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에서 계단 오르기를 하고 있는데, 바지 주머니 속 핸드폰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터치가 잘못 눌려서, 연락이 끊긴지 오래된 지인에게 내가 두 번이나 전화를 한 거였다. 십 몇 년 전에 대학교 조교로 일할 때 알았던 선생님이었다.
아오... 이걸 어떻게 하지? 십 몇 년 사이에 그 선생님 전화번호가 바뀌었길 잠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안 바뀌었다면?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부재중 전화가 와있는 걸 보면 용건이 있어서 전화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2분쯤 망설이다 문자를 남기기로 했다. 내가 다단계가 아니란 걸 증명하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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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잘 지내시죠? 죄송해요. 터치가 잘못 눌려서 전화가 갔었나봐요. 😅"
거의 바로 답문이 왔다.
"네, 그런 것 같았어요. ㅎㅎ 잘 지내시죠? 시간이 많이 지나서 못 알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과는 달랐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나와 그 선생님은 빠른 속도로 친해졌었다. 유쾌하고 경쾌한 분위기가 있는 선생님이었다. 예전에 그 선생님과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출근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선생님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아있던 나에게 다급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 오늘 입고 온 옷이 너무 맘에 안 들어서 그런데 옷가게 좀 같이 가주면 안 돼요? 나 지금... 공무원 같아. 무슨, 동사무소 직원."
우리는 옷가게가 문을 여는 열한 시쯤 잠깐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 선생님은 옷가게에서 산 옷을 바로 갈아입고는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나는 그 선생님이 쫌 귀엽고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 이게 그렇게 다급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맘에 안 드는 옷을 입고 있는 하루가 그렇게 못 참을 일인가? 하면서 말이다.
또 한번은, 어느 날 내가 학교 앞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나와 바로 그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선생님이 내 머리를 360도로 둘러보며 말했다.
"샘, 머리 어디서 했어요?"
(잠시 뒤) "샘, 이건 아니야."
(또 잠시 뒤) "안 돼요. 앞으로 그 미용실 가지마~."
달라진 머리에 나름 만족하고 있던 내게 선생님은 찬물을 끼얹었다. 싫은 티를 내며 그만하라고 눈치를 줬는데도 선생님은 멈추질 않았다. 지금 그 상황을 다시 떠올리니 웃음이 터진다. 머리를 잘못한 게 그렇게 집요하게 추궁당할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반응은 이런 뜻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선생님은 이 머리가 아니예요. 안 돼요, 안 돼.
그 선생님은 스텔라 맥카트니, 알렉산더 맥퀸 등이 졸업한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패션 스쿨 출신이었다.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당시 조교로 일하면서 대학원을 다니던 중이었다. 그래서 스타일이 말하는 것들에 유독 민감하고 예민했던 게 아닌가 싶다.
2006년에 발간된 하퍼스 바자의 별책부록 『THIS IS STYLE』에는 이런 문구가 써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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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은 여자들이(내 생각엔 남자들도 포함된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개발하고 또 그 이미지를 투사할 정도의 용기를 가짐으로써 완성된다. - 하퍼스 바자, 『THIS IS STY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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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끼는 책 중 하나. 2006년, Harper’s Bazaar Korea 별책부록으로 나온 『THIS IS STY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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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내가 누군지 몰랐다. 내가 누군지 몰랐기 때문에 '나'인 옷과 '내'가 아닌 옷을 구별하지 못했고, 왠지 맘에 안 드는 옷을 입고 있어도 그게 뭐 대수인가, 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자신에 대해 안다는 것은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를 찾는 일이다.
힌트는 '내가 어떤 사람, 어떤 스타일을 멋지다고 느끼는지'에서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2008년 알렉산더 왕의 초창기 런웨이를 보고 충격적으로 끌렸다(지금의 알렉산더왕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패션 전공자도 아닌 패션 무감자였던 내가 그 런웨이의 착장들을 보고 거의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느꼈던 것은 결코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나 자신에 관한 표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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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Alexander Wang SS Runway / 출처: Styl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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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입고 저런 무드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도는 했다. 하지만 곧 난관에 부딪혔다. 짧은 다리와 굵은 허벅지로는 저런 핏이 나오지 않았다. 모델처럼 저렇게 바지가 헐렁하려면 허리 사이즈를 몇 단계 업해야 했고, 허리가 크면 또 저런 핏이 나오지 않았다.
이 해프닝을 단순히 원하는 옷 못 입는 문제로 여기면 안 된다. 그것은 '내가 되고 싶은 나'가 되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내가 되고 싶은 나, 내가 원하는 나가 뭔지 어렴풋이 알겠는 그 시점에서 나는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옷차림을 하고 다녔다(끌렸으면서도 그게 '내가 원하는 나'라는 확신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꽃무늬 플레어 원피스 같은 옷을 입었다. 왜냐. 그런 형태의 옷이 나의 두꺼운 허벅지를 감춰주었고(체형과의 타협), 당시 연애 중인 남자친구에게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은 마음(욕망) 같은 것들 때문이었다. 물론 남자들이 꽃무늬 원피스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나'가 되겠다는 의지를 발휘하는 대신 신체 조건에 굴복했고 다른 사람 눈에 좋게 보일 나를 연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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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나. 저 흰 티, 놀랍게도 알렉산더왕이다. 알렉산더왕 티를 입고도, 알렉산더왕스럽지 않았던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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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든 '내가 원하는 나'가 되어야만 했다. 그게 맞는 방향이었다. 꼭 알렉산더 왕의 데님 쇼츠를 입지는 않아도 되지만 자신이 원하는 그 무드로 살아야 하는 거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았다면, 자꾸 그런 스타일로 입어보면서 자기 얼굴과 옷차림의 조합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과정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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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처음에 끌렸던 그 멋진 이미지와 동화된 나를 흡족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이게 하퍼스 바자 별책 부록에서 나온 말이다.
스타일은 곧 정체성이다. 정체성이 뚜렷해질수록, 내 정체성과 어긋나는 옷은 못 입게 된다. 그것이 가장 큰 변화다. 예전 같으면 그냥 아무 옷이나 입었겠지만, 스타일이 확고해지면 '아, 이 옷은 잠깐이라도 입기 싫은데'라는 반감이 치고 올라오는 때가 있을 것이다.
청신호다. 당신은 뚜렷한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노력의 결과였고 치열한 고민 끝에 얻은 수확이다.
그 선생님이 다급하게 옷을 갈아입어야만 했던 것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것은 잠시라도 참을 수 없던 정체성의 어긋남이었다.
PS) 참고로, 잘못 걸린 전화는 서로 건강히 잘 지내라는 덕담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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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에세이의 일부는 작가가 직접 읽어드립니다. 유튜브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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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진솔 삶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현실과 맞닿는지 글로 기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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