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학기가 시작되었다. 올해 초부터 두 아이를 대안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다. 한참 놀고, 배움의 열망이 터져 나오는 어린 시절을 어떻게 지내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특별한 이슈나 문제가 있어서 학교를 옳긴 건 아니었다. 여느 부모들처럼 자식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살다 보니, 공교육이 아닌 다른 선택지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밖에 없는 어린 시절을 기쁨 충만하게 경험해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야 후회나 미련이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선택을 두고 우리는 늘 무엇이 더 낫다, 옳다, 바르다는 식의 가치 판단이 앞선다. 그러다 보면 정작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고 싶다는 본래 마음은 식어가고 현실을 계산하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이후 어떤 결정을 해 놓고도, 우리는 마음을 졸이며 그 결정이 맞았나? 하고 다시 마음을 요리조리 살피는 일을 하고 만다. 나 역시도 그랬다. 소도시에서 작은 학교를 보내다가, 대안학교를 찾아왔으면서도 이 결정에 대해서 수시로 뒤집어 보며 새로워진 나의 환경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맞다, 틀리다의 관점으로 따지고 바라보았다.
엄마의 이런 복잡한 마음도 모르고 막상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본래 여기서 자라난 아이들처럼 적응을 마치고 즐거이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여름 내내 실컷 놀다가 개학 날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은 앞으로 배우게 될 공부에 대해 기대감에 부풀어 조잘조잘 이야기하기 바빴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이사를 감행하면서까지 큰 결정을 해 놓고도, 나는 남들이 아닌 조금 다른 길을 간다는 두려움이 남아 있었나 보다. 그 두려운 마음에 정작 내가 나 자신이 한 결정을 믿어주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조금 바꿔 보기로 했다. 무엇이 더 맞다, 틀리다가 아닌 그저 나는 이런 선택을 했다고 말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나 자신만큼은 온전히 나를 믿어주고, 이해해 주고, 지지해 줘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실제로 새로운 결정을 하고 이사를 오고 난 이후, 여러모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편안하고 잔잔한 일상이 내게 주어진 것이 어색한 나머지 어떤 나의 오래된 습관처럼, 의문과 의심을 던지고, 이래도 되나 하고 마음에 자꾸 균열을 낸다.
아이들은 부모가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하면 큰 탈 없이 안정감을 가지고 어느 학교에 있건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고 믿는다. 그러니 내가 내린 결정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에 이런 선택을 했을 뿐이다. 살면서 내가 믿고 있던 가치와 바람들은 내 안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늘 요동치며 우선순위의 재배치가 이뤄지기도 할 테다. 그럴 때마다 이미 산속에 있으면서, 이 산을 오르는 것이 맞는지 묻기보단, 날이 새기 전에 일단 한번 올라가 보는 것이다. 만약, 이 길이 아니었다면 다시 내려오면 되는 일 아닌가?
어쩌면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틀리고 싶지 않은 마음,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 불안한 마음이 기습해 올 것이다. 과도한 시험과 경쟁이 없는 학교를 찾아왔으면서도 나는 내 인생을 시험지 풀듯 긴장하고 있을 때가 있다. 아이들이 보다 자유롭고 자신만의 고유한 속도와 발걸음대로 삶을 살아가길 원하면서 나는 주변을 기웃거리며 정답 같은 삶을 쫓으려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나는 그저 아이들을 믿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샘솟는 열정과 무한한 가능성, 호기심 넘쳐 반짝이는 눈망울,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생명력을 만끽하며 이 시절을 살아내야 한다.
물론,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안주하지 않고, 늘 깨어 있을 필요가 있다. 내가 지나온 삶의 궤적을 그렸던 순간은 바로 이런 자각에서 일어난 변화였다. 한 번 사는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용기 내어 마주하게 될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주어진 길을 가는 것도 좋지만, 마음에 어떤 울림이 있을 때, 계산하지 않고,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그 마음 길을 따라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지금 아니면 안 되는 때가 있다. 어떤 선택이든 우리가 결코 인생이라는 거대한 레일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