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도 있다. 홍길동!
홍길동.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다. 고전소설 <홍길동전>을 읽지 않더라도, ‘홍길동’이라는 이름 석 자를 피하기는 어렵다.
관공서에서 서류를 작성하거나 예시로 나와 있는 양식을 읽다 보면 마주칠 수밖에 없는 그 이름.
홍길동.
홍길동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표준 견본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 이유가 명확하게 알려진 건 아니다. 그러나 대체로 가상의 인물이기에 논란에서 자유롭고, 동명이인이 적으며, 각 단어에 받침이 있어서 표기법 예시로 삼기에 적절하다는 점 때문에 견본 이름의 역할을 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TMI지만, 홍길동이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옛이야기 속 홍길동이 ‘활빈당’을 결성해 직접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백성들을 도왔다면, 현대의 홍길동은 1950~1960년대부터 관공서를 방문한 사람들의 서류 작성을 조용히 돕고 있다.
그렇다면, 영어에도 ‘홍길동’이 있을까?
있다! 이름하여 존 도(John Doe).
사실, 존 도가 홍길동과 100% 호환되는 이름은 아니다. 홍길동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관공서나 금융기관에서 한국인을 대변하는 이름으로 사용된다. 혹은, 가상의 인물을 가정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쳐봅시다.” 같은 문장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친숙한 이름이다.
반면, ‘존 도’는 신원을 알 수 없거나 밝히지 않은 인물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이름이다. 예를 들어,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실려 온 환자나 신원 미상의 사망자는 ‘존 도’로 기록된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원을 공개할 수 없거나 신원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을 ‘존 도’라고 부른다.
법정 소송에서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이 다수일 때는 각각의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이름 뒤에 숫자를 붙이기도 한다. 2009년, 미국 정부는 15개국이 넘는 국가의 사법기관과 공조해 델레고 작전(Operation Delego)을 벌였다. 아동을 착취하는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소탕하는 작전이었다. 수백 명이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인터넷 사이트의 특성상 피고인 중 신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당시, 법원은 이들에게 ‘Doe 1’, ‘Doe 2’ 같은 임시 이름을 부여했다.
즉, ‘존 도’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거나 감추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가명이다. 그렇게 보면, ‘존 도’가 ‘홍길동’보다는 ‘김 모 씨’나 ‘이 아무개’에 좀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존 도’라는 이름은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2002년, 미국 팍스 티비(Fox TV)에서 <존 도(John Doe)>라는 드라마가 방영됐다. 제목에 걸맞게 기억을 잃고 버려진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국어로는 <익명인: 정체불명의 사나이>로 번역됐다고 하니, 누가 한 번역인지 몰라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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