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마다 공항에 수많은 인파가 출국을 앞두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조 여사는 ‘세상 참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여행의 설렘과 공항의 번잡스러움, 긴 대기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묻어져 있는데, 어쩐지 조 여사의 눈에는 늘 발그레한 설렘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세상 속에서 연휴나 명절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좋은 세상’이 도래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이 좋아진지는 한참이 지났지만 그녀의 세상은 여전히 그러했다.
나와 조 여사는 꽤나 가까운 모녀지간으로, 자연스럽게 여행메이트가 되었다. 그녀와의 첫 여행을 결심한 마음은 상당히 심플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우여곡절 끝에 처음 받게 된 월급을 여행에 쓰기로 결정했다. 특별히 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 번 돈을 ‘여행’에 소비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에 함께 여행을 갈 친구가 없었다. 취업 준비와 각종 시험을 앞둔 친구들을 꼬셔서 여행에 동참시킬만한 넉살은 없었고 혼자 선뜻 여행을 떠날 용기는 더더욱 없었기에 가까이에 있는 조 여사는 최적의 동행자였다. 그렇게 우리는 큰 고민없이 은근슬쩍 여행파트너가 되었고 이후로도 몇 번의 여행을 함께 했다.
가까이에서 본 엄마의 여행준비는 굉장히 요란스러웠다. 이 부산함과 요란스러움이란, 보통 사람들이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들뜨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녀의 여행은 "이번 휴가 때 어디 갈까"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부터 시작된다.
사실 굳이 몇 달 전부터 미리 표를 끊어두는 이유는 저렴한 비행기 표뿐만 아니라 넉넉한 준비 기간까지 함께 사기 위함이다. 하지만 무엇을 챙겨야 할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면세점에서는 무얼 살지, 어떤 옷을 입을지, 비상약은 어디까지 챙겨야 할지, 조 여사의 여행은 언제나 그 몇 달 전부터 이륙 직전상태이다.
필요한 물건들과 아껴두었던 옷 몇 벌, 편한 신발 몇 켤레, 평소에는 좀처럼 하지 않는 악세서리까지 챙긴 다음에는 지나간 기억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여행에 대한 아주 소소한, 이른바 TMI를 주섬주섬 풀어놓기 시작한다. 마지막 여행이 몇 년 전이었는지, 신혼여행지는 어디였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행을 갈 때마다 어떤 물건을 꼭 사는지, 지난 투어의 가이드 인물이 어땠는지. 심지어는 묵었던 호텔의 조식메뉴에 대한 평과 80년대 후반의 해외여행 자유화 당시 문화충격을 받았던 본인의 심경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다.
지극히 사소하여 그녀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이야기들, 심지어는 어딘가 모르게 약간의 과장이 섞인 듯한 이야기들. 조 여사는 여행에 대한 그 대강의 기억들을 고장난 정수기처럼 쉴새없이 쏟아내며 여행을 맞을 준비를 한다.
나는 조 여사의 부산한 여행준비를 그저 보고 들었다. 그제야 그녀에게 늘 입는 무채색 티셔츠가 아닌 화려한 원피스가 있었음을, 한식보다는 양식을, 휴양지보다는 유적지를 선호하며 사실은 악세서리를 무척 좋아하지만 집안일의 치다꺼리에 무심한 듯 살았음을 눈치챘다. 엄마에게도 취향이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것이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나 경향을 ‘취향’이라고 한다면, 그녀의 취향은 언제나 ‘가족’이었다. 가족들이 좋아하는대로 하는 것이 그녀의 취향인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엄마 만의 오롯한 취향이 있음을 목격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의 무심함에 대한 충격인 셈이다.
모를 때는 모른 채로 지나갔지만, 알게 된 이상 모른 척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빵빵해진 조 여사의 기대감과 설렘을 차마 터뜨릴 수는 없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며 여행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녀와 나의 취향이 적절히 버무려진 여행이 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어떤 때에는 그렇게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 귀찮아 차라리 집에서 쉬는 게 낫겠다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럴 때에는 그녀의 취향 쪽으로 좀 더 방향을 잡았다. 요란한 여행전야가 아니었더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방향이다. 그렇게 그녀는 여행을 앞둔 두어달 정도를 발이 땅으로부터 대략 5cm는 떠있는 채로 지내다 공항버스 짐 칸에 캐리어를 실었다.
