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진 거리, 깊어진 마음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도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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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동생과 남동생, 이렇게 두 명의 동생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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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셋은 모두 서울로 학교를 다니기 위해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작은 자취방에서 함께 살았다.
처음 동생들과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마련해 주신 뒤 고향으로 돌아가시기 전 내 등을 쓸어 주시며 “동생들을 잘 보살펴 줘라, 부탁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갓 스무 살을 넘긴 어린애에 불과했지만, 맏이로서 부모님 말씀에 큰 책임감을 느끼며 그날 이후로 동생들을 잘 돌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대개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해서 동생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돕거나, 세금이나 공과금을 내는 등의 ‘살림’을 하는 일이었다.
학기가 계속되면서 우리 셋은 각자의 시간표와 개인적인 활동에 따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어떤 때는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쁜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일부러 마을버스를 타고 큰 마트에 가서 두 손 가득 장을 본 뒤 작은 전기밥솥에 밥을 짓고, 몇 개 안 되지만 자신 있는 반찬을 만들어 동생들에게 연락해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 착한 내 동생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와 같이 밥을 먹고, 또 저녁 바람을 쐬며 동네를 걷거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가족으로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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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食口)
우리 셋은 자취생활을 하면서 함께 나누어 먹었던 ‘음식’에 관한 추억이 많다.
한 번은 남동생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까지 신촌의 한 여대 학생식당 김밥 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어떤 날에는 동생이 직접 만든 양배추김밥과 참치김밥을 집으로 가져와 작은 밥상 가득 담아 함께 먹은 적이 있었다. 작은 스티로폼 상자 몇 개를 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던 동생의 눈빛이 지금도 기억난다. 동생의 마음이 고마워 조금 맛있어도 아주 맛있다고 과장된 칭찬을 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정말 맛있어서 그런 노력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벌써 그날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막내가 직접 꾹꾹 말아 만든 김밥의 손맛이 아직도 생각나 군침이 돈다. 또 한편으로는 누나들을 생각하며 한 손 가득 김밥을 싸 들고 집으로 향하던 동생의 가벼운 발걸음 뒤에 고된 일상이 묻어 있던 뒷모습도 그려져 지금도 그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내가 아일랜드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던 날, 동생들은 내가 사는 원룸에 먹을 것을 사 들고 찾아왔다. 우리는 바닥에 상을 펴 놓고 빈대떡이며 순대볶음을 나눠 먹으며 각자의 삶과 생활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지갑도 두둑해져 괜찮은 식당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냥 시장에서 평소 먹던 음식을 사 와 반쯤 누워 TV를 보며 먹는 저녁 식사는 그저 우리의 일상 같아 좋았고, 그런 모습이 더욱 소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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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리운 우리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 셋은 모두 가정을 이루고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터전을 잡았다. 4개의 커다란 이민 가방을 들고 인천공항을 떠나던 2013년 11월의 어느 날, 커다란 짐을 이고 지고 떠나는 나를 보며 가슴이 아팠을 내 여동생. 그리고 다음 해 4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한 번 더 치르고, 오래 쓰던 휴대폰 번호를 해지하고, 편도 비행기 티켓을 사서 정말로 한국을 떠났던 5월의 어느 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부모님과 남동생은 내가 살던 원룸으로 돌아가 그날 밤 모두 소리 죽여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가엾은 나의 부모님.
그런 뒤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던 한 대기업의 부도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남동생은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일자리 제안을 받아 또 한국을 떠났다. 다행히 사업을 시작해 자리를 잘 잡고 살고 있지만, 부모님의 하나뿐인 아들은 이제 이역만리에 있다. 또 얼마 전 부모님께서 여동생의 집을 방문하셨는데, 식사를 하고 두 번 휴게소에서 쉬며 도착하니 5시간 30분이 걸렸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내 주위에는 멀어 봐야 1시간 거리에 자식들을 두고 살면서 자식들과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 순간, 맏이로서 또 가장 먼 곳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부모님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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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making good efforts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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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우리는 코로나 시절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1-2년에 한 번은 얼굴을 보고, 4-5년에 한 번은 가족들이 모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에서 만나든 가족 중 누군가는 20시간 넘게 걸려 비행기를 타야 하니 시간적으로 만만치 않다. 또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거나 여행이라도 한다면 비용이 많이 들 텐데, 게다가 누군가는 경비를 들여 움직여야 하니 경제적인 부담도 크다. 그렇지만 시간도 되고 돈도 있다고 해서 먼 곳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쉽게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 가족의 역사 안에서도 갈등과 반목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기 이전과 이후에도 가족들은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지금도 비행기를 타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며 모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올봄에는 남동생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고, 올여름에는 여동생이 조카와 함께 아일랜드를 방문해 주었다. 휴가 전까지 매일 힘들게 직장 일을 하고 먼 길을 달려와 준 동생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먼 곳까지 오게 한 내 삶의 선택이 미안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며칠간 런던 여행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값비싼 뮤지컬을 보거나 역사적인 건물을 보는 순간보다,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버스에서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이 더 선명하다. 또 잘 차려진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음식보다, 마트에서 음식을 사 와 컵라면과 함께 침대에 걸터앉아 먹던 그날의 저녁 식사가 오히려 더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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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질 때가 있다. 바로 한가한 토요일 오후쯤 “나도 친정에 가서 저녁 먹고 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그 친정에는 동생들 내외도 와 있고, 음식을 배달해 와 상에 가득 차려 놓고, ‘놀면 뭐하니’나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왁자지껄 이야기하며 먹는 일상의 순간이 펼쳐져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엄마가 김치를 싸 줄 테니 가져가라고 하시면, 저번에 먹은 게 아직도 남았다며 괜찮다고 손사래 치고, 10개에 몇천 원 하는 마트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살짝 걱정하면서도 동생이랑 ‘맛있으면 0칼로리’라며 낄낄대며 먹고 싶다. 그런 소소한 일상, 아무 의미 없을 것 같은 일상이 어떤 날에는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선택했을 때는 그런 일상들이 이렇게도 소중해질 거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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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다행인 것은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이런 ‘일상’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고, 또 그 배우자들도 이해하며 함께 노력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힘든 긴 여정에도 묵묵히 불편함을 감수해 주시는 부모님의 체력과 인내심이야말로 가족들이 ‘일상’을 나누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아직까지 기약한 바는 없지만, 몇 년 안에 다시 만나게 될 그날을 기대하며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삶이 다소 고되더라도 그런 기대감이 있기에 하루, 한 주, 한 달, 그리고 일 년을 또 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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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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