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은 5~10%라고 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내게 의사와 간호사는 별 일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설 연휴 동안 잘 먹고 잘 쉬다 2주뒤에 결과를 들으러 오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20대 부터 수술을 여러번 거쳐온 나에게 아플 수도 있다는 말은 여러번 들어도 익숙해 지지 않는 문장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10명 중에 1명이 내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였다. 과중한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작년 아빠를 암으로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경험이 있어 항암 치료 과정이 쉽지 않음을 피부로 느껴서 알고 있다. 나도 모르게 힘없이 아픈 사람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갑자기 환자가 된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휴대폰을 쥐고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정보를 파내려 갈수록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어났다. 그 결과는 최악의 상상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번 경험한 적이 있어 그만해야 한다는 점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연관 검색어를 하나씩 누르고 있었다. 20분이 지났을까, 우연히 들어간 블로그에 적힌 글을 읽고선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내용 안에는 어차피 병에 대해 검색하며 걱정 한다고 해서 갑자기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몸에 더 해로울테니 결과가 나오는 날 까지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 같이 기절한 것 처럼 머리를 텅 비우고 살다가 결과를 들으러 가라는 내용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긴 연휴를 걱정만 하며 보내기엔 다가올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다. 어떤 활동이든 대체할 무언가 필요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시도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넷플릭스를 열어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중증외상센터라는 드라마가 눈에 들어왔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긴박하고 속도감 높이 흘러가는 드라마를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화면 속에 빨려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다음날은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치즈 라자냐가 눈앞에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묵직한 무언가가 점점 커져버렸다. 대화에 집중하기 어려워 지자 차라리 친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낫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고, 나의 상황을 그대로 오픈했다. 친구는 놀람 보다는 요즘 몸에 혹 하나 둘 쯤은 누구나 달고 살고 있고, 주변에 실제로 아팠던 이들도 꽤 있는데 금방 치료하고 잘 살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아무렇지 않은 반응에 나도 괜찮아 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밤이 되자 우울과 미묘함이 뒤섞인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감정을 따라가다 나도 모르게 ‘이러면 안돼’라는 생각이 올라왔고, 그 순간을 끊어야 했다. 전자책을 뒤지다 ‘H마트에서 울다’ 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책 속에는 이십대 중반에 암으로 엄마를 하늘로 떠나보낸 이가 간호하던 일련의 과정과, 엄마를 잃은 후 추억하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책에 표현되는 감정을 오롯이 느끼며 눈물 콧물을 흘리다 보니 어느 새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잊었던 기억들이 함께 떠올랐다. 아빠는 아팠지만, 그 과정이 온전히 아픔과 힘듦으로만 채워 졌던 것이 아니었다. 식구들과 외식을 했고, 함께 운동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꼈고, 즐거운 영화를 보며 깔깔깔 함께 웃기도 했다. 아빠가 지금 나의 모습을 보면 어떤 말을 해줄까? 네 옆에는 지켜줄 이들이 있다는 말을 해줄 것 같았다. 그렇게 걱정을 내려놓고 편히 잠들었다.
긴 연휴가 지나고 회사에 출근했다. 눈앞에 놓인 일을 시작하자 병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결과를 들으러 갈 날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다시 쿵쾅대기 시작했다. ‘결과가 안좋으면 무엇부터 하지? 당장 내가 하고싶은 일들, 세워 놓은 계획들은 어떻게 하지?’ 어쩌지도 못하는 순간엔 문서 창을 열어 당장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냥 적어 내려갔다. 10분 정도 지난 후엔 이 불안이 언젠가 끝날 것임을 알고 있다라며 마침표를 찍었다. 일부러 좋아하는 뜨끈한 새우 완탕면을 먹으러 회사 근처 식당으로 갔다. 하지만 수시로 떠오르는 걱정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다. 일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검색창을 열고, 후다닥 끄기도 했다. 꼭 마무리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집중력이 훅 떨어졌고, 나도 모르게 몸이 꼬여갔다.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으려 나에게 주문을 걸기 시작했다. 해야할 일을 순서대로 주르륵 쓰고 하나씩 지워가며 ‘자, 이것 딱 하나만 하면 물을 먹고 바람도 잠깐 쐴거야’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3~40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일부러 건물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차가운 공기를 깊숙이 들이 마시며 온몸에 스며드는 순간을 느끼며 안정감을 겨우 끌어냈다. 퇴근 시간까지 수시로 시계를 바라봤다. 때로는 ‘아프면 뭐 어때? 다들 잘 살아갈텐데, 당장 뭔가 망하는 일은 없을거야’라고 혼자 되뇌였다. 그렇게 금요일 퇴근 시간까지 요동치는 마음을 꾸역꾸역 붙잡으며 버텨 냈다.
드디어 결과를 듣는 토요일이 왔다. 그날은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해 진료실로 들어 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진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의사 선생님은 환한 목소리로, “걱정 많으셨죠? 아무 이상 없습니다. 안심하고 정기검진만 받으면 됩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 순간 온몸에 꽉 차 있던 덩어리가 쑥 내려간 기분이 들었다. 병원문을 나서며 작은 기념이라도 하고 싶어 엄마 손을 이끌고 카페로 갔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치즈 케이크를 입에 물었다. 그제서야 달달한 케익과 함께, 쌓였던 마음이 점점 녹아내렸다.
지난 2주의 경험은 사실 나에게 처음 겪는 순간이 아니었다. 이십대 초반, 암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안개 속을 마냥 헤매며 울고 걱정하기만 했다. 사실 이번에도 쉽지는 않았다. 시선을 돌릴 무언가 찾기도 하고, 안괜찮아도 괜찮을 때를 상상해 보기도 했지만, 불안은 늘 따라왔다. 하지만 이번엔 그때와 달라진 몇 가지가 생긴 것 같다. 걱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 보기도 하고, 무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며 보이지 않는 앞을 한 발자국씩 걸어가 보았다.
앞으로 살아가다 보면 또 다시 어느 순간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을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분명 걱정, 불안, 두려움은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고민만 끌어안은 채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냥 그 순간을 천천히 나아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