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나는 어느 날 삼성과 애플의 특허 분쟁 기사를 보고,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지금까지 IP 변호사라는 한 길만 바라보고 달려온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대기업 IP법무팀에서 미국과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특허 소송과 분쟁을 다루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과였던 나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기술 관련 법률을 다룰 수 있다는 생각에 공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입학하고 보니,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도, 변호사를 꿈꾸는 선배도 없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단 한 명도‘우리 과에서 로스쿨에 간 선배는 없다’는 사실이 커다란 현실의 장벽처럼 느껴졌다. 자연스레 나도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하려는 주변 분위기에 스며들었고, 변호사의 꿈은 깊이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3학년 겨울 어학연수를 다녀오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해외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내 안에 있던 변호사의 꿈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도전해보면 어떨까. 아무것도 안하고 후회하는 것 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게 낫지 않을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품은 채 귀국 후 토익 시험을 쳤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넘기 힘들었던 점수를, 어학연수 후에는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었다. 4개월간 매일 영어를 듣고 말한 시간이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로스쿨 입학에 필요한 학점, 토익, 리트 중 학점과 토익까지 준비된 셈이었다. 다만, 리트가 문제였다. 준비 없이 풀어본 첫 리트 기출 점수는 처참했다. 주변에 로스쿨을 준비한 선배도, 법학과 친구도 없었기에 로스쿨 준비는 깜깜한 바다를 나침반도 없이 항해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로스쿨 준비 인터넷 카페를 통해 우연히 발견한 리트 스터디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리트 기출 점수를 조금씩 끌어올릴 수 있었다. 자기소개서를 위해 마지막 학기에는 법학과 수업도 들었다. 쉽지 않았지만, 결국 나는 수석으로 졸업하며 우리 과 최초로 로스쿨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빛나던 졸업과 달리, 로스쿨 첫 학기 성적은 거의 꼴찌에 가까웠다. 학부 때와 다르게 처참한 성적을 받으니 법학이 나의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퇴를 고민하며 엄마에게 울며 전화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우연히 구성된 스터디원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1학년 2학기에는 상위 40%로, 2학년에는 상위 10%까지 성적이 오르게 되었다. 혼자 공부할 때는 나만의 잘못된 논리에 갇히기 쉬었지만, 스터디에서는 모르는 것은 묻고, 아는 것은 나누면서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이 성적 상승은 예상치 못한 기회를 가져왔다. 지방 로스쿨생에게는 대형 로펌에서 인턴생활을 할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적 상승을 좋게 봐준 덕분인지 두 곳의 대형 로펌에서 인턴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나보다 성적이 좋았던 동기들도 많았지만 내가 인턴에 선발된 걸 보면 성적 ‘상승 과정’을 좋게 봐주었던 것 같다. 첫 학기 때 받은 처참한 성적이 오히려 기회가 된 셈이었다.
지식재산 변호사의 꿈을 갖고 있었기에, 여름방학을 이용해 특허청 실무수습에 가거나 지식재산권 학회 활동을 하며 IP와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고, 2학년이 되어서는 IP에 대한 관심을 인정받아 지식재산권법 학회장이 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특허법, 저작권법 등 지식재산권법 수업도 수강하였고, 변호사시험에서는 대부분 선택하지 않던 지식재산권법을 선택과목으로 택해 끝까지 집중했고, 다행히 한 번에 합격할 수 있게 되었다.
변호사가 된 후에는 변리사 연수 및 교육을 통해 변리사 자격을 취득하였고, 로스쿨 시절의 IP 관련 활동을 바탕으로 지식재산 부티크 로펌에 입사할 수 있게 되었다. 김앤장 출신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며 IP 소송 실무를 수행한 이 시기는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이후 다양한 사건을 경험하기 위해 일반 민형사사건을 수행하는 법무법인으로 이직하였지만, IP 전문성을 잃지 않기 위해 KAIST 지식재산대학원(MIP)에서 학업을 이어갔고, 블로그에도 꾸준히 저작권법과 관련된 글을 연재하였다. 결국 IP를 그리워하던 나는 1년 만에 다시 대기업 IP팀에 입사하며 지식재산권 분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꾸준히 연재하던 저작권 관련 글들을 모아 저작권법 책 <이제는 알아야할 저작권법>(공저)도 출간할 수 있었다.
되돌아보면, 이 길은 단숨에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가는 분야를 끊임없이 두드리고, 관련된 활동을 이어가며 점을 찍다 보니, 어느새 나만의 지도가 그려졌다. 처음엔 로스쿨 입학조차 꿈꾸지 못했고, 어렵게 입학한 이후에도 첫 학기에는 거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작은 나침반을 쥐고 꾸준히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내가 바라던 곳에 이르게 된 것이다.
누구나 원하는 바를 놓치지 않고 자신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꾸준히 항해하다 보면, 결국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며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비전공자라는 이유로, 혹은 시작이 늦었다는 이유로 진로 변경을 고민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그와 연결될 수 있는 공부와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이 점들이 이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로스쿨 입학 과정에서도, 학업을 이어갈 때도,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주변의 응원과 손길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들 모두가 있었기에 꿈을 꾸고, 나만의 지도를 그려오며, 지금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진로와 학업 속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혼자서만 모든 걸 떠안기 보다는, 주위의 좋은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길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지금 나는 고등학생 시절 뉴스에서 보던 특허분쟁을 직접 다루는 변호사가 되어 있다. 이 자리가 종착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꾸준함이 내 발걸음을 여기까지 데려왔고, 앞으로도 또 다른 길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는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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