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두 달 남짓 남았다. 예식장을 잡기 전부터 결혼 소식을 알릴 정도로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꼭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은 어른까지 연락하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주변에 가깝고 편한 사람들에게 알릴 때는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내가 어른으로 여기고 조금은 어렵게 느끼는 분들에게도 소식을 전하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즐겁고 신나는 일로만 여겨졌는데, 점차 나의 결정과 이를 주변에 알리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몇 년의 인생도 가늠하기 어려운 마당에, 한 사람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겠다고 선언하는 일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을 호언장담하는 기분이 들었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지금껏 살아온 30년의 세월로 이후에 다가올 70년의 세월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진 1. 결혼 반지 (출처: Unsplash의 Sandy Millar)
요동과 안정
이런 기분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더니, 남편은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밤이 되어 잘 준비를 하던 남편은 대뜸 ‘70년 뒤에도 나랑 놀아 줘’라며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들어 매었다. 내가 없으면 누가 이상한 과학 이야기 들어주고 또 같이 자전거 타고 산책해 주냐며, 자기 옆에 있어 달라고 했다. 또 내가 없으면 분명 머리도 자르지 않고 구멍난 옷을 입고 다닐 거라며 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무심한 듯 보였지만 남편 내 말을 기억하고 또 속으로 생각하고, 내게 건넬 말을 고르고 있었다.
내 기분이 요동칠 때면 남편은 그저 묵묵히 내 곁을 지킨다. 한번은 게임하던 남편에게 다가가 우울하다고 했다. 남편은 말 없이 게임 속에서 높은 지형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왜 왔냐 물으니, 높은 곳에 있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감동을 받아 오열했다. 그렇게 눈물을 쏙 빼더니 이내 기분이 나아져서는 오두방정을 떨며 이번에는 남편의 정신을 빼놓았다.
몇 년은 커녕 당장 몇 시간 후의 기분도 예측하기 어려운 나지만, 남편은 그래도 나와서 함께 하고 싶다고 내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 남편 덕분에 나의 기분은 조금은 덜 요동치고, 또 조금은 빠르게 안정 상태로 접어든다. 내 기분은 간장 종지에 담겨있지만, 남편은 마치 아주아주 커다란 호수에 담긴 물 같다.
사진 2. 전주에 위치한 아중호수(출처: VISIT JEONJU)
감정의 열용량
한 컵 분량의 물을 끓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라면 물을 끓이기 위해서는 좀 더 오랜 시간 불을 가해야 한다. 더 나아가 물이 아주아주 많으면 예를 들어 호수에 있는 물을 끓이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열이 필요하다. 온도를 낮추는 일도 비슷하다. 간장 종지 만큼의 물이라면 얼음 한 알도 충분하다. 하지만 호수에 담긴 물은 얼음을 몇 바가지를 들이부어도 쉽게 온도가 내려가지 않는다.
어떤 물체의 온도를 1℃ 올리는 데 필요한 열의 양을 열용량이라고 한다. 열용량이 작으면 온도가 쉽게 변하고, 열용량이 크면 온도가 잘 변하지 않는다. 호수에 담긴 물은 열용량이 크다. 많은 양의 물이 열을 나누어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장 종지에 담긴 물은 열용량이 작아 온도가 쉽게 변하듯이, 내 기분의 온도도 쉽게 오르락내리락한다. 기분 좋게 흥얼거리다가도 제풀에 지쳐 늘어지고, 우울하다가도 갑자기 까불거린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라면 감정의 온도가 조금은 덜 요동친다.
나는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화를 곧잘 낸다. 하지만 남편이 곁에 있으면 온도가 10℃만큼 오를 일도 3~4℃에 그친다. 감정의 열용량이 큰 남편은 나의 화를 나누어 가져도 온도가 1℃ 오를까 말까 한다. 깊은 우울감에 빠지려고 할 때도, 남편은 내 기분이 꽁꽁 얼어버리지 않게 자기의 열을 나누어준다. 남편에게는 소소한 양의 열이지만, 내게는 기분을 회복하기에 충분하다.
호수 옆의 작은 그릇
처음에는 내 기분에 동참해 주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하기도 하고, 무슨 말을 들어도 무슨 상황을 겪어도 무덤덤해 보이는 남편이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는 남편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쩌면 남편이 무던한 사람이기에 변동이 큰 내 곁에서 지치지 않고 머물러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남편을 답답하게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남편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남편이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생각하고 또 참고, 말을 골랐을지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분명 간장 종지였지만, 남편을 닮아 조금씩 마음이 넓어져 이제는 작은 밥그릇 정도는 된 듯하다. 남편의 호수 같은 마음에 비하면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