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상하면 자기도 모르게 감정을 눌러버리기 쉽다. 감정을 밀어낼수록 우리 삶은 산만해져 버린다. 무심히 흐르는 시간 사이사이에도 우리 마음은 자주 오르락내리락한다. 뚜렷이 이유를 알지 못하겠는데 무언가가 마음속 한편에 턱 걸려있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느낌은 마주하고 싶지 않다. 대부분 후회되거나 속상하거나 화가 나는 것 같은, 들여다보기 싫은 마음이다.
기분이 상하면 자기도 모르게 감정을 눌러버리기 쉽다. 힘든 감정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불쾌해지기 때문이다. 감정을 밀어낼수록 우리 삶은 산만해져 버린다. 혼자 가만히 있는 시간이 견디기 어려워 괜히 유투브를 열어 흘러가는 영상에 시간을 맡기거나 SNS 타임라인에 넋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하기 싫은 숙제처럼 미뤄둔 불편한 감정을 보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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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는 퇴근 후 마트에 갔다가 하필 자기가 고른 카트가 삐걱대며 잘 굴러가지 않자 짜증이 일었다. 실은 그때만 기분이 상한 건 아니었다. 오후에도 길을 걷다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혔을 때,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쳤을 때에도 심하게 불쾌해졌고 나중에는 눈물까지 핑 돌기도 했다.
S는 잠들기 전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감정이 어째서 외발자전거를 탄 것 마냥 휘청거렸던 걸까 탐색해보기 시작했다. 강렬한 감정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늘 있는 법이니까. ‘분명 오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온했던 걸보면 낮에 무언가 일이 있었는데, 그게 무얼까’ 물음을 잇던 중 딱 걸리는 사건이 떠올랐다. 점심시간 회사 부서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상사가 S와 동료를 은근히 비교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다지 노골적이지도 않아서 농담으로 생각하고 넘어간 일이었다.
하지만 여태껏 S의 마음을 휘두르고 있는걸 보면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었던 게 분명해 보였다. 마음은 이 사건이 S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계속 말해주고 있었다. 들여다보고 해결해달라는 외침이었다. 그 목소리를 외면할수록 마음속에서 긴장감이 커지고 별일 아닌 일에도 예민해지면서 마음이 출렁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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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한 일에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몰두하는 것도 스트레스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게 못하게 만들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는 것 또한 우리를 소진시켜 버린다. 감정을 억제할 때 자율 신경계 각성이 높아져 생리적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되고, 면역체계에도 영향을 미쳐 쉽게 피로해지고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게다가 생각하지 않으려고 밀어낼수록 오히려 생각은 힘껏 누른 용수철마냥 더 자주 강하게 떠올라 마음을 흔들어대고 만다.
이럴 때 마음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감정을 꺼내는 방법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 감정 상태를 진득이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글을 쓰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다. 실은 글을 쓰는 게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을 때가 있다. 청자의 기대나 마음 상태를 고려해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상대가 기분을 배려하느라 내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아도 되고, 말을 한 뒤에도 상대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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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시간, “이런 이야기는 처음 해 본다”며 오래 묵혀둔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많다. 나의 어떠한 마음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숨기고 싶던 감정이나 케케묵은 기억까지도 떠오르곤 한다. 내 이야기가 평가받거나 오해받지 않는 안전한 상황에서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던 갈등이 의식화되고, 그때부터 그 감정이든 욕구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치료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백지는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청자다. 백지는 아무런 의견도 의도도 없는 무구한 상대여서,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비난하거나 왜곡해서 듣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그 앞에서 나는 타인의 기대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한 마음을 꺼내어 놓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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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글로 내보낸 마음은 선명해진다. 실체를 알 수 없을 때는 답답하기만 하던 마음이 구체적인 언어로 형상화되는 순간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마음속에 둥둥 떠다니던 추상적인 관념이 언어를 통해 의식화되기 때문이다. S의 막연한 불쾌감이 ‘상사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 ‘상사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쉬움’과 같은 명확한 감정으로 정리될 때, S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고 무엇이 필요한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글을 쓴 후 정서적 고통이 감소하고, 삶의 전반적인 만족감이 커진다는 연구가 많이 쌓이고 있다. 연구자들은 감정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들은 우울이나 불안감, 분노, 번아웃,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나아진다고 거듭 이야기한다. 의외로 신체적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천식과 같은 만성질환, 암과 같은 중증 환자들도 피로감이나 통증이 줄고 질병과 관련된 여러 수치가 개선된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어찌 보면 글쓰기는 자기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생기는 여정이기도 하다. 손등이 트거나 상처가 나면 보습제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듯, 해지고 구겨진 우리 마음도 글쓰기로 들여다보고 다림질해줄 수 있다.
그러니 백지라는 언제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무해한 상대에게, 일단 첫 마디를 털어놓아보길 바란다. 그 뒤에는 글을 쓰는 손에 맡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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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신간 <감정 글쓰기> 에 수록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마음을 회복하고 진짜 나를 발견하는 글쓰기 안내서, <감정 글쓰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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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Istock
*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공부가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감정 글쓰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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