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시기마다 달리 읽힌다. 어린 시절 읽은 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새로운 감동과 재미를 느낀다면 그 책은 인생의 벗이 된다. 나에게는 캐나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1908)이 그렇다. 어렸을 때는 앤의 단짝 ‘다이애나’에게 빠졌고, 어른이 되어서는 앤과 초록 지붕 집 어른들에게 매료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캐나다의 아름다운 동쪽 끝 섬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에서 탄생한 이 책은 고아 소녀 ‘앤’이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사랑은 영혼의 중력
앤은 태어난 지 백일이 채 안 되었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는다. 일가친척도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앤은 이집 저집 전전하다 고아원으로 가게 된다. 그 사이 앤의 두 발은 허공에 뜬다. ‘사랑은 영혼의 중력’이라는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영혼을 땅에 단단하게 붙들어 줄 사랑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앤은 자신을 끌어 당겨줄 존재를 간절히 바랐다. 앤에게 그 존재는 바로 집이자 가족이었다.
“전 한 번도 진짜 가정에서 살아 본 적이 없거든요. 진짜 집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다시 기분 좋은 통증이 밀려와요.”
《빨간 머리 앤》, 인디고, 40쪽
고아원에서 초록 지붕 집으로 가게 된 날, 앤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기대는 이내 물거품이 되었다. 초록 지붕 집에 사는 독신의 중년 남매 마릴라와 매슈는 농장 일을 거들 남자아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실수로 ‘잘못 온 아이’ 앤은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야 할 위기에 처했다. 마릴라 역시 저 아이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돌려보내자고 말한다.
작가 몽고메리도 앤과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두 살 무렵에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는 일을 하기 위해 도시로 떠났다. 결국 엄격하고 무뚝뚝한 외조부의 집에서 정서적인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란다. 어린 몽고메리를 버티게 한 힘은 다정한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몽고메리는 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다시 만날 날을 고대했다.
작가는 앤에게도 아버지와 같은 사람을 주었다. 앤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마릴라의 말에 오빠 매슈는 “우리가 앤에게 도움이 될 수는 있지.”라고 답한다. 매슈의 선의는 앤에게 중력과도 같았다. 허공에 뜬 채 날갯짓하느라 고단한 영혼은 드디어 땅에 내려앉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대는 아름다운 별 아래 태어나
늘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작가 몽고메리는 십대가 되어서야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새 가정을 이룬 상태였다. 새어머니는 몽고메리를 집안일 하는 아이처럼 부렸다. 도시에 살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학교조차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몽고메리는 결국 외조부의 집으로 돌아온다. 절망한 몽고메리를 위로한 것은 자연이었다. 《빨간 머리 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작품 속 배경인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의 아름다운 풍광인데 작가는 외로운 아이에게 자연이 주는 위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자연 묘사가 훌륭한 책에 늘 마음이 끌렸다. 책 속 황량한 들판이나 잔잔한 강,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나 깊고 고요한 숲은 나를 순식간에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빨간 머리 앤》의 반짝이는 호수나 새하얀 벚꽃길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서인지 그 풍경을 그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책은 추억의 겹 속에서 더욱 풍성하게 읽혔다.
아버지의 지방 순환 근무로 우리 가족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한 마을에서 약 5년간 살았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였으니 유년 시절의 한복판을 시골에서 보낸 셈이다. 여름에는 강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다슬기를 잡고, 겨울에는 논에서 썰매를 탔다. 우리 집은 회사의 사택이었는데 집 뒤로 넓은 마당이 있었고, 마당 뒤편으로는 이웃 아저씨네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다. 나와 동생은 아저씨의 허락하에 드넓은 포도밭을 마음껏 누볐다. 포도가 익는 계절이 오면 달콤한 향이 온 밭에 가득했다. 포도나무에는 철사 지지대가 있어 수확이 끝난 후에는 지지대를 그네처럼 타고 놀았다. 포도밭은 세상에서 가장 넓은 놀이터였다.
앞마당에는 아름드리 살구나무가 있었다. 여름이면 잘 익은 주황빛 살구가 땅으로 툭툭 떨어졌다. 동생과 나는 살구를 주워 흙만 털어내고 그냥 먹었다. 껍질이 새큼해서 썩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에는 맛이 없어도 뭐든 잘 먹었다. 여름밤에는 살구나무 아래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빠가 어느 날 냇가에서 크고 평평한 돌을 주워 왔다. 아빠는 그 돌 아래 불을 지펴서 삼겹살을 구웠다. 일명 돌구이였다. 상추와 깻잎은 뒷마당에서 따왔다.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하고 어린 나에게도 그 밤들은 꽤 낭만적이었다.
