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처음으로 아쿠아리움을 찾았다. 첫째 아이가 열 살이 다 되도록 그동안 동물원, 동물 카페도 하나 가지 않았었다. 자연에 있어야 할 자유로운 동물들을 가두어 둔다는 이유로, 동물권, 동물 복지 문제도 걸리고 말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싶지 않은 곳 중에 하나였다. 특히 여수 아쿠아플라넷의 흰돌고래가 폐사한 일도 있고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는 여행지 중에 하나였다. 그럼에도 올해는 불편한 마음을 붙잡고 이상하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안에서 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던 것들 중 하나였는데 말이다.
막상 들어갔더니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하고 있었다. 작고 동그란 가시복어의 반짝이는 은색 눈동자는 고향 바다색을 담고 있는 듯 했다. 각양각색의 빛나는 물고기들이 너무나 신기하고 아름답고 귀여워서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되었다. 아기 속눈썹만큼이나 가늘고 여린 지느러미로 부드럽게 물질하는 모습에 푹 빠져 버렸다. 이렇게 내가 이중적인 인간이다. 속상하지만 예뻐서 인간은 이기적인 욕심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물들에게 이런 내 속내를 들킨 것만 같아 이내 마음이 슬퍼지려고 했다.
인간들 손에 잡혀서 우리의 시선 안에서 사는 운명에 놓인 게 아닐까 싶었다. 인간 말고 이렇게나 다양한 존재들이 이 세상을 이루며 살고 있다는게 경이로웠다가 죄책감이 들었다. 그 순간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도리어 바다거북이 인간들을 딱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물고기들이 주는 묘한 위로를 받으며, 그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마음을 전했다.
실은 동물을 좋아해서 스스로 채식을 하고 있는 첫째 아이는 아쿠아리움 같은 곳에는 애초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가보자는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세상을 특정 가치로만 미리 재단하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 세상의 수많은 가치들 중에 스스로가 선택한 길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데, 엄마 아빠라는 울타리에 맞추어 사는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왜 그런 괜한 걱정을 했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오늘날 아쿠아리움은 단순하게 해양·담수 생물을 전시하는 위락시설에서 종 보전, 생태계 보호나 생물다양성 교육, 연구 및 전시를 하는 장소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한다.
누가 알려주고 강요하지 않아도, 어린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고 본다. 이곳은 가상의 공간, 신기하긴 해도 동물들이 여기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마냥 기쁠 수 없는 공간이다. 저 깊은 바닷속 생명체들을 실제로 보는 일보다, 동물 백과와 그림책을 보면서 그 자유롭고 신비스러운 그들의 삶을 상상하는 쪽이 더 즐거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아쿠아리움은 오히려 동물들이 우리 인간을 품어주는 곳 같았다. 아이들은 다시 또 오고 싶다는 말은 하진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진짜 바다로 가자며 우리 손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