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둔 2월의 추운 겨울, 남편은 ‘나 정도면 괜찮지 않아?’라며 고백했다. 입시가 끝나고, 대학도 정해지고, 겨울방학은 무료했다. 당시 나는 베이킹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이상한 것들을 구워댔다. 친구들이 기꺼이 희생양이 되어준 덕분에 날이 갈수록 제법 먹을만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당시 친구 사이였던 남편을 불러내 두부로 만든 브라우니를 건넸다. 돌아온 건 고백이었다.
나는 남편을 이성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말이 잘 통하고 재미있는 또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 하게 고백을 받고 나니 당황스러웠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고백을 거절하면 편하고 재미있는 친구를 한 명 잃게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고백을 거절하고 친구로 지내는 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잘 지냈으니, 앞으로도 재미있게 지내보자는 마음으로 고백을 받아들였다.
남편은 나를 참 좋아해줬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남편이 못마땅했다. 나는 내가 마음에 안 드는데 나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내 못난 모습을 알기는 하고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나를 무조건 좋아해 주는 모습이 바보 같았다. 남편은 나랑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나는 과제 하느라 바쁜데 같이 놀러 가자고 조르기도 했고,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고 나를 보러 오기도 했다. 도대체 공부는 하는 건지, 정신은 똑바로 박힌 건지 의문이었다.
그 당시에도 남편은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어떻게 한 명만 만나보고 결혼을 하나 싶었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나랑 맞는 사람을 찾고 싶었다.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대학교 1학년의 남편을 보며, 나는 속으로 아직 뭘 몰라서 저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뭘 몰랐던 사람은 나였다. 돌고 돌아 15년의 세월이 지나 정말로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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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1988 서울 여름올림픽 개회식에 나온 굴렁쇠 소년. 관계는 마치 내리막과 오르막에서 굴렁쇠를 굴리는 일과 같다. (출처: [중앙일보] 88 굴렁쇠 소년처럼, 평창은 강원도 아이들이 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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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맺고 끊는 일은 산에서 공을 굴리는 일 같다. 관계가 가까워지는 일은 마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공을 굴리듯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한 걸음씩 움직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고백받을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막상 남편과 사귀게 되니 관계가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고, 통화도 매일하고, 주말에는 꼭 만났고 어떤 때는 평일에도 만났다.
높은 곳에 있는 공은 높이만큼의 위치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공이 낮은 곳으로 굴러가면, 낮아진 높이만큼의 위치에너지는 공의 운동에너지로 변환되어, 공을 빠르게 굴러가게 한다. 공은 낮은 곳으로 갈수록 더 빠르게 굴러가고, 어느덧 산의 골짜기에 도달하게 된다. 마치 두 사람이 서로 끌림을 느끼고 가까워질 때는, 정신 차려보면 이미 관계가 깊어져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이 방향이 맞나?’ 싶은 의문도 계속 커졌다. 미처 바로잡기도 전에, 공이 경사를 굴러가며 혼자서 속도가 붙어 저 멀리 가버린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남편에게 기대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릴 적부터 뭐든지 스스로 헤쳐나가야 했던지라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내 모습이 어색했다. 그런 내 모습이 혼란스러운 나머지 남편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미 가까워진 관계를 돌이키는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 낮은 곳에 있는 공은 툭 건드린다고 해서 높은 곳으로 스스로 올라가지 않는다. 공은 자꾸 굴러내려 가려고 하지만, 공의 무게도 또 나의 무게도 견디며 힘을 주어야 한다. 익숙하던 발걸음을 돌이키고, 익숙하던 마음을 거슬러야 한다. 한 번은 몸살이 나서 기숙사 방에 누워있다가, 나도 모르게 남편의 전화번호를 누른 적이 있다.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지. 이미 가까워진 사람과 멀어지는 일은 더 이상 그 사람과 연결되지 않으려는 선택의 연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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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산의 지형은 멀리서보면 한 눈에 보이지만, 산에 오를 때에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출처: Unsplash의 Benjamin Vo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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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헤어지고 나서 다른 사람을 만나며 공을 굴려 내리고, 또 밀어올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무언가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남편과 공유하던 개그 코드가 그리웠다. 15년 전의 나는 나와 맞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또 다른 ‘맞는 사람’을 찾으려고 했던 셈이다.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기도 하다. 산 밑에 있을 때는 산 너머 골짜기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산의 지형을 한눈에 파악하고, 최적의 장소에 공을 바로 갖다 놓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땅에 붙어 지금 내가 경험하는 것만 알 수 있다. 힘겹게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 막상 내려갈 곳이 없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또 어찌저찌 내려간다 하더라도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또다시 공을 높은 곳으로 밀어 올려야 했다. 나와 맞는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기란 쉽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런 사람을 찾아내는 일은 여러모로 품이 드는 셈이다.
남편에게 오랜만에 연락하니, 그 간의 세월이 무색하게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졌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남편과 나누는 대화는 여전히 재미있었다. 거기에 더해 서로 나이를 먹으며 생각이 확장된 덕분에 과거에는 이해하지 못하던 상대의 태도가 이해되기도 했다. 오히려 반대되는 성향으로 서로를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시간 돌아서 왔지만, 공은 결국 같은 골짜기로 흘러들었다. 이제는 이전과 같이 가까워진 관계가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음에, 또 나의 부족함을 알고도 나를 좋아해 주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가까워진 관계에 안정감을 느낀다.
여전히 나는 내가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것만 알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삶의 굴곡을 헤쳐나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 혼자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했던 과거와 다르게 이제는 함께하는 남편이 있다. 남편과 함께라면 어려운 일도 조금은 수월하게 헤쳐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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