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재산을 잃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정작 인생에서 가장 아껴야 할 단 하나, 시간을 허비하는 일에는 놀랄 만큼 무심하다.”
이는 세네카가 <인생의 짦음에 대하여>에서 한 말이다. 벌써 2000년도 더 전에 쓰인 말이지만, 우리 시대의 삶을 설명하는 데도 매우 적절해 보인다. 특히, 우리 시대의 시간은 놀라울 만큼 쉽게 쓰이고 있다. 한국인이 하루에 스마트폰을 쓰는 평균 시간은 5, 6시간 정도다. 일주일이면 대략 40시간이고, 1년이면 2000시간을 넘는다. 그러나 과연 작년 한 해 동안,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2000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떠올려보면, 딱히 기억나는 게 많지 않다.
물론, 스마트폰은 현대 사회에서 의사소통, 금융, 결제 등 여러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어 기본적인 사용시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필수적인 부분을 빼더라도, 3, 4시간 정도는 별 의미 없이 소모되는 시간이 많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AI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온갖 영상과 피드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하루에도 우리는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서, 쇼파에 기대어, 지하철에 서서, 거리를 걸으며, 그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모든 시대에는 삶이 빼앗기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 어느 시대는 왕권의 억압으로, 어느 시대는 가부장적 차별로, 어느 시대는 지나친 노동과 번아웃이 삶을 빼앗아간다. 우리 시대에도 여러 방식이 삶을 빼앗고 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스마트폰은 외부적 억압이라기 보다는, 내부적 억압에 가깝다. 우리 뇌에 침투하여, 뇌의 작동원리를 파악하고, 마치 자발적인 것처럼 피드를 넘기며 빠져들도록 뇌를 '해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뇌를 해킹하는 알고리즘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수단들은 뭐가 되었든 삶을 이롭게 만드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잠시 잊고 '러너스 하이'에 빠져 30분동안 달릴 수 있는 것만 하더라도, 차리라 삶에 이롭다. 쇼츠나 릴스 넘기기를 잠시 멈추고, 2시간 동안 영화 보기에만 몰두할 수 있더라도, 뇌에 더 건강하다고 느낀다. 콘텐츠 소비나 SNS 알림 확인을 멈춘 채, 1시간 정도 일기만 쓸 수 있더라도, 역시 디톡스가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은 내 몸이 있는 이 삶을 느끼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아이와 함께 온 몸에 진흙을 묻혀가며 갯벌에서 뒹굴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걷고, 마주앉아 오랫동안 이야기하며 내 몸이 있는 삶을 감각하며 거기에 머무를 줄 아는 것 역시 '스마트폰에 맞서는' 삶의 순간이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늘여나가는 가운데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내 삶의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는 감각과 힘도 생긴다고 믿는다.
세네카는 명성이나 성취, 욕망에도 휘둘리지 말고 자기 스스로 즐거움과 행복을 찾고 그에 몰두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정도까지의 '현자'가 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를 '휩쓸어가며'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매번 깨달으며 마주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이 온전히 오늘 이 순간 자리잡고 있는 내가 시간을 어떻게 쓸지 결정해야 한다. 보다 가치 있고 소중한 시간을 삶을 새길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고, 그럼에도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건 시간 뿐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만이 삶을 값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ai, 글쓰기, 저작권>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 https://facebook.com/writerjiwoo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jungjiwoowriter
* https://allculture.stibee.com 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즐겁게 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