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즘 이상해.”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 요즘 이상해.”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몇 달 전 지방 도시로 이사 간 친구였다. 그렇게 멀리 이사를 간 까닭은 남편 직장 때문이었지만, 보다 여유롭게 살고 싶은 바람도 컸다. 교통체증 없는 도로와 널찍한 주차장, 공원의 한적함이 좋다고 했다. 평생교육원에서 베이킹, 인문학 수업도 찾아 듣고 베드민턴 클럽에 가입해서 친구도 생긴 듯했다.
그래서 잘 지내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친구는 요즘 자주 눈물이 난다고 했다. 식사도 거를 정도로 입맛도 기운도 없다 했다. “근데 난 힘든 일이 없는데, 이상해.” 친구는 소소하게 실망스러운 순간이 있었지만, 다 별게 아니라 했다. 마트에서 좋아하던 브랜드의 잼을 찾을 수 없을 때, 동네에 요가원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도시의 대형 카페가 그리울 때 좀 속상했다고 했다. 그런 실망과 상실감이 조금씩 쌓였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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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울적해지는 일의 대부분은 이다지도 사소한 것이어서, 그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중요한 시험에 낙방했다거나 연인과 이별했다거나 사고를 당한 것과 같은 큰 사건처럼 이유가 명확할 때는 내가 힘들어하는 것이 정당해 보인다. 하지만 소소한 갈등이나 손해, 실망이나 외로움 같은 경우 스스로 버겁다고 인정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뒤엉킨 일정, 은근한 압박, 무심한 말투 이 모든 것이 마음을 소진시킨다. “별일 아닌데”, “이것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누구나 이 정도는 겪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은 더욱 작아지고 만다.
아이들이 어릴 때, 밤마다 식탁 모퉁이에 앉아 짧은 일기를 적곤 했다. 대부분 그날의 사건이나 다음 날 계획에 대한 글이었는데, 한동안은 ‘우울하다’, ‘아이들에게 살갑게 대하기 어렵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다거나 가족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다지도 울적한지, 당황스러웠다.
힘들다는 글을 적기 시작한 시점은 남편의 장기 출장과 겹쳐 있었다. 저녁마다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면서 생긴 스트레스였다. 퇴근해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고, 집에 돌아와 정신없이 저녁을 먹이고 그릇을 치울 때쯤엔 진이 빠져 있었다. 하원 길의 교통체증, 아이들을 서둘러 재워야 한다는 압박감,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까지. ‘이 정도는 누구나 하는 일’이라며 별일 아닌 것처럼 넘겼던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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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소소한 스트레스야말로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우리 뇌는 겉으로 잘 드러나는 충격적인 경험과 소소한 경험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둘 다 ‘통제할 수 없는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편도체는 활성화된다.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것처럼 마음 역시 균형을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는데, 이러한 출렁임이 올 때마다 마음은 몸 어딘가에 있는 에너지를 써서 균형을 맞춘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조금씩 축이 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일상에서 만나는 이러한 스트레스는 큰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심리적 건강에 더 나쁜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있다. 큰 사건보다 순간적으로 영향을 주는 강도는 적지만, 훨씬 자주 발생하고 계속 누적되면서 오랜 빗물에 바위가 패이듯 우리를 침식시킬 수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편도체는 과활성화되고, 작은 어려움도 큰 위협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별일 아닌 일’에 울음이 터지거나 화가 솟구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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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마음에는 어디엔가 분명 이유가 있다. 눈에 드러난 요철이 아니더라도 도로에 깔린 자갈이 타이어에 흠집을 내고 있었을 것이다. 슬픈 마음은 슬퍼해야 한다. ‘고작 이런 걸로’와 같은 말도 접어두면 좋겠다. ‘그럴 만했다’고, 균형을 잡느라 애썼다고 내 몸에 사인을 보내주면 좋겠다.
잠시 멈추고, 길고 깊은 호흡을 해보자. 뇌에 ‘나는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운동이다. 그리고 내 몸과 마음이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해두면 좋다. 평소에 드문드문 이어왔던 운동이나 산책,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 일기 쓰기와 같은 루틴은 모두 스트레스 강도를 약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
지방으로 이사 간 친구는 애매한 곤란이 어떨 때는 더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연말에 혼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한 번의 여행이 많은 것을 바꿔주진 못한다. 하지만 여행 체력을 위해 오래 동안 쉬었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일상에 조금 숨구멍이 생겼다. 기대감이 조금씩 싹트면서 오래 멈춰 있던 마음도 흐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실망과 불편은 그대로지만, 그 마음이 있음을 알아주고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영문 모를 눈물을 마주할 일은 줄어든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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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Istock
*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공부가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감정 글쓰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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