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 왔다. 바다가 있고, 모래가 있고, 파도가 있고, 사람이 있다. 그때였다. 안전요원이 “해파리가 있다”고 외쳤다. 처음에는 작은 해파리를 한 마리 건져오길래 ‘해파리가 원래 저만한가’ 했다. 아이의 자연관찰책 속에서 봤던 빛나는 해파리랑 뭔가 다른데, 하며 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지역명이 써진 티셔츠를 입은 안전요원이 힘을 쓰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를 건져 올렸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머니로 써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커다란 그물망으로 말이다.
그물 속에는 하얗고 큰 머리에 얇고 수많은 다리를 가진, 해파리가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커서, 대왕 문어가 저 정도려나 했다. 그런데 해파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깊은 바다에서 머리를 볼록거리며 위아래로 헤엄을 쳤을 해파리가, 물 밖에서는 숨을 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건 당연했지만, 생선 특유의 파닥거림이나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죽은 걸까. 해파리는 스스로 헤엄치는 힘이 약해 바닷물의 흐름을 따라 이동한다고 한다. 바람과 조류, 수온 변화 때문에 종종 해변 가까이 떠밀려오는데, 이 경우 살아남기보다는 바닷가에 좌초되거나 사람 손에 건져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안전요원은 모래사장 끝에 있는 ‘상황실’로 해파리를 데려가고 있었다. 해파리가 지나간 길에는 트랙터가 지나간 것처럼 넓은 길이 생겼다. “해파리가 어디로 가는 거야?” 아이가 물었다. “이따가 저녁이 되고 사람들이 모두 집에 가면, 해파리도 바다로 돌아가겠지.”
아이에게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정말로 해파리는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움직이지 않는 해파리를 보며 나는 정재율 시인의 <해변에서>라는 시를 떠올렸다. 아래는 시 전문이다.
*
모래사장을 걸었다 따뜻한 모래와 차가운 모래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돌을 모조리 주워 주머니 속에 넣었다
너무 무거워
잠시 쉬어가려고 비어 있는 선베드에 누워 있었는데
파도가 밀려오고
저 멀리서
낮에 수영을 하던 사람들이 오후가 되자 해파리처럼 떠밀려왔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해변에서
사람들이 달려나가고
그중 누군가는 신이 있었다면 이럴 리가 없었을 거라고 외쳤다
나는 그들의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만약 이것이 누군가의 꿈이라면 힘껏 돌을 던져 깰 수 있었겠지
그러나 나는
매끈해진 돌을 그들의 머리맡에 하나씩 내려놓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을 말하기엔 나는 너무 어리석은 신이라서 모래를 털고 살아난 사람들을 구경했다
몸이 한결 가벼워져도
신을 쳐다보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
‘낮에 수영을 하던 사람들이 오후가 되자 해파리처럼 떠밀려’온다. 사람들은 스스로 걸어 나온 것이 아니라, 그저 파도에 떠밀려 나온 것이다. 눈빛을 잃어버리고, 해파리처럼 흐물거리는 다리로. 시를 읽으며, 나 자신이 꼭 해변으로 떠밀려오는 사람 중 하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해변에서 해파리를 봤을 때 이 시를 떠올렸던 건지도 모른다.
파도가 밀려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변으로 밀려 나와야 하는 존재들이 있다. 수영하는 힘이 약한 해파리처럼, 삶을 헤쳐 나가는 힘이 약해서 삶의 파도에 휘둘리는 나처럼.
나는 파도에 몸을 맡기기보단 해변을 산책하는 편이 좋다. 아이와 해변을 산책하면 언제나, 아이가 가진 삶의 힘을 목격한다. 이제 여섯 살이 된 딸은 해변의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돌이며 조개껍데기를 한가득 주워 주머니 속에 넣는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보물인 것처럼 이름을 붙이고 간직한다. 언제부터 나에겐 해변의 돌이 다 똑같아 보이기 시작했을까?
돌을 많이 줍는 사람은 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비록 ‘너무 무거워 잠시 쉬어가려고 비어 있는 선베드에 누워’쉬더라도, 기꺼이 그 무거움을 견딜 만큼.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 시에서는 ‘신’이 등장한다. 나는 '신’이 꼭 사랑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신론자’는 있어도 ‘무사랑론자’는 없다. 사랑은 사실 거기에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화자는 스스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을 말하기엔 나는 너무 어리석은 신’이라고 말했다. 나는 화자가 왜 스스로를 어리석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사랑해”라는 말로 사랑을 말하기는 쉽다. 사랑한다는 말 없이 사랑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죽어가는 해파리를 보면서도, 해파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해파리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화자처럼, 모두 어리석은 사랑을 한다. 분명한 것은 죽은 해파리를 보며 가엾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보다, 죽은 해파리는 훨씬 더 슬펐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 아이처럼 돌을 모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지 못하는 일 앞에서도, 매끈한 돌 하나를 꺼내 조용히 내밀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것이 비록 어리석은 사랑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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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명 - 서나연
*코너 제목 - 하루 한시 ㅣ 에세이 쓰다, 시를 배우다
*코너 소개 - 에세이를 쓰다 시를 배우게 된, 엄마이자 작가의 기록. 시 한 편을 중심으로, 일상의 감정과 나름의 결론을 햄버거처럼 차곡차곡 쌓아 전합니다. 가끔은 뜨겁고, 가끔은 물컹한 한입을 함께 나눠요.
*작가 소개 - 문예창작과를 나와 유독 ‘시’감성이 충만한 글러버입니다. 매일 쓰고, 다듬으며 살아갑니다. 공저 에세이집 <전지적 언니 시점> 등을 펴냈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무엇이 될까요?” 그 질문이 저를 살게 합니다. 언젠가, 저는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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