<나는 삼시세끼를 전부 피자로 먹을 수 있다>
조 여사와 나의 첫 여행지는 이탈리아였다. 장을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영화 <맘마미아>의 주제곡을 우연히 듣게 되었고, 영화의 스토리를 반만 기억해낸 나는 그 배경이 이탈리아인 줄로 알았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풍경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며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우리의 첫 여행지는 이탈리아가 되었다.
이탈리아는 훌륭한 식탁이었다.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입맛이 둔한 나와 미식가이지만 까다로운 조 여사의 유일한 공통점은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평소에도 먹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고 맛집을 찾아가는 수고로움은 기꺼이 감수하는 편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햇빛을 잘 받은 신선한 식재료들로 만든 음식과 대체로 짭짤한 간, 이국적인 풍경은 매번 너무도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이탈리아 요리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낯설음이 적다는 점 또한 여행을 수월하게 만드는 데에 한 몫을 했다.
출국하는 비행기에서의 기내식을 시작으로 돌아오는 인천공항에서의 순두부찌개까지, 우리를 스쳐갔던 그 많은 음식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피자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피자 한 판을 몇 명이서 나누어 먹는게 익숙했는데, 이탈리아의 식당에서는 한 명이 한 판을 먹고 있었다. 그 곳에서의 식사 중 유일하게 낯선 광경이었다. 모두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각자 한 판씩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소위 바가지를 쓴 관광객들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길에서 본 대부분의 식당에서 한 명 앞에 오롯하게 한 판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차츰 의심을 거뒀다. 그리고는 여행지에 왔으면 현지사람처럼 경험해봐야한다는 조 여사의 지론에 따라 우리 또한 1인 1판에 도전했다.
결과는 수월했다. 얇은 도우에 메인이 되는 토핑 몇 가지와 질 좋은 치즈를 올려 화덕에 구워내다보니 많이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한국에서 익숙하게 먹었던 토핑이 많은 묵직한 피자와는 달랐다. 그래서인지 정말 혼자서 거의 한 판을 먹고 연신 맛있다고 이야기했다. 조 여사는 ‘나누어 먹었더라면 내가 더 많이 먹었을까봐 아쉬웠겠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그녀는 현지인스럽게 식사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상당히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2주가 넘는 긴 여행동안 매일 피자 한판을 거뜬히 먹는 것은 무리였다. 핸드폰 번역기와 사진 검색으로 매번 다른 종류의 피자를 주문했지만 슬슬 질려갔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을 때, 여행을 하며 점심과 저녁을 먹을 때, 온통 피자였다. 중간마다 파스타나 스테이크, 다른 음식들을 먹기도 했지만 피자만큼 자주 먹은 음식은 없었다. 나는 밤마다 한국에서 챙겨온 컵라면과 컵밥을 꺼내기 시작했고 얼큰한 국물을 먹고 나서야 하루가 마무리되었다고 느꼈다. 빨간 맛 없이 살 수 없었던 나의 입맛과는 다르게 조 여사는 꾸준히 피자 한 판을 먹었다. 피자의 종류가 다양한만큼 먹고 나서의 평도 다양했다.
여행의 후반부에 다다랐을 때, 조 여사에게 피자가 질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의 나는 점점 여행에 싫증을 느끼던 차였고 이국적이었던 이탈리아의 풍경도 어느새 익숙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그녀는 “나는 삼시세끼를 전부 피자로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여행의 피로가 쌓였던 나는 ‘평소에는 피자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왜 매일 찾는거냐‘며 툴툴거렸고, 그녀는 ’내가 먹고 싶은 때에, 귀찮게 직접 요리하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어도 되니 좋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 이후로 여행을 마칠 때까지 나는 그녀에게 피자가 질리지 않았는지 다시는 묻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조 여사는 어쩌면 피자가 맛있어서 좋았던 것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탈리아의 피자는 분명히 맛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약 베트남에 갔었더라면 삼시세끼를 쌀국수만 먹을 수 있다고 했을 것이다. 일본에 갔었더라면 삼시세끼를 스시만 먹을 수 있다고 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삼시세끼란 때 맞춰 차려내어야 했던 애정이었다. 애정이라는 것이 정해진 시간에 딱 맞게 배달되는 택배같은 게 아니건만, 그녀는 평생 정해놓은 알람 시계에 맞추어 삼시세끼 정성껏 애정을 차려놓았다. 가리는 음식이 없고 입맛이 둔한 누군가들은 그 애정을 매일 의심없이 먹었다. 그리고 애정은 대체로 일방향이었다.
