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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토크나 강의에서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동네에서 혹은 온라인으로 지인들과 글쓰기 모임을 하는 중인데 어떻게 하면 글쓰기 모임이 더 효과적일 수 있냐는 것이다. 글쓰기 모임을 1년 넘게 하고 있는데도 큰 진전은 없는 것 같다면서, 혹시 모임을 잘 이끌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꼭 작가가 운영하는 글쓰기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자주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당연히 작가가 운영하는 글쓰기 수업을 꼭 들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내게 가장 의미 있었던 글쓰기 모임도 작가가 운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글쓰기 감각을 크게 길러줬던 건 과거 언론사 취업 준비를 할 때 가입했던 ‘언론사 스터디’였다. 온라인 카페에서 모집하는 걸 보고 들어간, 취업준비생들끼리 모여 함께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봐주는 시간이었다.
그 모임의 특징은 서로가 ‘취업’이라는 워낙 명료한 목표가 있다 보니,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감없이 서로의 글에 대한 장단점을 말해주었다는 점이다. 보통의 글쓰기 모임에서는 서로 기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혹여라도 싸우지 않으려고, 자존심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직설적인 이야기는 잘 하지 않으려 한다. 통상적으로도 직설적으로 타인의 삶에 ‘지적질’하는 건 사회성 떨어지는 일일 뿐, 그다지 관계에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글쓰기 모임 만큼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글이라고 칭찬만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글쓰기 모임에 참여해선 곤란하다. 물론, 처음에는 그저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응원받고 싶을 수는 있으나, 그러려면 모임의 성격 자체를 그렇게 규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냥 모여서 각자 힐링하며 글쓰기 하는 모임이에요, 글을 잘 쓰려는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한 글자라도 직접 쓰며 명상하고 심리치유하는 모임이에요, 하고 말이다.
하지만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글쓰기 모임의 성격 자체가 달라야 한다. 혼자 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면, 글쓰기는 결국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하는 행위이다. 결국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봤을 때, 글이 얼마나 잘 이해되는지, 어느 부분이 불친절한지, 어떤 부분은 잘 와 닿지 않거나 유독 잘 읽히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나의 시선’으로만 ‘나의 글’을 보던 걸 벗어나서 ‘타인의 시선’으로 ‘나의 글’을 볼 줄 알게 되면서 글쓰기는 성장한다.
물론, 내 글에 대한 남들의 시선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나의 시선’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읽히는지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고립된 벽은 깨어지며 뇌가 살아나고 마음이 생동한다. 특히, 글쓰기 모임이 거듭될수록, 타인들이 바라보는 내 글의 장단점을 점점 더 명료하게 알게 되어가고, 어떻게 내 글의 기준을 잡아나가야할지도 알게 된다.
세상 모든 일이 다르지 않다. 혼자 마구잡이로 수영하면, 의외로 물에 잘 뜨고 빠르게 물길을 헤치고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호흡법, 발길질법, 손을 휘젓는 법 등을 배우면 더 수영을 잘하게 된다. 내가 하는 말하기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믿고 남들 앞에서 떠들어서 사람들이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경험을 통해 타인들과 소통하며 완급조절하는 법을 익혀나간다면, 말도 더 잘하는 방법을 점점 배우고 깨달아간다.
그렇기에 글쓰기 모임을 할 때는 미리부터 원칙을 세우는 게 좋다. “우리 모임에서는 서로의 글에 대해 반드시 장단점을 3개씩은 말해줍시다. 이걸 가지고 자존심 싸움도 하지 말고요. 어디까지나 서로가 좋은 글을 쓰길 바라는 선의와 호의, 이타심에서 이런 이야기를 이어갑시다. 누가 더 잘 쓰고 누가 못 쓰나 경쟁하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매번 하는 것만으로도, 그 글쓰기 모임에서 각자가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글쓰기 모임의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평소에 자주 만나던 사람도 함께 글을 쓰면 듣기 어려웠던 여러 내면의 깊이들을 만나게 된다. 나 역시 차마 일상적으로는 꺼내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하며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점 글쓰기가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다 보면, 글로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때도 온다. 작가로서의 삶이 멀게만 보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하루하루 글을 적어나가다 보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니 당장 무료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면, 글쓰기 모임을 해보는 걸 추천한다. 주위 동네에서나 뜻이 맞는 직장동료, SNS로 모집하여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소소하게 시작해볼 수 있다.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서로를 위해 솔직하게 말해주기, 라는 간단한 원칙만으로도 글쓰기 모임은 시작된다. 그 시작이 당신에게도 열리길 바라본다.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ai, 글쓰기, 저작권>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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