에도 관광업이 주요한 산업 중 하나인데, 태양광 판이 설치되면 경관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외에도 송전 시설 설치로 인한 전자기장 발생으로 주민의 건강을 해친다는 주장과 함께 인근 지역의 토지 가격도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최근 들어 전국 각지에서 이러한 사회적 갈등으로 지역사회가 분열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제기되기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최근에 지역에서 손꼽히는 부자로 불리는 브라운 씨가 소 만 마리를 모두 팔고 대신 태양광판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이후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룹을 형성해서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브라운 씨가 자신의 결정을 바꿀 의사가 없다는 생각을 반대 그룹의 사람들에게 보내면서 갈등은 더욱 격렬해지며 이웃 간에 반목하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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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농민의 안정적인 수익 창출에 기여하면서도 한편으로 지역사회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태양광판 설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배경에는 ‘데이터 센터’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다. OECD의 법인세율 데이터에 따르면 영국이 25%, 독일이 29.9%의 법인세율을 부과하는 데 반해 아일랜드는 12.5%에 불과한 법인세율을 부과하고 있어 글로벌 IT 및 테크 기업들에게 기업을 운영하기에 매력적인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아일랜드에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애플 등의 유수의 기업들이 수천 명을 고용하고 연구시설과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연중 온화한 기후 등의 특성을 배경으로 아일랜드에 데이터 센터를 설치하고 확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확장되고 있는 데이터 센터에서 소비할 전력의 생산을 위해 아일랜드 정부는 민간 기업들에게 사업을 맡겨 태양광판 설치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The Future of Data Centres in Ireland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아일랜드에서 생산되고 있는 전력의 22%가 데이터 센터의 가동을 위해 사용되고 있고, 2030년까지 35%까지 확대될 전망이라고 한다. 아일랜드의 목초지에서 생산된 전기로 글로벌 기업의 데이터 센터를 돌리고, 또 이를 통해 전 세계인의 디지털 사용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아일랜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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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사무실에서 구글 드라이브에 대용량 파일을 저장하는 업무를 실제로는 아일랜드 목초지에 설치된 태양광판으로 생산된 전기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기도 하고 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다. 전 세계 사람들이 더 많이, 더 다양한 형태로 데이터를 소비하게 될 것이 명백한 미래 앞에서 아일랜드의 더 많은 목초지가 태양광 발전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점은 아일랜드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걱정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보이지 않지만 한국의 일상과 아일랜드의 일상이 이렇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데이터를 줄이는 작은 습관이 아일랜드의 자연경관을 지키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 센터에서는 데이터를 보존하기 위해 여러 번 복사하여 저장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이메일에 쌓여 있는 정크메일도 계속해서 많은 데이터를 차지하고 있고, 이러한 데이터를 운영하는 데 적지 않은 전기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번거롭겠지만 잠시 시간을 내서 광고 메일이나 정크 메일들을 삭제하고 메일함을 자주 비우는 노력을 해 줬으면 좋겠다. 그 노력들로 한국에서 8950km 떨어진 아일랜드의 데이터 센터의 전력 사용을 줄일 수 있고, 그래서 전기를 덜 쓰는 만큼, 아일랜드의 푸른 들판과 자연환경이 조금 더 오래 지켜질 수 있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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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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