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지나고 모든 것이 좋아졌다. 아기가 뛰어놀고, 나도 아이와 함께 꺄르르 웃는 시간이 늘었다. 잠을 못 자던 지난 몇 달이 고작 한두 달 지났다고 꿈처럼 아득하다. 다양한 곳에서 쑤시던 몸도 잠을 잘 자게 되면서 많이 가벼워졌다.
먹고 싶었던 맥주도 모유수유를 중단한 뒤부터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실제로 내가 마신 건 남편이 맥주 체험하러 가서 만들어온 수제 맥주 반 잔이 전부이지만, 그처럼 달콤한 맥주는 아마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맛이 좋았다. 만 2년 만에 마음 편히 마신 맥주는 그 반 잔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아기는 만 한 살이 되자 이유식은 더 이상 먹지 않고, 유아식이라는 어른 밥의 순하고 부드러운 버전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침마다 ‘맘마 맘마’를 외치는 아기를 위해 밥을 하고, 부드럽고 고소한 야채 퓨레를 만들고, 생선을 찐다. 고단하게만 느껴졌던 이 상황들이 이제는 기쁨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더 많다.
처음 먹어보는 새우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구와구 먹고, 양파와 마늘을 가득 넣어 삶아준 닭다리를 작은 손에 넘치게 들고 뜯어먹는 모습을 볼 때면 내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갈 때보다 행복하고 배가 부르다.
어른들 말은 하나 틀린 게 없다고, 자식 입에 들어가는 음식만 봐도 배가 부르다던 그 말이 지독하게도 통상적으로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정말로 따뜻하고 진한 진실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귀여운 아들을 보다 보면 다음 끼니엔 무엇을 해줄지 머릿속이 온통 아기 맘마로 가득 차버리고 만다.
나의 입에서 종달새처럼 ‘사랑해’란 말이 흘러나오는 시간들. 이 순간들은 아마도 아기가 나의 곁에서 강아지처럼 맴돌며 안기는 생후 몇 년이라는 짧은 날들에만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아기와 단 둘이 쇼핑도 하고, 밤새 뒤척이지 않고 함께 깊은 잠을 자고, 엄마가 먹는 간식을 아기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의 생후 1년이 정신없고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내 생애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꼽으라면 아기가 우리에게 찾아온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매순간을 1초도 빠짐없이 잡아두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지워지지 않는 목주름과 팔자 주름, 푸석해진 머리칼이 못생긴 훈장처럼 남았지만 어찌 보면 이것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겪는 생애의 루틴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생물이자 동물로서 인간이란 존재를 겪어보는 데에는 아이를 길러보는 것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조금 더 자연과 동물의 일부로서 나를 바라보게 되면서 세상에 대한 겸손함을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새로운 고난의 순간들이 찾아오겠지만, 아마도 지금의 이 마음은 어느 미래에도 나의 일부로 남게 될 테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 길에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이 아이처럼 나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배우고, 또 사랑의 품을 키워가고 있다. 아기의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지내는 이 새롭고도 놀라운, 정신없는 순간들에 잠시 멈춰 아무래도 오늘은 더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