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덮밥을, 내 아이가 내게 안겨드는 순간을, 커피머신에서 커피가 내려와 만드는 크레마를, 편지 봉투가 한번에 말끔하게 잘리는 순간을,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쿠쿠의 음성알림을, 밥솥뚜껑을 열었을 때 뽀얀 김이 가시고 코에 와닿는 흰쌀밥의 달큰한 냄새를, 주걱으로 휘저을 때의 밥알의 느낌을, 저녁식탁에서 무언가 희한한 조합을 만들어 내게 내미는 내 아이의 기대에 찬 눈빛을, 생선구이가 나오면 당연한듯 생선 살을 발라 내 밥그릇과 아이 밥그릇에 올려주는 남편의 젓가락을, 사랑해라는 말을 하기 쑥스러워 티코 아이스크림 포장지에 적혀있는 낯간지러운 문구 "너밖에 없어"를 보여주고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빨간 동그라미속 숫자가 하나도 없는 평온한 폰 바탕화면을, 더이상 읽어야 할 이메일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컴퓨터를 종료하는 순간을, 바쁜 하루 중 짬을 내어 운동을 하고 돌아와 샤워부스 안에서 땀을 씻어내며 느끼는 쫀쫀해진 내 몸을,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차마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어이가 없어지는 순간, 내 앞에서 다 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낯선이가 전하는 연대의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을, 어디에선가 했던 내 말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고, 고맙다는 말을 전해오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를, 내 글이 어딘가에 실렸을 때 나보다 더 기뻐해주는 사람들의 반응을 눈으로 확인할 때를, 어떤 말도 위로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가만히 나를 안아주는 누군가의 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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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 변경을 위해 깜빡이를 켜면 기다렸다는듯 내 앞을 가로질러가는 차를, 일부러 과일 빙수를 시켰는데 묻지 않고 덤으로 얹어져 있는 팥을, 콩밥으로 만든 김밥의 단면을, 분명 빨래를, 설거지를 마쳤는데 남아있는 음식찌꺼기와 걸레냄새가 나는 세탁된 옷을, 뻔히 보이는 핑계를 담은 당일 약속 취소를, 당연히 미안해해야 할 상황에서 도리어 내 탓을 하는 사람의 얼굴을, 내 이름, 아이의 이름, 남편의 이름을 타이핑했을 때 쳐지는 빨간 줄을, 원하지 않았는데 자동교정으로 이름을 바꾸고야 마는 문서작성 플랫폼들을, 알아듣게 설명했는데도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화내고, 으름장을 퍼붓는 모니터 너머, 수화기 너머의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꺼내놓은 내 마음을 내동댕이쳐놓고 아무렇지 않아하는, 혹은 악의적으로 왜곡해 전달하는 사람을, 열심히 메모하며 들은 강의 필기노트의 나조차 알아볼 수 없는 내 손글씨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하고 싶은데 머릿속 이미지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내 손을, 부끄러움을 이기고 만들어낸 무언가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비웃는 얼굴을, 합의된대로 처리한 일에 말을 바꾸어 내 탓으로 돌리고자하는 동료를, 들어보지도 않고, 증거를 내밀어도 내가 외국인이라,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으니 당연히 틀렸을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의 얼굴을, "오, 너 영어 잘하는데?" 라고 칭찬 아닌 칭찬으로 자신의 원어민성이 갖는 우월함을 드러내려 하는 사람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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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지 않는 것은 좋아하는 것에 비해 쉽게 파악되고, 밤새도록 목록을 늘어놓을 수 있으며, 내게 느껴지는 임팩트도 크고, 오래간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나누는데 시간과 노력을 쓸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다면, 일부러, 보란듯 하지는 않아주는 것이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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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 「 보통 이하의 것들」은 '일상의 글쓰기'에 우리를 초대합니다. 윗 글은 페렉의 <나는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에서 영감을 받은 글입니다.
여러분의 일상에서 좋아하는것, 좋아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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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 서서] 황진영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퇴사하면 큰일 날 줄 알았지> 를 썼습니다.양 극단으로 보이는 개념들은 어쩌면 서로 맞닿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브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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