삼시세끼 피자를 먹을 수도 있겠다는 말은 누군가의 취향을 하루 세 번 혹은 그 이상 맞추지 않고 그저 나에게만 집중하니 좋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몇 번의 여행과 크고 작은 일들을 겪은, 후 미식가인 조 여사는 스스로에게 오롯한 애정을 쏟는 삼시세끼를 꾸리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녀의 식탁은 어떤 날에는 푸짐하고 또 어떤 날에는 단촐하거나 다소 의아한 조합이지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녀 자신이 원하는대로 스스로에게 차려내는 애정일테니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미정산의 여행>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유일하게 심각해지는 순간은 다름 아닌 경비를 계산하고 예산을 세울 때이다. 미리 예약을 할 수 있는 항공권과 숙박비는 차치하더라도, 아직 가지 않은 여행지에서의 지출까지 감안에 예산을 세우는 일은 너무 복잡하게만 느껴진다. 그렇다보니 신용카드로 대부분의 경비를 결제하고 이후에 차차 카드대금을 내는 식의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는 조 여사와의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와 나의 여행은 ‘효도여행’ 타입이 아니다. 한사코 자식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거부하는 조 여사와, 그녀의 몫까지 부담을 질 만큼의 경제력을 갖추지 않은 딸의 조합은 언뜻 실용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치페이를 가장한 이 정산 방식은 사실 공평하지 않다. 바로 여행자로서의 마음가짐이 계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술적으로는 얼추 공평한 여행일 것이다. 주로 항공권은 내가 지불하고 숙박비는 그녀가 지불한다. 그리고 여행지에 가서 사용할 경비는 각자 어느 정도 환전을 한다. 이외에 미리 예약해두는 통신료나 입장료 등은 때에 따라 아무나, 번갈아 지불한다. 따지고 보면 거의 비슷한 비용을 부담하고 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든 여행마다 나에게 ‘데리고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돈을 너무 많이 쓴 것 아니냐며 내 지갑 사정을 걱정하고는 용돈을 건네기도 한다. 여행지에서의 경로와 동선을 확인하고 예약할 것들을 챙긴 것 이외에 내가 조 여사보다 더 준비한 것은 딱히 없다. 물론 일정 확인과 예약이 수고로운 일임은 맞으나 여행에 가기로 마음 먹은 이상 누구나 해야하는 부분이다. 심지어 그녀는 여행지가 결정된 그 날 저녁부터 매일 관련 블로그와 여행 정보들을 정독하고 손글씨로 노트 한권을 가득 메모하니,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여행자에게 필요한 기대와 설렘, 낭만이라는 덕목은 조 여사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준비한게 확실하다. 그녀는 모든 것에 감탄했고 쉽게 감동했으며 깊이 빠져들었다. 여행 중 마주하는 크고 작은 것들에 온 마음을 내주고 그 시간들을 살뜰히 챙겼다. 첫 월급을 쥔 내가 그토록 꿈꾸던 여행을 소비할 줄 아는 어른 그 자체였다. 나는 그런 엄마의 낭만과 감동에 슬쩍 올라 타, 평소의 나보다 좀 더 들뜬 상태로 여행을 즐긴다. 옆에서 매 순간을 즐길 줄 아는 그녀가 없었더라면 내 여행은 다소 건조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데리고 와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무척 쑥스럽고 민망하다. 오히려 그녀 덕분에 나의 여행이 조금은 촉촉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은 누군가가 먼저 여행을 가자고 하거나 티켓을 내밀기 전에는 선뜻 길을 나설 수 없었던 조 여사의 인생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늘 새로운 것들을 기대하지만 지나간 것들을 곱씹는 것이 더 익숙했던 인생이기에, 좋은 세상이 온지가 한참인줄도 몰랐던 그녀가 애틋해진다.
몇 번의 여행 후, 엄마의 세상은 그토록 본인이 꿈꾸던 ‘좋은 세상’ 쪽으로 조금씩 편입되어가고 있다. ‘가고 싶다’고 말하는 여행지보다 ‘가봤다’고 말하는 여행지가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러하다. 조만간 가게 될 그 여행에서도 조 여사의 여행 메이트는 나일 것이다.
* 글쓴이 - 세모 (인스타그램 @ru5k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