나의 정서의 바탕은 그 시절에 만들어졌다. 내 마음에 조금이라도 ‘풍요로움’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시절 덕분이다. 콘크리트가 아닌 흙을 밟으며 유년기를 보낸 것은 행운이었다. 자연은 제2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이나 커다란 살구나무를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나의 유년 시절에는 어머니의 너른 품이 하나 더 있었던 셈이다. 앤에게도 자연이 있었다. 호숫가나 벚꽃길을 거닐며 그토록 감탄한 것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어머니의 손길을 느꼈기 때문 아닐까. 웃을 일 없는 상황에서 앤을 웃게 한 자연은 어머니를 닮았다.
영혼과 불꽃, 이슬로 만들어진 아이
작가는 책의 시작과 끝을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구절로 장식한다. “그대는 아름다운 별 아래 태어나 영혼과 불꽃, 이슬로 만들어졌도다.” 이 구절은 제목 아래에 적힌 에피그래프(책의 첫머리에 쓴 노래나 시구절)다. 작가는 이 문장을 본문에서 한 번 더 인용한다. 앤의 성정을 설명하며 풍요로운 영혼과 불꽃 같은 정열, 이슬처럼 맑은 성격을 지닌 아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앤은 이름을 짓는 사람이었다. 꽃나무와 호수의 이름을 짓고 심지어 자기 이름에도 철자 하나를 덧붙였다. 이름을 짓는 행위는 일종의 창조다. 이름을 붙임으로써 관계가 시작되고 의미가 생겨나고 없던 세상이 있게 된다. 초록 지붕 집에 오기 전까지 앤은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기회가 없었다. 대신 제럴딘이나 코딜리어라는 이름을 자신에게 지어주며 유리에 비치는 자신과 놀았다. 매슈와 처음 초록 지붕 집으로 오는 길에 만난 가로수길은 ‘기쁨의 하얀 길’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렀다. 이름을 붙이는 능동적인 관계 맺기는 외로운 아이의 생존 방식이었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우리는 누구도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다. 단지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앤은 세상에 던져진 것으로 모자라 심지어 고아였지만,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만들어 나갔다. 작가 몽고메리는 책의 주요 독자층이 십 대 소녀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연령에 관계없이 사랑을 받았다. 심지어 군인까지도 위안을 받았다며 작가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앤을 가리켜 불멸의 엘리스 이후 소설 속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말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앤을 사랑하는 이유는 삶을 향해 먼저 손을 내미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쉴 새 없이 재잘대던 앤도 십 대가 되며 조용히 꿈을 위해 골몰하게 된다. 열심히 공부한 앤은 고등 교육기관 퀸스 아카데미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대학 입학 자격과 장학금까지 얻는다. 하지만 아버지 같은 매슈가 불의의 사건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마릴라마저 몸이 쇠약해지자 앤은 대학을 포기하기로 마음먹는다. 마릴라는 앤을 만류하지만 앤은 끝내 마릴라를 설득한다.
꿈과 맞바꿀 정도로 앤에게 마릴라는 소중한 가족이었다. 혈육은 아니지만 어느덧 서로를 의지하게 된 두 사람이었다. 가족이란 어쩌면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서로를 알아가며 수용하는 법을, 때로는 기대고 때로는 품을 내어주며 중력을 주고받는 법을 배워가는 관계다. 가족 간에 아무런 인력이 작용하지 않을 때 ‘가족’이라는 이름은 모래성처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퀸스에서 돌아와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밤 이후로 앤의 꿈은 작아졌다. 하지만 앤은 발 앞에 놓인 길이 아무리 좁다 해도 그 길을 따라 잔잔한 행복의 꽃이 피어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었다!”
《빨간 머리 앤》, 인디고, 526쪽
초록 지붕 집에 오던 첫날부터 모퉁이를 만난 앤은 모퉁이 너머를 멀리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이야기는 앤이 자기 자리를 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인생은 모퉁이 길의 연속이지만, 어떤 길에서도 꽃을 보는 눈을 가진 앤은 어디든 자기 자리로 삼을 수 있었다. 외로웠던 아이 앤이 선택한 자리는 외로운 마릴라를 당겨줄 수 있는 자리였다. 오랜 시간 자신을 끌어 당겨준 초록 지붕 집을 이제는 앤이 끌어당기는 것이다. 어쩌면 선의라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스스로 자기 자리를 정하는 행위이다.
작가 역시 중력을 힘입어 잘 자랐다. 가장 행복하던 시절에 쓴 《빨간 머리 앤》은 힘든 시기를 통과한 자신에게 보내는 찬사이자 모든 외로운 아이를 향한 응원이다. 어쩌면 나는 외로울 때마다 이 책을 펼쳤는지도 모른다. 책장을 덮을 때는 세상을 향해 먼저 손 내밀 용기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은 역시 내 인생의 소중한 벗이다.
* 글쓴이 - 허진
아동청소년문학 번역가. 어린 시절 만난 동화들이 여전히 마음속 등대에서 불빛을 반짝인다. 어른의 눈으로 그 불빛을 새롭게 바라보는 글을 쓰고 있다. 《에비와 동물 친구들》, 《바다 도시의 아이들》, 《윙크》 외 다수의 책을 옮겼고, 동화집 《사전에는 없는 마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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