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트 프레스 머신에 20킬로짜리 원판을 끼우고 손잡이를 힘껏 밀었다. 그때 옆 기구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말했다.
"어유, 그걸 어떻게 밀어. 대단하네."
나는 쑥스러워서, "제가 운동을 좀 꾸준히 해서요"라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나도 운동 오래했어."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네~" 하고 웃어 보이며 하던 운동을 계속했다.
자리를 옮겨 시티드 로우 머신에 앉아있는데 그 할머니가 다시 다가왔다.
"실례지만 몇 학년 몇 반이에요?"
"아... 저 마흔하나예요."
"아, 그래요? 운동을 너무 잘해서."
나 운동 잘한다고 자랑하는 거 아니다. 내가 뭐 선수도 아니고 절대 특별히 잘하지 않는다. 남편이랑 같이 헬스장 오면 남편은 나더러 맨날 대충한다고 자세 틀렸다고 뭐라 한다.
내가 놀라웠던 건 팔십 가까워 보이는 백발의 할머니가 자신과 나를 견주었다는 사실이다. 그게 흥미로웠다. 팔십 가까운 노인이 사십대인 나와 자신의 운동 능력을 비교했다. 그 할머니는 목표가 엄청나게 높은 것이다.
대학교 때 우리 과 얼짱이 생각났다. 그 애는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애들이 한 트럭쯤은 쫓아다녔다고 한다. 그럴 만한 얼굴이었다. 우리 과 모든 남자애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니까. 연예인 제의도 받은 적이 있었고, 모르는 남자가 그 애에게 연락처 물어보는 걸 내가 목격한 적도 몇 번 있다.
그런데 한편 그 애와 대비되는, 학과 성적도 좋고 성격도 좋지만 키가 작고 뚱뚱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그 애와 나는 셋이 꽤 친한 사이였다. 그 친구는 어느 날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그때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 애가 그 친구를 응원하며 얼만큼 살을 빼고 싶은지 어느 정도로 예뻐지고 싶은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 친구가 말했다.
"너만큼 예뻐지면 좋지." '너만큼' 예뻐지고 싶다고.
그 말을 들은 그 애는 그 친구가 자신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인 것 같았다. 내게 그 얘기를 하며 차마 가소롭다는 말은 못 하고 이렇게만 말했다.
"걔가 나만큼 예뻐지고 싶대."
그 말을 하면서 입술을 살짝 떨었다. 나는 속으로 평소 목소리도 작고 수줍음 많던 그 친구를 떠올리며 '와, 대단하네.' 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자신감 없어 보이던 그 친구를 달리 보게 되었다.
졸업한 뒤 몇 년이 지나 그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살이 엄청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애만큼은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예뻐진 모습이었다. 내가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하자, 그 친구는 자신이 운동에 얼마나 돈을 썼으며 어떤 어떤 운동을 했는지, 식사는 어떻게 했는지를 소상히 얘기해 주었다.
돈키호테였는데... 거의 꿈을 이뤘네? 말도 안 되는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그 친구는 목표에 어느 정도 가까이 간 것이다. 돈키호테는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이다. 기사 소설에 빠져 자신을 기사라 칭하고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여 싸우는, 비현실적인 꿈을 쫓는 인물이다.
나는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어제는 중1 아이들과 『돈키호테』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꿈을 쫓는 돈키호테는 미친 사람일까, 멋진 사람일까? 라고 묻자, 아이들이 말했다.
"둘 다요."
"미침과 멋짐의 중간쯤이요."
그러더니 한 아이가 옆 친구를 가리키며, "얘가 돈키호테예요"라고 했다. 지목된 아이는 이정후, 구창모 선수를 좋아하는, 야구선수가 꿈인 아이였다. 지목된 아이가 말했다.
"야, 니가 전학 가서 아직 몰라서 그러는데~ 이제 나 학교에서 야구 제일 잘해."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현실을 모르는 정신 나간 캐릭터로 그렸음에도 사람들은 돈키호테에게 매력을 느낀다. 허황돼 보이는 꿈을 향해 달려드는 힘, 그게 우습기도 하고 또 멋있기도 하니까. 다만 나는, 그 뒤로 체스트 프레스 머신의 손잡이를 밀 때마다 그 할머니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돈키호테다. 그 할머니만큼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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